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싫든 유니콘스 야구의 근간은 번트다. 물론 아웃 카운트 하나를 상대에게 손쉽게 헌납하는 건 확실히 좋은 징조는 아니다. 하지만 그 타자의 이름이 배리 본즈가 아닌 이상, 모든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서 아웃이 될 확률이 더 높다. 그렇다면 아웃 카운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오히려 현명하다고도 볼 수 있다. 현대는 번트를 가지고 이를 활용한다.
하지만 SK와의 3연전에서는 번트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세 경기에서 모두 34개라는 엄청난 잔루를 남겼다. 경기당 평균 11개가 넘어가는 기록이다. 물론 잔루의 가장 큰 원인은 장타 부족이다. 하지만 최근 10경기에서 현대 타선의 IsoP는 .092밖에 되지 않는 형편이다. 이는 두산(.071)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나쁜 기록이다. 따라서 떨어진 장타력을 상쇄할 수 있는 작전, 즉 번트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했는데 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사실 너나 할 것 없이 번트에 있어 미숙한 모습을 보였기에 더더욱 충격이 크다. 정성훈은 속도 조절에 실패했고, 김동수는 방향이 너무 정직했다. 물론 넉 점 차이로 앞서고 있는 8회 공격에서도 번트가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유한준은 번트 파울 두 개로 번트가 가능한 상황을 아예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번트의 달인이라 불려도 좋을 전준호 선수마저 박경완의 머리 위로 타구를 띄우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유한준의 상황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재박 감독님의 욕심도 지나친 모습이 크다. 어쩌면 잇단 번트 실패에 대한 경고성 차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불필요한 상황에서 번트 지시가 몇 개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SK 타선의 최근 상승세를 감안하더라도 8회말 넉 점은 안전한 점수다. 굳이 번트 지시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숭용이 선두 타자로 나와 2루타를 친 시점에서 번트 사인이 나온 것도 아쉬웠다. 이미 한번 번트가 실패한 타이밍에서 이숭용의 발로는 확실히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SK와의 시리즈에서 2사 이후 총 9실점이나 한 것이 루징 시리즈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하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위기가 온다고들 한다. 그리고 현대 타자들은 확실히 작전 수행 능력에 있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실점이었다. 반 게임 차 앞서 있는 한화와 경기를 치르는 데 있어, 이 점은 확실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인조잔디가 깔린 대전 구장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