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 출연한 마이클 J 폭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I am careful not to confuse excellence with perfection. Excellence, I can reach for; perfection is God's business. -- Michael J. Fox
우수함과 완벽함을 혼동하지 않는 것만으로 나는 스스로를 사려깊다고 생각한다. 우수함은 인간이 정의하는 것이지만, 완벽함은 신의 영역이다. -- 마이클 J. 폭스
For spans of 34, 24 and 14 years, it never happened.
한번 나오면 32년, 24년 그리고 다시 14년 동안 나오지 않는 기록이 있다.
No one achieved it in the 1970s, 1940s, 1930s, 1910s, 1890s or 1870s.
1970년대, 1940년대, 1930년대, 1910년대, 1890년대 그리고 1870년대에는 그 누구도 이 기록을 달성하지 못했다.
A perfect game has occurred only 17 times in major league history. Thirty-five Septembers ago, Cubs right-hander Milt Pappas entered the ninth inning against the San Diego Padres needing three straight outs to become just the 10th pitcher to set down all 27 batters in a game.
퍼펙트게임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겨우 17차례 나왔을 뿐이다. 35년전 9월 시카고 컵스 우완투수 밀트 파파스(68)는 이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샌디에고를 불러들여 치른 안방 경기에서 8회까지 퍼펙트. 그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10번째 퍼펙트게임 투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아웃 카운트 3개뿐이었다.
밀트 파파스가 통산 200승을 거둔 1972년 9월 20일 경기장면. 시카고=AP
Pappas, in his 16th and penultimate season, had appeared in three All-Star Games and would retire with 209 wins. But he was best known as the man Baltimore gave up for Cincinnati's Frank Robinson in 1965 to pull off one of the best and most significant trades ever.
파파스는 메이저리그에서 17년을 뛰면서 올스타로 3번 뽑혔고 통산 209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965년 신시내티에서 프랭크 로빈슨(72)을 얻기 위해 볼티모어가 포기한 투수로 그를 기억하곤 한다. 이 트레이드는 볼티모어가 선수 이적 시장에서 실패한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On this afternoon, the baseball gods seemed to be with Pappas. Especially in the ninth. Billy Williams' lunging catch in left saved center fielder Bill North, who'd fallen down pursuing what would have been his ball. And when Fred Kendall's wicked shot went foul and the Padres' catcher then grounded to short, Pappas was one out away.
이날 오후 야구의 신은 완전히 파파스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은 같았다. 특히 9회에는 그랬다. 중견수 빌 노스(59)가 타구를 잃어버렸지만 좌익수 빌리 윌리엄스(69)가 쏜살같이 달려 나와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처리했다. 샌디에고 포수 프레드 켄달(58)이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지만 파울 라인 바깥에 떨어졌고 결국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이제 한 타자면 처리하면 퍼펙트게임이었다.
How good did things look for Pappas to complete the perfect game? Only three times had a pitcher failed to seal the deal when he needed but one more out.
이런 상황에서 퍼펙트게임이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때까지 타자를 26명을 완벽히 틀어막고도 퍼펙트게임에 실패한 경우는 세 번밖에 없었다.
Larry Stahl, a .232 career hitter, stepped to the plate as the only Padre between Pappas and perfection.
통산 타율이 .232에 불과한 왼손 타자 래리 슈탈(1941~1964)이 퍼펙트게임 마지막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타석에 들어섰다.
The left-handed batter swung and missed at the first pitch.
초구는 헛스윙.
Legendary Chicago broadcaster Jack Brickhouse set the tense scene for his WGN-TV audience:
시카고 컵스의 전설적인 캐스터 잭 브릭하우스 씨(1916~1998)는 WGN TV 중계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Wrigley Field, Chicago, Sept. 2, 1972. Milt Pappas, two outs in the bottom of the ninth, heading for a perfect game. Cubs ahead eight-to-nothing; Larry Stahl pinch-hitting for the pitcher; strike one the count."
"오늘은 1972년 9월 2일, 여기는 시카고 리글리 필드입니다. 밀트 파파스는 9회 2사까지 퍼펙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점수는 컵스의 8대 0 리드. 타석에는 투수를 대신해 대타 래리 슈탈이 들어섰습니다. 볼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낫씽"
Stahl didn't swing at the next pitch, and umpire Bruce Froemming called it a ball, outside, to even the count.
