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상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그 어떤 팀보다 먼저 마무리 훈련을 다녀왔고, 전지훈련 과정에서 이택근, 유한준의 방망이가 놀라울 만큼 매서웠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전력 보강은 없었지만 이번 시즌 준비에 관해서라면 여느 팀보다 더 충실한 모양새였다는 얘기다. 아직 별다른 진척은 없지만, 정민태, 김수경, 조용준 등 태국으로 재활 훈련을 떠난 부상 3총사 역시 후반기 복귀가 가능하다면 분명 전력에 보탬이 될 것이 틀림없다.
결국 현대가 이렇게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충분한 대비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서한규가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접은 후, 거의 한달 동안 지석훈, 차화준 등이 꾸준히 1군 무대에 출전했던 사실 역시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지난 해 후반기만 놓고 보자면, 권오준 부럽지 않은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박준수 역시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이 이번 시즌까지 이어지면서, 팀을 2위까지 이끈 셈이 됐다.
표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사실 삼성과 현대의 전력은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현대는 2점 이하의 박빙 상황에서 16승 15패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반면 삼성은 같은 상황에서 21승 8패를 기록했다. 여기서 5.5 게임차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강팀이 박빙에 강하다고 믿는다면 현대는 강팀이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상황에서의 승패는 운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대가 계속 이 상황에서 나쁘란 법도 없고, 삼성이 계속 강할지도 미지수다. 물론 전반기내 권오준-오승환이 보여준 포스가 무서운 건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10게임 당 평균 승수를 보면 초반 4연패의 부진한 출발에도 5할 승률에 달성하며 시즌을 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는 4월말부터 5월 중순까지 이어진 고공비행의 결과로 계속해서 5할을 상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9연승이 끊긴 이후 내리 4연패에 빠지며 힘을 잃은 모양새를 보이고 만다. 한화에게 승리를 거두며 실로 오랜만에 6을 기록하기까지 현대는 강팀과는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수비는 확실히 평균 이하의 모습이다. 투수력은 크게 나쁘지 않다. 3.49의 FIP는 두산(3.30)과 롯데(3.45)에 이어 리그 3위 기록이다. 구장 차이를 감안하자면, 이들과의 차이는 좀더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DER .692에 그친 수비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700 밑으로 떨어진 꼴찌다. 이번 시즌처럼 투고타저가 현저한 득점 환경에서 이런 수준의 수비는 확실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DER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더더욱 그렇다.
사실 시즌 개막전보다 수비가 나아졌다고 평을 할 수 있는 선수는 차화준과 이택근뿐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실력의 향상이라기보다 포지션에 적응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차화준은 주전급은 아니더라도 대수비 요원으로 치자면 떨어지는 편은 아니다. 이택근의 중견수 수비는 여전히 눈뜨고 보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확실히 시즌 초반처럼 어이없는 타구 판단 미스는 잘 저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대안은 사실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홍원기의 가세 역시 공격에서는 도움이 됐지만, 수비에서 많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이숭용이 버틴 1루의 순위가 많이 떨어지는 건 출루율(.427) > 장타율(.406)이라는 1루수로는 보기 드문 타격 라인이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캡틴이 타석에서 보여주고 있는 참을성은 확실히 놀라운 수준이며, 최근 살아나기 시작한 서튼을 감안할 때에도 중심 타선 전체에 집중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택근이 이런 모습을 조금쯤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들 인필더진은 사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합친대도 딱 저 정도 수준일 것이다. 사실 리그 꼴찌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렇다고 평균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모습. 수비에서는 솔리드하지만 공격에서의 채종국은 시즌 초반부터 계속해서 자동 아웃 모드고, 차화준 역시 경험 부족이 너무도 자주 드러난다. 서한규는 복귀 이후 반짝했지만 사시 예의 서한규로 돌아갔고, 홍원기의 방망이는 확실히 팀에 도움이 됐지만 그의 수비 범위는 확실히 칭찬해주기 힘든 수준이다. 확실히 이 포지션이 팀의 가장 취약점이다.
정성훈이 버틴 3루는 확실히 안정이 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장염으로 정성훈이 출장을 하지 못했을 때에도 지석훈과 홍원기가 훌륭하게 채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달이 지날수록 공/수 모두에서 정성훈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어느덧 .283/.362/.442까지 타격을 끌어 올렸다. 게다가 승부처에서도 적시타를 때려내는 등 집중력까지 향상되고 있어 더더욱 믿음직스럽다. 후반기에는 이범호를 제치고 최고의 3루수 자리를 꿰찰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외야 및 지명타자 자리 역시 타 팀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전준호는 늘 그렇듯 필요할 때 해준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고, 이택근은 완전히 물이 오른 상태다. 결국 변화구 공략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애를 먹었지만, 유한준 역시 가능성은 보여준 전반기였다. 서튼은 이제 예의 친절한 모습을 보여줄 채비를 시작했고, 강병식은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대타로 거듭났다. 송지만의 타격(.250/.330/.353)은 재앙이지만 역시 최근 들어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후반기에는 타격 또한 같이 올라오길 기대해 본다. (이모티콘 안 쓰려고 했는데, 송 집사님 정말 -_-++)
이현승의 활약 또한 칭찬해 줄만 하다. 그는 현대 불펜의 유일한 붙박이 좌완 요원이었다. 좌타자를 상대로 .250/.279/.350밖에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먼저 칭찬해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전체 좌타자 65명 가운데 22명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33.8%의 탈삼진 비율을 기록한 것이다.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의 역할이라면 확실히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는 얘기다.
그밖에 송신영, 전준호 등 기존 자원들 역시 팀이 어려울 때 한 몫씩 챙겨주며 투수 운영에 있어 윤활유 역할을 해줬다. 이보근 또한 그리 많은 이닝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구속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보여준 게 사실이다. 다만 투수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지난해 '마당쇠' 노릇을 톡톡히 해준 황두성의 부진이다. 당초 마무리 투수로 내정될 정도였지만, 5.32의 방어율은 확실히 지난해 보여준 모습과 거리가 멀다. K/9는 9.66으로 여전히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자랑하지만 5.91이나 되는 BB/9는 확실히 염려스런 수준이다. 스터프 자체는 안정적이지만 커맨드에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김수경은 비록 1승에 그쳤지만 마운드에 오를수록 침착함이 느껴지는 반가운 모습이었다. 당장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후반기에 선발 로테이션이 돌아가는 데 있어 김수경의 존재는 분명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정민태는 2군에서도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지만, 본인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후반기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1군에서 얼굴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 본다. 다만 조용준은 구위나 자세나 다소 염려스럽다. 조용준이 가세해야 박빙 승부에서 좀더 강한 면모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확실히 아쉬운 대목이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수원 구장의 터줏대감 할아버지가 크게 외치셨다. "현대여, 내년 7월엔 제주도에서 경기하자." 물론 시즌이 개막되기 전에는 이 소리가 모두에게 거짓말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분명 가능성이 충분히 높은 이야기다. 내년에는 꼭 제주도에서, 그것도 되도록 다시 홈팀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영원한 내 사랑, 현대 유니콘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