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다. 스포츠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

하지만 조급증 역시 스포츠팬을 정의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시즌이 기대 밖의 수확으로 돌아올 때도 '올해는 다르다'는 야심찬 포부가 '역시나'로 마무리되는 것도 스포츠팬이 살아가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과연 2008 시즌은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우리의 조급증을 시험해 볼 수 있을까? 해마다 이 맘 때면 해보는 개막전 키워드다.

1. SK 와이번스 ; 스포테인먼트 2.0

이미 '스포테인먼트' 실력만 놓고 본다면 뒤따라올 자가 없다. 스스로 경쟁상대를 에버랜드, 롯데월드라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니까 이만수 코치는 지난해 '빤스쇼' 카드를 너무 일찍 써버린 것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탄탄한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오프시즌 동안 SK는 아무 것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최정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가 2008 시즌 전망을 더욱 밝게 만든다. 선수란 결국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던가.

최고의 스포테인먼트는 역시 우승이다. 그리고 연패(連覇)는 왕조의 상징이다. 올해는 SK가 왕조를 이루기에 최적의 타이밍이 아닐까?


2. 두산 베어스 ; 모른다

베어스의 '모른다'는 늘 긍정적 뉘앙스를 뜻했던 게 사실이다. 본인을 제외하면 이종욱이 리그 탑 클래스 외야수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익수‘ 고영민의 등장 역시 예측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장 리오스가 떠났고, 홍성흔은 오프시즌 내내 트레이드설에 시달려야 했으며, 안경현의 입지 또한 위태로운 상태다. 팀의 심장과 영혼과 얼굴이 모두 흔들리고 있는 게 2008 두산 베어스의 현실이다.

과연 김경문 감독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과연 올해도 누군가 어디서 튀어나와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올해 역시 많은 물음표를 안고 시작하는 두산 베어스다.


3. 한화 이글스 ; 좌익수

한화 측 관계자에 따르면 크루즈가 방출된 가장 큰 이유는 "중견수 수비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락이 영입됐고 일단은 붙박이 중견수로 낙점이다. 우익수는 일단 고동진의 차지다. 선구안을 빼면 사실 고동진은 리그 평균 수준의 외야수는 되지 않는가.

하지만 아직 좌익수를 누가 맡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김수연, 이영우, 연경흠, 조원우, 추승우 (가나다 순) 등이 이 한자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선수들이 저마다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는 만큼 쉽사리 승부가 판가름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클락의 중견수 수비에 문제가 있다면 또 다른 자리 경쟁도 벌어질 전망이다. 2008 한화 이글스의 좌익수가 누구였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얼마나 금방 떠오르느냐가 이번 시즌 한화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지는 않을는지?


4. 삼성 라이온즈 ; 배영수

삼성은 오프 시즌 동안 '투수력 보강'에 나섰다. 조진호, 구자운, 이상목 등이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외국인 투수 오버뮬러가 새로 영입됐다. 작년에 가능성을 보인 윤성환의 성장세도 괄목할 수준이다.

그래도 역시 제일 반가운 얼굴은 배영수다. 에이스의 귀환은 어느 팀에나 희소식이다. 특히 외국인 선수 슬롯 한 자리를 외국인 타자(크루즈)로 채울 수 있게 된 2008 라이온즈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해 다소 부진했다고는 하지만 삼성의 불펜은 여전히 건재하다. 크루즈의 영입으로 타선 역시 최근 몇 년만 놓고 보자면 가장 폭발적이라고 할 수준이다. 배영수가 2004 시즌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면 SK와 겨룰 가장 유력한 후보는 삼성 라이온즈가 아닐까?


5. LG 트윈스 ; 컨택

물론 이대형은 지난 시즌 3할이 넘는 타율(.308)을 기록했다. 하지만 내야안타(33.1%)와 번트안타(8.6%)가 많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타율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달리 말해 컨택 능력 자체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뜻이다.

타율보다 출루율이 77포인트나 높았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2005 시즌 현대 정수성은 429 타석에 나서 타율 .279를 기록하며 유니콘스 팬들을 들끓게 했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끝끝내 향상되지 못한 컨택 능력 때문이었다.

한편 컨택 능력이 어느 정도 완성된 박용택은 ‘밀어치기'이 중요성을 강조하며 being 교타자를 선언했다. 홈런을 1~2개를 더 치기보다 안타를 늘여 출루율을 끌어 올리고 빠른 발을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여전히 볼넷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6. 우리 히어로즈 ; 생존

좁게 보면 현대 유니콘스 구단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우리 히어로즈의 탄생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우리 히어로즈의 등장은 우리 프로야구가 과연 자립적 생존이 가능한가를 묻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택된 방식은 지극히 20세기적인 구조조정. 정민태는 결국 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팀을 떠났고, 전준호 · 김동수 등 고참 선수들은 헐값에 2008 시즌을 보장받아야 했다. 유니콘스를 지탱해주던 막강 프런트 역시 와해된 상태.

하지만 우리 프로야구는 여태 19세기적 방식으로 운영되어 온 게 사실이다. 당장 히어로즈가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히어로즈의 2008 시즌이 주목할 만하다.


7. 롯데 자이언츠 ; 땅볼

LG 우규민은 쏠쏠한 불펜 자원이지만 대단한 마무리 투수감은 아니다. 그저 아웃카운트 하나일 뿐인 탈삼진이 경기의 흐름을 단 한 순간에 바꿔 놓는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임경완의 약점 역시 탈삼진 능력이다.

게다가 3루수 이대호 역시 장기 레이스에서 어떤 결과를 빚을지 의문이다. 이대호 본인의 수비력 문제를 떠나 대수비 운용 역시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가뜩이나 체력 약한 박기혁에 과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굳이 빌 버크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땅볼의 사소한 바운드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빚어내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올해는 가을 야구냐 아니면 변함 없는 황금 송아지 타령이냐, 롯데 팬들은 바운드 하나 하나를 숨죽여 지켜봐야 할 것 같다.


8. KIA 타이거즈 ; 빅 리거

호세 리마는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기 구위로 충분히 KIA 팬들을 설레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 한 때 아무리 잘 나가던 메이저리거라고 해도 지금 그가 뛰고 있는 타이거즈는 5대호 국경 도시에 위치한 그 팀이 아니니까 말이다.

서재응은 빅 리거와 국내 타자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사실 지난 시즌 최희섭은 이를 증명하는 데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부상과 두통이라는 건 결코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프로야구 판에서 이름값은 결코 자랑이 못된다. 야구 선수가 자존심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결국 그라운드뿐이다. 냉정히 말해서 세 선수는 빅 리그의 실패자고 KIA 타이거즈 역시 V9를 이룬 팀이 아니라 2007 시즌 꼴찌 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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