슈탈은 2구를 그냥 흘려보냈고, 구심 브루스 프뢰밍 심판(80)은 공이 빠졌다고 판단했다. 볼 가운트 원 스트라이크, 원 볼.
There was no stalling by Pappas between deliveries.
파파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세 번째 공을 던졌다.
"Pappas fires away. Swing and a miss! Ball one, strike two."
"파파스가 힘차게 공을 던집니다. 헛스윙입니다. 투 스트라이크, 원 볼."
Pappas was just one strike away from immortality.
파파스가 불멸의 대기록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였다.
"Here it comes. Outside! Ball two, strike two."
"투수 와인드업. 바깥쪽입니다. 투 스트라이크, 투 볼."
Pappas and Froemming were both born in 1939; both midwesterners with roots in Europe. The home-plate ump was a Milwaukee native of German origin. The pitcher had entered the world in Detroit, with the unmistakenly Greek surname of "Pappastediodis."
파파스와 프뢰밍 심판은 1939년생 동갑내기였다. 둘 모두 미국 중서부 유럽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뢰묑 심판은 밀워키에서 태어난 독일계였고, 마운드 위 투수는 "파파스테디오디스"라는 그리스식 성(姓)을 가진 디트로이트 태생이었다.
After 13 years of toiling in the minors and nearly two seasons in the majors, Froemming was now one of 14 men on the diamond -- four umpires, nine players, one batter -- who could determine whether Pappas and "perfect" would become synonymous that day, before 12,979 fans at Wrigley Field.
메이저리그에서는 2년차였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이미 13년을 보낸 프뢰밍 심판은 나머지 13명(동료 심판 3명, 수비팀 9명, 타자 1명)과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퍼펙트게임을 완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날 리글리 필드를 찾은 관중은 1만2979명이었다.
"Here it comes. It's a ball! Ball three, strike two. Low and away that time."
"파파스 투구에 들어갑니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온 볼입니다. 풀 카운트. 입술이 바짝 마르는 순간입니다."
In the most famous of perfect games, Don Larsen's 1956 World Series gem for the Yankees, veteran umpire Babe Pinelli called the 2-2 pitch to the 27th batter in Larsen's favor. Pinelli raised his right hand to ring up Brooklyn's Dale Mitchell, though many saw the climactic pitch as high and outside. Catcher Yogi Berra leaped into the arms of the newly lionized Larsen.
퍼펙트게임 중 가장 논쟁적인 경기로는 뉴욕 양키스 투수 돈 라센(78)의 1956년 월드시리즈 5차전을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라센이 던진 마지막 공이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온 볼이라고 생각했지만 베테랑 심판 베이브 피넬리(1895~1984) 구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삼진으로 경기가 끝나자 양키스 포수 요기 베라(82)는 힘차게 뛰어나가 유명인사가 된 라센에게 안겼다.
In this case, Froemming's call on 2-2 was a ball.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프뢰밍 심판은 2-2에서 볼을 선언했다.
Catcher Randy Hundley recalls that 2-2 pitch as "a strike, not 'right down Broadway,' but on the outside corner … a pitcher's pitch." But Hundley didn't dare argue, he says. Earlier in the game, he'd raised Froemming's ire by inadvertently brushing dirt on him when Hundley was really upset at himself for having popped out on an at-bat.
이 경기에서 파파스의 공을 받았던 포수 랜디 헌들리(65)는 "그 공은 스트라이크였어요. 물론 한 가운데로 들어온 공은 아니었죠. 하지만 바깥쪽에 걸친 좋은 공이었습니다.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코스었어요." 하지만 헌들리가 먼저 심판에게 항의할 수는 없없다. 그는 "경기 초반 내야 뜬공을 치고 나서 분한 마음에 심판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항의했다는 다음 공도 불리한 판정을 받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거다.
With the count full -- just the second time all game that Pappas got to three balls on a hitter -- Hundley gave the sign for a third straight slider.
이로써 풀카운트가 됐고 - 사실 파파스가 이 경기에서 상대 타자에게 3볼을 허용한 건 이때가 두 번째였다 - 헌들리는 3구 연속으로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Now here comes one of the most fateful pitches of the year. Ball three, strike two, two outs, perfect game on the line, no-hitter on the line. Watch it. It's a ball. And Pappas is enraged. Ball four. There goes the perfect game. The no-hitter is still intact. Milt Pappas doing a burn."
