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트레버 호프만이 MLB 마무리 투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박찬호 소속팀 샌디에고의 마무리 호프만은 24일 경기에서 세이브 하나를 추가하며 통산 세이브 숫자를 479개로 늘렸다. 이로써 호프만은 1997년 은퇴한 리 스미스를 제치고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투수가 됐다. 이 가운데 샌디에고에서 기록한 세이브는 모두 477개. 물론 역사상 가장 많은 기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메이저리그 팬들이 호프만을 기억하는 건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그라운드 안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 느끼게 만드는 체인지업. 또 하나는 호주 출신 락밴드 AC/DC의 "Hells Bells"다. Hells Bells는 샌디에고 홈구장 펫코 파크에서 호프만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트레버 타임"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게 빠졌다. 바로 샤워다.

운동선수가 샤워를 자주하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호프만은 좀 유별나다. 호프만은 경기가 있는 날 야구장에 굉장히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구장에 도착해 먼저 조깅으로 간단히 몸을 푼다. 그리고 샤워실에 들어가 땀을 씻고 그라운드에 나와 동료 투수들과 함께 간단히 번트 연습. 투수들 타격 연습이 끝나고 타자들이 그라운드에 나서기 시작할 때가 되면 호프만은 다시 샤워실로 향한다. 샤워를 끝마치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팀 미팅에 참가한다. 그 다음에는 기자들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면서 경기 시작 전까지 시간을 보낸다. 샤워는 이미 두 번.

경기가 시작되면 호프만은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본다. 처음 4~5회 동안은 그저 타자들을 지켜보고 다른 불펜 투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다. 그러다 5회가 끝나면 다시 샤워를 하려고 클럽하우스를 향한다. 호프만은 샤워 부스 안에서도 중계 시청을 잊지 않는다.

호프만이 불펜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7회 쯤.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경기에 나설 준비를 모두 마쳐놓는 것이다. 등판하기 전까지 공을 20~25개 정도 뿌리면서 차례를 기다린다. 그리고 "Hells Bells" 소리를 들으며 그라운드 안으로 나서는 것이다. 경기장에 온 이후 모두 샤워를 세 번은 끝낸 후에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프먼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샤워를 총 다섯 번 한다. 경기장에서 세 번, 아침에 한번, 경기가 끝나고 한번. 몸을 씻는 행위로 정신을 가다듬는 자세는 동양적 사고를 연상케 한다. 그것이 어떤 정신에 따른 행동이든간에 확실한 건 경기 내용이나 생활 태도 모두 가장 "깨끗한" 마무리 투수가 바로 트레버 호프만이라는 사실이다.

호프만은 투수로 데뷔했던 게 아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만 해도 그는 사실 눈에 띄지 않는 내야수였다. 호프만은 뒤늦게 투수로서 다시 태어났고 1990년대 후반 직구 구속이 떨어졌을 때는 체인지업을 연마해 특급 마무리로 다시 거듭났다.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까지 계속해서 변화와 발전을 계속해왔다는 얘기다.

오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샤워기를 틀어 놓고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역시 대선수란 아무나 될 수 없는 모양이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