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가 이상하다. 팀의 에이스 역할을 책임져야 할 피비가 전혀 그답지 못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반기 내내 4승밖에 올리지 못하면서 패는 8번이나 당했다. 방어율 역시 4.46이나 된다. 지난 2년간 계속 2점대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갑자기 너무도 나빠진 기록이다. 도대체 피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기록을 자세히 뜯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피비는 작년과 비교할 때 거의 똑같은 비율로 삼진을 잡아내고 있다. 근소한 차이지만 볼넷 역시 줄었다. 그 결과 4.54의 K/BB는 데뷔 이래 최고의 기록이다. 하지만 홈런 허용이 급격히 늘어났다. 수치 자체가 작아서 차이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홈런 허용 비율이 42%나 늘었다. 결국 많은 피홈런이 높은 방어율의 원인이 된 셈이다.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펫코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는 확실히 아쉬운 점이다.
게다가 수비 지원 역시 만족스런 수준이 못 된다. DER은 인플레이된 타구가 아웃으로 처리되는 비율을 보여주는 지표다. 파드레스의 팀 DER은 .718이나 된다. 즉, 타구가 구장 안에서 플레이 됐을 때 그 가운데 71.8%는 아웃이 됐다는 의미다. 샌디에고의 DER은 NL 전체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그런데 피비만 유독 이 뛰어난 수비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규정 이닝 이상을 투구한 NL 투수 47명 가운데 피비보다 낮은 수비 지원을 받는 선수는 9명뿐이다.
일반적으로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LD)를 많이 허용할수록 수비 지원에서 불리함을 안게 된다. 하지만 이번 시즌 피비의 LD%는 19.1%로 NL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했던 '04년(20.6%)이나 작년(20.5%)보다 낮다. 이 두 시즌의 DER은 각각 .701, .724로 준수했다. 유사한 수준의 LD%를 기록하고 있는 페드로 마르티네즈(19.4%)가 DER .760의 수비 지원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도 확실히 피비는 수비 지원이 아쉬울 것이다.
이번 시즌 피비는 14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이 가운데 10개는 솔로 홈런이었다. 따라서 주자가 나가 있을 때 홈런 한방에 무너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루상에 득점권이 있는 경우 그는 평소에 비해 삼진을 잡아 내지 못했고(21.2%), 볼넷을 남발했다(11.5%). 피홈런은 줄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헤쳐 나오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잔루 처리 비율이 70.0%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데뷔 시즌인 '02년 이후 가장 낮은 기록이다.
투수의 잔루 처리 비율이 위기관리 능력의 결과물인지 단순한 행운인지는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클러치히터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와 마찬가지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위기 상황에서 피비는 확실히 평소만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따라서 패는 늘고 방어율도 치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현재까지 피비의 기록은 지구 1위 팀의 에이스에게 어울리는 기록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어율은 4점대 중반으로 칭찬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향후 성적을 예측하도록 도와주는 FIP(3.27)나 xFIP(3.51) 모두 방어율보다 낮은 기록이다. 이럴 경우 해당 선수의 성적이 나아지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후반기에는 상승세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현재는 다른 지표가 보여주는 능력치에 비해 피비의 방어율이 확실히 너무 높다.
아직 박찬호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다. 현재 팀이 지구 1위를 달리고 있고, 박찬호 역시 예년에 비해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올해가 박찬호 자신의 플레이오프 데뷔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피비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박찬호와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피비의 부활을 비는 까닭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투심으로 무장한 두 에이스의 후반기 활약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