"이제 이번 시즌 가장 운명적인 투구를 시작합니다.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풀 카운트, 9회말 2아웃, 퍼펙트 게임이 이 공 하나에 달렸습니다. 노히트 노런도 이 공에 달렸습니다. 파파스 던집니다. 볼입니다, 볼. 슈탈, 볼넷으로 1루에 걸어 나갑니다. 파파스는 화를 내고 있습니다. 아직 노히트 노런이 남아 있습니다만 파파스는 분을 삭이지 못합니다."
Focused on what he'd lost, not what he could still achieve -- namely, a no-hitter -- Pappas unleashed a tirade toward Froemming.
아직도 대기록 하나가 그러니까 노히트 노런이 남아 있었지만 파파스는 퍼펙트게임이 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실망감은 프뢰밍 심판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After all, Pappas went from the verge of being the only Cub to throw a perfect game to the only pitcher in history to walk a game's 27th batter after retiring the first 26.
결국 파파스는 시카고 컵스 역사상 첫 번째 퍼펙트게임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남은 건 27번째 타자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실뿐이었다.
Far from subsiding, Pappas' bitterness has been brewing for 35 years.
35년간 끝나지 않은 파파스의 비통함이 시작된 순간이다.
"I still to this day don't understand what Bruce Froemming was going through in his mind at that time," Pappas says. "Why didn't he throw up that right hand like the umpire did in the perfect game with Don Larsen?"
파파스는 "전 지금까지도 그때 브루스 프뢰밍 심판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그냥 오른손을 들면 안 됐던 거죠? 돈 라센이 퍼펙트게임을 달성할 때 주심은 분명히 그래준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Pappas says his last three pitches to Stahl, judged by Froemming to be off the outside corner, were all much better than Larsen's historic pitch.
프뢰밍 심판은 바깥쪽으로 빠진 볼이었다고 선언했지만 라센이 던진 마지막 공보다 자신이 이날 슈탈에게 던진 마지막 공 세 개가 스트라이크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 파파스 주장이다.
"They were strikes or 'that close' to being strikes that he should've raised his right hand. I had the opportunity to have a perfect game and unfortunately, Bruce Froemming did not help me at all."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해도 이상할 게 없었어요. 충분히 오른손을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공이었죠. 브루스 프뢰밍 심판이 조금만 도와줬다면 충분히 퍼펙트게임을 할 수 있었다고요. 하지만 그는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Froemming says his lone concern on the last three pitches was, as always, location, location, location.
프뢰밍 심판은 생각은 다르다. 퍼펙트 게임보다 더 중요한 판정 요소는 로케이션, 로케이션 그리고 로케이션이라는 것이다.
"They were off the plate and I don't care if he gets a perfect game or not. I'm an umpire and I have to call a pitch where it is."
"공 세 개가 모두 빠졌습니다. 그의 퍼펙트게임을 도와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심판이 할 일이 아닙니다. 공이 들어오는 위치를 보고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하는 것, 그게 심판이 해야 할 일입니다."
But Pappas says the circumstances should have come into play for Froemming, and would have for any other ump.
하지만 파파스는 당시 정황상 프뢰밍 심판이 스트라이크 선언을 했어야 하며 다른 심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It's a home game in Wrigley Field. I'm pitching for the Chicago Cubs. The score is 8-0 in favor of the Cubs. What does he have to lose by not calling the last pitch a strike to call a perfect game?"
"리글리필드 경기였고 전 안방 팀 컵스 투수였어요. 8-0으로 우리가 이기고 있었죠. 스트라이크 하나면 퍼펙트게임이었습니다. 스트라이크 선언을 하지 않은 대가로 프뢰밍 심판이 얻은 게 도대체 뭔가요?"
"If it's a blatant pitch that anybody can see it's a ball, then he should've called it a ball. But it wasn't."
"확실히 볼이었다면 저도 이러지 않아요. 그랬으면 볼로 판정하는 게 맞았겠죠. 하지만 그건 충분히 스트라이크 감이었습니다."
Froemming says he knew that Pappas had a no-hitter, but didn't realize at the time that a perfect game was on the line. "I didn't know if anyone was on base or not. You don't pay any attention to that."
프뢰밍 심판은 그때 파파스가 노히트 노런을 기록 중인 건 알았지만 퍼펙트게임이 걸려있는 것은 몰랐다고 말한다. "구심은 주자가 루상에 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투구를 판정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How can you not realize," Pappas asks rhetorically, "when no one's gone to your right to touch first base? So I don't buy that."
