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에 김재박 감독님 LG행까지 참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아껴두고 있었습니다. 사실 충격에 연이어 또 충격이라 일부러 유니콘스 이야기를 꺼내기가 싫었습니다. 블로그를 자세히 보시면, 레드삭스가 몰락을 시작한 이후에는 레드삭스 이야기도 거의 없었습니다. 비겁하게 말하자면, 생업도 아닌데 보기 싫은 건 안 보고 살 자유 쯤 제게도 있으니까요.
응원팀이라는 건 어쩌면 그런 모양입니다. 그리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mlbpark의 eunie2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어디가서 야구를 알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도, 본인 스스로를 야구 팬이라기보다 베어스 팬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팬들 앞에서는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저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유니콘스 팬으로서 가지는 한계라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KIA와 한화의 準플레이오프 시리즈를 가지고 Win Probability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원래는 플레이오프 때 쓰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 숫자를 '마음'이 해석할 겁니다. 그래도 돈 받고 쓰는 글인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리 앞당겨 썼습니다. 그리고는 원고료가 들어오는 '기사'는 계속해서 현재 진행 중인 포스트 시즌과 관계없는 것들만 씁니다. 사실 요즘 한국 시리즈를 지켜보는 일이 굉장히 괴롭거든요.
올해만큼 꼭 우승이다! 하는 생각이 든 시즌이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삼성이야 언제든 이길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갖고 사는 게 유니콘스 팬의 숙명이지만, 올해는 정말 이길 것 같았습니다. 1차전을 같이 본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헹가래'라는 낱말을 떠올렸고 스윕 내지 3승 1패로 KS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견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덕분에 속이 많이 상했고, 야구의 '야'자도 듣기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터진 감독님의 LG행. 사실 이건 별로 충격이 크지 않았습니다. 시즌 중반부터 계속해서 소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들도 있었고 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해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김용달 코치님의 LG행 루머가 돌았을 때 다소 마음이 풀어졌던 것도 사실인 모양입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코칭 스탭의 조각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든 확실히 '개편'이라는 낱말이 쓰일 듯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이 팀이 이렇게 모두가 떠나고 싶어하는 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삼미 시절 18연패에 허덕여도 내가 야구장에 안 갔을 때 이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팀이고, 어쩌다 포스트 시즌에만 진출해도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팀인데 말입니다. 결국 인천을 떠난 것이 무슨 '저주'로 작용한 것도 아닌데, 모기업의 재정난이라는 건 확실히 쉽게 타개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작년에 현대는 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렀고 그래서 사실 열성적으로 현대를 응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고 야구를 즐기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올해는 책만 사놓고 읽지 않은 게 꽤 됩니다. 그만큼 부지런히 야구장에서 시간을 보낸 탓입니다.
각국에서 챔피언을 겨루는 시리즈가 벌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올해는 철저히 방관자이던 지난 해보다도 시즌이 일찍 끝난 것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 겨울에 좀더 야구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다 재미있는 것들이 나오면 여기서 또 여러분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더 많이 배워서 더 열심히 이 팀을 사랑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유니콘스 팬 여러분, 힘내세요. 여기 이렇게 남아서 현대를 응원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동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