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구랍 28일 KBL은 트라이아웃 제도 부활을 골자로 한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 변경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사실 필자 역시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피트 마이클의 거짓말 같은 기록(46점, 23리바운드)을 보면서, KBL이 얼마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고심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

10년 전 '농구대잔치'가 과감히 프로化를 선언할 수 있던 배경은 바로 '오빠 부대'였다. 연·고대를 비롯해 대학 선수들을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여학생 팬들은 늘 경기장을 가득 매웠다. 우지원이 코트에 한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체육관 전체가 강진에 휘말린 듯 오빠 부대의 발 구르는 소리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선수들 역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형님뻘인 실업 팀과의 경기에서도 연거푸 승리를 챙기며 이들은 소위 '농대' 세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신기성, 현주엽, 김병철 등 당시의 스타가 현재까지도 리그에서 가장 인기 높은 선수들이라는 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 점프볼

물론 KBL도 스타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10년간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수준의 스타라고는 김주성과 김승현뿐이다. 물론 AG 이후 양동근의 활약 역시 주목할 만하지만, 지난 시즌 그에게 MVP 자격이 있었느냐를 물어보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프로 스포츠의 인기는 스타 선수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 있어서 KBL 출범 이후의 상황은 확실히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국내 선수들이 뛰어야 할 자리를 외국인 선수들의 차지한 게 문제다. 주전에 끼지 못한 국내 선수들은 자기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제대로 얻기가 어렵다. 물론 외국인 선수들 역시 KBL이 만들어낸 스타다. 하지만 이 선수들을 보유하기 위해, 특히 자유 계약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 우리 구단은 엄청난 '뒷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일부 외국인 선수의 몸값이 100만 달러가 넘어간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일 정도다. 그렇게 돌아온 것이 겨우 '용병 리그'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우리 프로 농구의 현주소다.

사실 외국인 선수 제도는 5년 기한을 두고 만들어진 제도였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국내 농구를 평정한 서장훈을 견제하고, 대학 농구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외국인 선수 제도인 것이다. 프로 농구 출범 첫해 리그 규약에는 분명 올스타전은 국내 선수팀과 외국인 선수팀의 대결로 치러지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 대결은 프로 출범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실제로 성사된 바가 없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이 국내 선수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스포츠조선

지금처럼 외국에서 수십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던 선수들이 국내 무대를 점령한 시기의 일도 아니다. 외국 리그에서 10만 달러도 받지 못하던 맥도웰이 국내 리그를 완전히 평정했을 때의 일이다. 이후 우리에게 돌아온 건 KBL 홈페이지에 자랑처럼 내걸린 각종 기록의 국내 선수 랭킹이다. 도저히 외국인 선수들과 기록 경쟁을 펼칠 수 없기에 국내 선수 코너를 따로 마련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ULEB컵에서 MVP를 수상한 피트 마이클이 국내 팀에서 플레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확실히 국내 리그가 입기엔 너무 값 비싼 옷을 걸친 듯한 기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KBL 각 팀은 고민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괴물급' 외국인 선수와 그의 에이전트는 당당하게 '뒷돈'을 요구한다. 이를 거절하자니 다른 팀에서 가로챌까 겁이 난다. 결국 국내 팀끼리 우수한 실력의 외국인 선수를 차지하기 위해 무한 출혈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사실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 변경은 현재와 같은 제도를 고집해서는 각 팀 모두가 공멸을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삼성 썬더스 홈페이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국내 빅 맨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이들을 위해 2~3쿼터 외국인 선수 출장 제한을 뒀지만, 이 자리에 국내 빅 맨을 넣기에도 상황은 애매하다. 상대 팀이 3가드 시스템으로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수비 매치업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용병 의존도는 더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국내 선수들은 모두 색깔을 잃고 외국인 선수에게 볼을 공급해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어시스트 부문의 상위권을 국내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더라도 결코 반길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결국 언제가 되더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였다. 지나치게 높은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도 문제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선수를 기용해야만 한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컸다. 외국인 선수는 각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용병 하나 잘 뽑아서 우승하라고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각 팀의 전력 평준화를 위해, 재미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각 팀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재미를 반감시키는 구실밖에는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http://www.kadon.net

외국인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가 관중을 모은다는 주장은 사실 설득력이 높은 편이다. 외국인 선수가 한 명만 출전하는 2~3 쿼터에 재미가 반감된다고 말하는 농구팬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또한 재계약을 2회로 제한하는 조치 역시 외국인 선수를 단지 '용병'만으로 본다는 오해를 살 만한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말 왓킨스는 동부의 임시 주장으로 선임될 만큼 이미 팬들에게는 물론 팀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약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외국인 선수들에게 정을 주지 말라는 선고처럼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결국 국내 리그의 주인공은 국내 선수가 되어야 한다. 현재는 주객이 전도돼도 너무 지나치게 전도돼 있는 상황이다. 이번 선발 제도 변경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때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국내 리그에서 3 시즌 이상을 뛴 용병의 숫자를 헤아리기에 앞서, 3시즌 이상을 뛰면 왜 '뒷돈'을 요구하기 시작하는지를 먼저 반성했어야 했다. 그리고 왜 뛰어난 외국인 선수 없이는 정당한 승부를 펼칠 수조차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곰곰이 되짚어 봤어야 했다. 사후약방문이 극약처방이라 많은 팬들이 어리둥절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라도 확실히 결단을 내렸다는 걸 그런 점에서 칭찬해줘야 한다고 본다.


ⓒ 점프볼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을 끌어내려 국내 선수들이 제 색깔을 찾아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리그의 장기적인 운영을 고려하자면 확실히 이 쪽이 낫다. 국내 선수들의 실력 향상이라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 농구는 국내 선수들의 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존재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결과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처럼 국내 선수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선수들이 리그를 지배한다면 이들의 존재 이유도 결과도 찾을 수가 없다.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가 정당한 대결을 펼칠 수 없는 구조 속에서는 국내 선수가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리그의 재미와 인기는 실력과 수준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 핸드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며, 올림픽이나 AG가 있을 때마다 핸드볼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스포츠팬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핸드볼 리그의 인기가 갑자기 급상승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브라질과 잉글랜드 대표팀간의 축구 경기보다 한일전이 더더욱 재미있고 인기가 있는 것 역시 관심도와 몰입도의 차이지 실력과 수준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대학 농구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땐, 코트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프래카드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구단에서 나눠 준 응원 도구가 아닌 팬들 스스로 제작한 배너였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습은 아련한 꿈일 뿐이다. 스타가 너무도 부족한 리그에 팬들의 몰입도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보기인 셈이다. 몰입도가 떨어지는 종목은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몰입도를 위해, 장기적인 인기를 위해 KBL은 용단을 내린 것이다. 늘 습관처럼 협회의 결정을 비난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KBL의 선택을 존중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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