그러나 파파스는 이번에도 완전히 반대다. "도대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죠? 아무도 자기 앞을 지나 1루로 걸어가지 않았는데요? 난 그 말을 믿지 않아요."
Froemming, now in the final month of a 37-year major league career, remains adamant that the gravity of the moment should never be a factor.
메이저리그에서 37년을 보낸 프뢰밍 심판은 이제 다음달이면 은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기록 달성이 눈앞에 있다고 해서 판정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As an umpire, you're not thinking on the pitch, 'geez, this is a perfect game,'" says Froemming. "You're not into that; you're an official, not a fan. I can't give him something that he doesn't have coming, either. It's either a ball or a strike, and that's the way I've umpired all my life."
"심판은 항상 공정하게 판정해야 합니다. '이게 스트라이크면 퍼펙트 게임이니까 잡아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팬들 바람은 그렇겠지만 그건 심판 양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어떤 기록을 만들어려고 볼 카운트 판정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고, 볼은 볼입니다. 그게 제가 평생 심판으로서 지켜온 소신입니다."
Hundley says the 3-2 pitch was a "hair low," but the couple before were "excellent."
헌들리 역시 풀카운트에서 들어온 공이 "아주 약간 낮았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전 두 개는 "아주 훌륭한" 스트라이크였다고 기억한다.
"I don't think anybody would've squawked," says Hundley, if Froemming had called any of the three a strike.
만약 프뢰밍 심판이 볼 세 개 가운데 하나라도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헌들리의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불평하지 못했을 겁니다."
In Stahl's recollection, the 3-2 pitch was "about four to six inches outside." He adds that all four balls were accurate calls and that Froemming appropriately called them as he saw them, rather than helping Pappas. "You can't do that. It'd be throwing a game," says Stahl.
또 다른 당사자인 슈탈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지막 투구에 대해 슈탈은 "공 한 개 반에서 두 개 정도 빠졌다"고 말한다. 덧붙여 슈탈은 프뢰밍 심판이 정확하게 판정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뢰밍이 파파스를 돕는 대신 공정한 판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슈탈은 "심판이 투수를 도와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건 경기를 망치는 일이죠"라고 말했다.
Television coverage of the pitches in question is inconclusive. The videotape from the high-angle camera fuels, rather than settles, the debate.
TV 중계 화면 역시 논란을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높은 각도에서 촬영한 화면이 오히려 논쟁을 부추겼다.
Time often heals old wounds, but not this one. Pappas says he only recently came across footage that is new cause for consternation. The video shows Froemming, after Stahl's base on balls, looking toward Pappas and then walking away, following an earful of invective from the pitcher.
시간은 대개 상처를 아물게 한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다. 파파스는 최근 그날 중계를 다시 보다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카메라는 프뢰밍 심판을 비추고 있다. 슈탈이 볼넷으로 걸어 나간 다음 장면이다. 프뢰밍 심판은 파파스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외면해 버린다. 이미 파파스와 한바탕 설전을 치른 이후다.
On WGN, Brickhouse said the following: "Froemming, the umpire walks out, he knows what's on the line here, he knows how important this is, he has his job to do, he called it as he saw it."
중계 화면에서 브릭하우스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뢰밍 구심이 걸어나오고 있습니다. 자신도 알았을 겁니다. 이 판정에 어떤 대기록이 걸려있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 대로 판정한 것뿐입니다."
The Brickhouse description didn't capture what Pappas sees now, more than three decades later. From Pappas' perspective, the umpire appears to be enjoying the moment.
그러나 브릭하우스 씨의 설명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현재 파파스가 새로 발견한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파파스에 따르면 프뢰밍 심판은 그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When he (Froemming) turns around and walks back to home plate, he has a smirk on his face, which I never noticed before," says Pappas. "Right then, again, I wanted to kill Bruce Froemming. I said, 'This man cost me a perfect game. Not only that, now he's smirking as he's walking back toward home plate, like' 'Ha ha, I gotcha.'"
파파스는 "설전이 끝나고 다시 심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면이었어요. 그걸 보고 나니까 브루스 프뢰밍 심판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녀석이 내 퍼펙트게임을 날려 먹었다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고소하다. 이 녀석아'하면서 실실 웃고 있잖아'하고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That's so inaccurate, it's unbelievable," Froemming says. "It's stuff that he's made up in his mind. I don't derive any pleasure if he got a perfect game or a one-hitter. It doesn't mean anything to me."
