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동화책 '금지어 시합' 표지. 좋은책어린이 홈페이지

"'동무'라는 낱말을 북한에 빼앗긴 게 천추의 한이다."

 

한 아동 문학가가 이렇게 한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포츠부 기자 및 데스크 한 사람으로서는 '시합(試合)'을 빼앗긴 상황이 그렇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시합은 일본식 한자어"라며 경기(競技), 겨루기 등으로 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합을 경기로 100% 대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다.

 

느낌적 느낌으로는 '경기 ⊃ 시합'라고 생각힙니다.

 

그러니까 선수는 경기를 하지만 오늘은 시합 날이 되는 겁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 규칙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01 야구는 펜스로 둘러싸인 경기장에서 감독이 지휘하는 9명의 선수로 구성된 두 팀이 한 명 이상의 심판원의 주재 아래 이 규칙에 따라 치르는 경기이다(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한 경우 10명이 된다).

 

(중략)

 

1.06 정식경기가 끝났을 때 이 규칙에 따라 더 많이 득점한 팀이 승자가 된다.

 

1.01에 나오는 '경기'와 1.06에 나오는 '경기'는 뉘앙스가 다르지 않나요?

 

주술 관계를 바탕으로 1.01을 해석하면 '야구 = 경기'가 됩니다.

 

이럴 때는 '야구 = 종목'이 더 어울리는 표현 아닌가요?

 

이에 대해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을 대한체육회일본올림픽위원회(JOC)에서 어떻게 번역했는지 알아보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프로그램을 종목 → 세부종목으로 나눕니다.

 

45.1.2.1 올림픽 대회의 모든 종목을 포함하고, IOC의 인정을 받는 IF(kini註 - 국제경기연맹)가 관장하는 종목 중에서 IOC 총회가 정한 종목 프로그램 (이하 ‘종목 프로그램’으로 명기)

 

1.2.2 모든 세부종목을 포함하고, 올림픽대회와 관련하여 IOC 집행위원회가 정한 세부종목 프로그램 (이하 ‘세부종목 프로그램’으로 명기)

 

세부종목은 메달이나 상장 수여로 이어지는 순위로 결과가 나오는 종목의 개별 경기를 지칭한다. 세부종목 프로그램은 종목 프로그램에 포함된 각 종목에 대한 세부종목을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도 '세부 종목 = 개별 경기'입니다.

 

그런데 세부 종목은 개별 경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올림픽 남자 축구에 조별 리그 각 경기가 있는 것처럼 세부 종목에도 개별 경기가 따로 있습니다.

 

JOC는 '경기 → 종목' 구조로 올림픽 프로그램을 나눕니다.

 

45.1.2.1 特定のオリンピック競技大会での全競技を包括する競技のプログラムで、 IOC の承認する IF が統括する競技の中から総会が決定したもの (「競技プログラム」)

 

2.2 IOC 理事会が定めた、 特定のオリンピック競技大会での全種目を包括する種目のプログラム (「種目プログラム」)

 

種目は 1 競技における特定の試合で、 順位が確定し、 メダルおよび賞状の授与につながるものである。 種目プログラムは、 競技プログラムに含まれている各競技の種目を含まなければならない。

 

이런 구분법 덕에 시합을 넣어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JOC 번역 따르면 특정 시합 결과에 따라 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경기가 바로 종목입니다.

 

대한체육회 번역과 합쳐 '종목'을 '세부종목'으로 바꾸면 개념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야구기구(NPB) 공인 야구 규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01 野球は、囲いのある競技場で、監督が指揮する9人のプレーヤーから成る二つのチームの間で、1人ないし数人の審判員の権限のもとに、本規則に従って行われる競技である。

 

(중략)

 

1.06 正式試合が終わったとき、本規則によって記録した得点の多い方が、その試合の勝者となる。

 

NPB 공인 야구 규칙에서 야구는 경기 그러니까 종목이고 시합으로 승패를 가립니다.

 

또 시합만 일본어 '시아이'에서 왔고 경기는 일본어 '고기'와 무관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競技(경기)'를 찾아보면 순종 7년(1914년)이 되어서야 '엽우경기대회(獵友競技大會)'라고 딱 한 번 나올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경기는 경기로, 시합은 시합으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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