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제38회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 남자 일반부 단식 결승 도중 미래에셋증권 벤치를 지키고 있는 오상은 코치. 대한탁구협회 제공

'다 이겼는데 쟤가 갑자기 왜 그러지?'

 

코치가 역전패 위기에 몰린 '상대 선수'를 보고 이런 의문을 품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저런 의문이 들었다고 그 사실을 공개하는 일은 더욱 드뭅니다.

 

그러나 오상은 미래에셋증권 코치(45)는 5일 열린 제38회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 남자 일반부 단식 결승 도중 저런 의문이 들었다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소속팀 선수 강동수(28)와 맞붙은 '쟤'가 둘째 아들 오준성(16·서울 대광고 1학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38회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 남자 일반부 단식 결승 도중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두 선수. 대한탁구협회 제공

오 코치는 "준성이가 처음 두 세트를 가져갈 때는 상대가 내 아들이지만 제자가 지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3, 4세트에서 동수가 준성이를 추격하니까 '내 아들이 왜 저러지?' 싶어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도중 마음이 오락가락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덤덤했습니다.

 

오준성은 "아버지가 상대 벤치에 앉아 계셨던 게 처음이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웃었습니다.

 

오준성은 2018년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64강에서 아버지 팀 소속 장우진(27)에게 0-3(5-11, 7-11, 11-13)으로 패한 적이 있습니다.

 

제38회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 남자 일반부 단식 결승 도중 스매싱 중인 오준성. 대한탁구협회 제공

4년 만에 처음이자 탁구 인생 두 번째로 아버지 팀 선수와 맞붙은 이번 결과는 달랐습니다.

 

오준성은 이날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강동수를 3-2(11-9, 11-7, 9-11, 8-11, 11-8)로 꺾고 고교생으로는 처음 이 대회 일반부 정상에 섰습니다.

 

대한탁구협회에서 올해 대회부터 고교생 선수도 일반부에 출전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하면서 오준성은 대통령기 일반부 최연소 챔피언 타이틀도 얻었습니다.

 

오준성은 "형들에게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렸다. 마음을 비운 덕에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 코치는 "경기가 끝나고 아들이 인사를 하러 왔는데 참 대견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제38회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 남자 일반부 단식 정상을 차지한 오준성. 대한탁구협회 제공

대통령기는 종합선수권, 종별선수권에 이어 탁구협회 주최 대회 중 세 번째로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입니다.

 

단, 올해 대회에는 국가대표 선수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튀지니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에 참가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번 대통령기에 만만한 상대만 나온 건 아닙니다.

 

오준성은 대회 준결승에서 도쿄 올림픽 대표 이상수(32·삼성생명)를 3-0(11-7, 11-8, 11-3)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오상은 미래에셋증권 코치. 동아일보DB

오준성도 아직 중학생 신분이던 올해 1월 대표 선발 최종전까지 올랐지만 9위에 머물면서 7명을 뽑는 대표팀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오준성에게 '탁구 잘 치는 유전자'를 물려준 건 한국 탁구계에서 '원조 셰이크핸드'로 통하는 오 코치 한 명이 아닙니다.

 

어머니 이진경 씨(48) 역시 한국화장품에 몸담았던 실업 탁구 선수 출신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탁구채를 가지고 놀던 오준성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 코치 은퇴 무대가 된 2016년 종합선수권 때는 아버지와 복식 경기에 함께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전국탁구종합선수권대회 부자 동반 출전 소식을 전한 2016년 12월 16일자 중앙일보 기사

오준성이 탁구 선수로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물론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오준성이 '꼭 금메달'이라고 강조하는 건 아버지 때문입니다.

 

오준성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따지 못한 그 금메달을 내가 꼭 대신 따오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오 코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 대회 때도 단체전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끝내 금메달은 따지 못했습니다.

 

2008년에는 준결승에서, 2012년에는 결승에서 중국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습니다.

 

현역 시절 김택수 현 대한탁구협회 전무(왼쪽)와 오상은 미래에셋증권코치. 동아일보DB

김택수 탁구협회 전무는 "준성이가 아버지의 힘과 기술은 물려 받았는데 다행히 단점은 물려받지 않은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김 전무는 "오 코치는 중요한 순간 멘털이 흔들리는 단점이 있었는데 오준성은 그런 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습니다.

 

오준성은 이날도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서다 2-2로 쫓겼지만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라켓을 휘둘렀습니다.

 

김 전무는 "이대로 꾸준히 성장해 준다면 3~5년 안에 아버지 이상 가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오준성 역시 "2024년에는 (파리) 올림픽 뿐 아니라 부산에서 세계선수권대회도 열린다. 국가대표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주먹을 쥐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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