프뢰밍 심판은 강하게 부정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나더러 그걸 믿으라구요? 그건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파파스가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든 1안타 완봉을 거뒀든 그게 나에게 차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건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On that day in 1972, Pappas did get a no-hitter. After jawing at Froemming, he got Gary Jestadt on a pop-up, setting off a celebration. Pappas is the only man to miss out on a perfect game with one out to go and then complete a no-hitter by retiring the next hitter.
1972년의 그날 파파스는 결국 노히트 노런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프뢰밍과 한바탕 말싸움이 끝난 뒤 파파스는 게리 제스탓(60)을 내야 뜬공으로 처리했고 동료들은 그의 노히트노런을 축하했다. 경기 27번째 상대 타자를 상대로 퍼펙트가 깨진 뒤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건 파파스가 유일하다.
In his postgame interviews, Pappas didn't call out the man who called ball four.
경기 후 인터뷰 때도 파파스는 프뢰밍 심판의 볼넷 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The next day's Chicago Tribune, under a headline "Pappas Pitches No-hitter" and sub-headline "Perfection Bid Ends on Walk," quoted a diplomatic Pappas: "I wanted that perfect game so badly. But I guess I shouldn't be greedy. The pitches were balls. They were borderline but balls. Froemming called a real good game."
다음날 시카고 트리뷴의 헤드라인은 "파파스 노히트 노런!"이었다. 그 밑에 "퍼펙트 경기는 볼넷으로 실패"라고 부제가 달렸다. 그리고 파파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물론 퍼펙트게임에 몹시 욕심이 났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었습니다. 프뢰밍 구심 판정이 옳았습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볼은 볼이죠. 심판 판정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In Pappas's 2000 autobiography, "Out at Home," he explained the postgame remarks as "a lot of things meant strictly for public consumption at the time and to keep me from being fined."
그러나 2000년에 펴낸 자서전 '홈에서 아웃'을 통해 파파스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당시엔 대중들이 선수를 보는 잣대가 매우 엄격했다. 벌금을 피하려면 그렇게 인터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To this day, Pappas and Froemming disagree on just about everything. Pappas says they talked the day after the no-hitter; Froemming says they never spoke until meeting at a banquet several years later. Froemming says Pappas had an autographed ball delivered to him the next day; Pappas says Froemming personally asked him for the autographed ball.
오늘까지도 파파스와 프뢰밍 심판은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정반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파파스는 경기가 끝난 후 프뢰밍 심판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뢰밍은 몇 년 뒤에야 연회장에서 파파스를 다시 봤다고 주장한다. 프뢰밍 심판은 다음날 파파스가 알아서 택배로 사인볼을 보냈다고 주장하는 반면 파파스는 프뢰밍 심판이 먼저 사인볼을 요구했다고 말한다.
Pappas tempers his take only slightly in tribute to Froemming, for the longest tenure in umpiring history.
세월이 흘러 프뢰밍 심판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파파스의 분노는 여전히 수그러들 줄 모른다.
"I have to admire the guy for lasting as long as he did, but I still feel in my own heart that he robbed me of a perfect game. … I wish him nothing but the best. I just wish he had retired 37 years ago."
"물론 그렇게 오랜 기간 자기 자리를 지키는 분께는 존경을 표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프뢰밍 심판이 제 퍼펙트게임을 앗아간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요. 그의 은퇴에 깊은 찬사를 보내는 게 마땅하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진심으로는 그가 37년 전에 은퇴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On what is arguably the most controversial on-field episode of his career, and the one he's always asked about, Froemming offers a succinct summary judgment.
분명 이 주제는 그의 길고 긴 심판 인생에 있어 가장 논쟁적인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프뢰밍 심판의 대답은 한결 같이 짧고 간결하다."
"Pappas goes around telling everybody he took it in the shorts and that's not what was the case."
"파파스는 사람들에게 내가 일부러 볼 판정을 내린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William Weinbaum is a producer for ESPN's "Outside the Lines." ESPN correspondent Mark Schwarz contributed to this report.
이 포스트는 원래 ESPN.com에 올라온 'Froemming draws Pappas' ire, 35 years later'를 번역한 것으로 2019년 7월 11일 수정 및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