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24 프랑스 오픈 1회전 경기를 치르고 있는 라파에 ㄹ나달. 파리=로이터 뉴스1

파리도 이대로 황제를 떠나보내기는 싫었나 봅니다.

 

'클레이 코트 황제' 라파엘 나달(38·스페인)이 2년 만에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경기를 치른 27일(현지시간) 파리 하늘은 계속 비를 뿌렸습니다.

 

이 대회 메인 경기장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는 지붕을 닫은 채 이 코트에서 가장 사랑받은 남자 나달을 맞았습니다.

 

지붕을 닫으면 응원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게 당연한 일.

 

이날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 1만5000명은 나달에게 일방적인 응원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붕을 닫으면 동시에 나달의 트레이드마크인 톱스핀이 무뎌지게 됩니다.

 

매치 포인트에 몰린 황제는 이 코트에서 우승 트로피를 14번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도왔던 무기 포핸드 다운더라인을 선택했습니다.

 

이 공이 코트 바깥에 떨어지면서 황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롤랑가로스에서 가장 먼저 짐을 싸야 하는 선수가 됐습니다.

 

라파엘 나달-알렉산더 츠베레프 2024 프랑스 오픈 1회전 마지막 포인트. 대회 홈페이지

나달은 2024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1회전에서 3시간 5분 만에 알렉산더 츠베레프(27·독일·4위)에게 0-3(3-6, 65-77, 3-6)으로 패했습니다.

 

2005년 처음으로 프랑스 오픈에 출전해 바로 우승했던 나달이 이 대회 1회전에서 탈락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달 이후에는 특정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에 처음 출전해 바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나달은 이날까지 프랑스 오픈에서 116경기를 치러 112승 4패(승률 96.6%)를 기록했습니다.

 

특정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에서 이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한 선수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요컨대 2005년 이후 20년 동안에는 나달이 곧 프랑스 오픈이었습니다.

 

이 대회를 개최하는 프랑스테니스연맹은 2021년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 앞에 나달이 포핸드를 치는 모습을 모사한 동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나달이 은퇴하면 이 경기장 이름을 라파엘 나달 코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 앞에 서 있는 라파엘 나달 동상. 파리=UPI

나달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해 "올해가 마지막 프랑스 오픈이 될 것 같지만 100% 그렇다고 얘기하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은 지 오래.

 

나달은 이날 경기 후 "지난 2년간 내 몸은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날은 뱀, 다른 날은 호랑이에게 물린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코트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재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호주 오픈 이후 1년 가까이 코트를 떠나 있었던 나달은 올 시즌 첫 대회인 브리즈번 인터내셔널을 통해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통증이 찾아오면서 또 코트를 떠나 있어야 했고 클레이 코트 시즌을 맞아 복귀한 뒤에도 그 어떤 대회에서도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나달은 11일 열린 이탈리아 오픈 2회전에 후베르트 후르카츠(27·폴란드·8위)에게 패한 뒤 이날 바로 또 패전을 기록했습니다.

 

나달이 클레이 코트 경기에서 연패를 경험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2024 프랑스 오픈 1회전 경기가 끝난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라파엘 나달. 대회 홈페이지

프랑스테니스연맹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고별 행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달은 이를 사양했습니다.

 

나달은 일단 두 달 후 역시 롤랑가로스에서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달은 2008 베이징(北京)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런 기대는 모두 '꿈'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겁니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나달이 앞으로 코트에서 보내는 시간은 '덤'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든 나달이 클레이 코트 황제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를 상징하는 문구 '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을 누구보다 멋지게 증명한 선수가 나달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테니스가 나달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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