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구장은 보조 홈구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경기장 바로 앞에 펼쳐진 좌판 그리고 일방적이고 열렬한 홈팀 응원까지, 꼭 90년대 중반 프로야구의 중흥기를 다시 보는 것만 같았다. 안타까운 건 낙후된 경기장 시설 그리고 덜 세려된 경기 관람 문화까지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우선 의자가 너무 불편했다. 딱딱해서 불편한 걸 둘째 치고 앞뒤간 간격이 너무 좁아 불편했다. 그렇게 관중이 밀집된 지역에서 꽤 많은 팬들이 담배를 피워대니 관람 환경이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관중 보호를 위한 그물망마저 지나치게 촘촘했다. 일반 관객들만 눈이 피곤한 건 아니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전문적인 사진 기자들마저 그물에 바짝 다가가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얻기 힘든 구조였다.
조명탑으로 인해 경기장 지연된 점은 다음 경기에서 바로 시정됐다. 하지만 경기장으로 난입한 관중은 확실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종종 이물질을 경기장에 투척하는 모습도 보였다. 1년에 몇 차례 경기를 치르지 않는 탓이겠지만 성숙한 시민 의식이 요구된다고 할 만한 광경이었다. 첫날의 반가운 정겨움은 곧 실망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하지만 경기 자체는 꽤 흥미롭게 진행됐다. 첫 경기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고, 두 번째 경기는 유니콘스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두 경기의 WP 그래프를 통해 한번 경기 진행 양상을 알아보자.
먼저 5월 9일 경기다.
청주 구장은 중앙 펜스까지의 거리가 110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구장이다. 게다가 외야 펜스가 상당히 一자형으로 이뤄져 있어 실제 거리보다도 더 짧은 인상을 풍긴다. 말하자면 큰 거 한 방에 의해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1차전은 그런 양상으로 진해됐던 게 사실이다.
예상 밖에 김민재 선수가 먼저 선제 홈런을 날렸다. 곧바로 현대도 추격점을 뽑아내기는 했지만 '회장님' 송진우 선수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타자들이 너무 서두는 듯한 인상이었다. 번번이 체인지업에 큰 스윙으로 덤볐으며, 정작 절묘하게 제구가 된 직구에는 제대로 된 컨택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명탑이 고장났고, 어깨가 식은 송진우 선수는 마운드를 최영필에게 넘겼다. 최영필 역시 이택근에게 2루타를 얻어맞기 전까지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였다. 커브는 잘 '긁혔고' 송진우의 구위에 익숙해진 현대 타자들에게 그의 직구는 묵직함 그 자체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기가 막힌 노림수로 이택근이 선두 타자 2루타를 때려냈다. 대타 전준호의 희생번트, 그리고 경쾌한 타격음을 낸 정성훈의 타구는 역전 홈런이었다. 승부는 그대로 굳어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집사님' 송지만 선수가 일을 냈다. 2루수 채종국 선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던 타구를 뒤늦게 잡으려는 신호를 보내려다 안타로 연결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터진 이범호 선수의 동점 2루타, 현대는 선발 전준호에 이어 마운드에 올라 있던 황두성을 빼고 신철인을 넣었다. 대타 연경흠에게는 삼진을 빼앗아 냈지만, 신경현에게 결국 적시타를 허용하며 경기는 다시 4:3으로 한화가 리드하기 시작했다. 9회초는 당연하다는 듯 '대성풀패' 구대성 선수의 등장, 그리고 이택근 선수의 헛스윙으로 경기는 마무리 됐다.
현대 팬으로서 이 경기에서 몇 가지 선수 기용이 아쉬웠다.
▶ 이택근 선수가 8회초에 2루타를 쳤을 때 왜 대주자로 정수성을 기용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8회말 수비시 좌익수:송지만, 중견수:정수성 라인을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1점 승부에서 정수성 선수에게 타격을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결국 9회초에 대주자로 기용할 것이었다면 한박자 빠른 기용은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 8회말 동점 이후에 왜 박준수를 기용하지 않았을까? 이를 위해 한번 다음 그래프를 살펴 보자.
그래프에 표시된 숫자는 소위 Leverage Index라 불리는 수치다. 경기에서 어느 지점이 승부처인지를 보여주는 값이라 하겠다. 연경흠이 대타로 나온 동점 상황에서의 LI는 이날 경기 가운데 가장 높은 5.42였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님은 마무리 박준수 대신 신철인을 택햇다. 결과는 삼진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다음 타자 신경현에게 결국 역전타를 허용했다.
사실 여기에는 숨은 사정이 있다. 불펜에서 몸을 풀던 박준수 선수의 글러브와 모자를 누군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경기에 나서고 싶어서도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선수들의 경기 용품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팬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절도 행위다. 참 안타까운 점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렇게 결국 1차전은 끝났고 비로 하루 경기가 순연됐다. 그리고 최근 상승세인 두 선수 손승락 vs 류현진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승부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류현진 선수는 너무 일찍 밑천을 드러낸 반면 손승락 선수는 안타 하나에 사사구 하나밖에 허용하지 않으면 상대를 꽁꽁 틀어 묶었다. 사사구는 1회초 조원우 선수에게 허용한 몸에 맞는 볼이었고, 피안타 하나는 고동진의 번트 안타였다.
여기에는 내야진의 도움이 컸다. 채종국 선수는 김수연의 강력한 직선 타구를 놀라운 순발력으로 잡아냈으며, 연이여 보여준 정성훈의 타구 처리 역시 메이저리그 수준이었다. 한번은 좌우 처리 또 한번은 전후 처리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다만 지석훈은 여전히 타구 판단의 미숙함을 보여 안정적인 맛이 떨어지는 건 별 수 없었다.
그리고 1회말에도 큰 부상 없이 마무리 됐기에 망정이지 2루심의 다소 석연찮은 판정도 자칫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뻔했다. 고동진 선수와 채종국 선수 모두 최선을 다했다. 한 선수는 살아 남기 위해 2루로 전력 질주했고, 다른 선수는 느린 타구를 병살로 연결시키기 위해 힘껏 달렸다. 둘 사이에 작은 충돌이 있었다. 아웃/세이프 판정이 중요한 것이아니다. 선수의 부상을 염려하지 않은 판정은 확실히 잘못이다. 이미 여러 차례 오심 시비에 휘말렸던 심판이니만큼 좀더 신중한 판단을 내려주길 희망해 본다.
이로서 류현진 선수는 프로 데뷔 첫 패를 기록하게 됐다. 지금껏 너무 승승장구 해 온 류 선수에게 이번 패배는 한 뼘 더 자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본적인 구위가 뛰어난 선수이니만큼 문제점을 가다듬어 더욱 좋은 투구를 보여주길 바란다.
다시 현대가 1위다. 다시금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반짝 1위에 그칠지 주말 LG 시리즈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