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정상을 차지한 건 '복식 전문 선수'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26·체코·세계랭킹 33위)였습니다.
크레이치코바는 12일(이하 현지시간) 결승전에서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러시아·32위)를 2-1(6-2, 2-6, 6-4)로 물리쳤습니다.
크레이치코바는 우승을 확정한 뒤 제일 먼저 하늘을 향해 키스를 날렸습니다.
암 투병 끝에 4년 전 세상을 떠난 야나 노보트나(1968~2017) 코치에게 우승 소식을 전한 것.
크레이치코바는 "노보트나 코치님께서 분명 누구보다 행복해 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보트나 코치는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던 체코 여자 테니스 전설이었습니다.
그가 크레이치코바를 지도하기로 한 건 고향(브르노)이 같다는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크레이치코바는 프로 전향을 앞두고 조언을 구하려고 노보트나 코치를 찾았습니다.
대화를 마친 노보트나 코치는 "나는 매주 목요일 이 시간에 코트에 나온다. 앞으로도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코트에서 만나 자주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결국 선수-코치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노보트나 코치는 헬레나 수코바(56·체코)와 짝을 이뤄 1989년 윔블던에서 우승한 걸 시작으로 메이저 대회 복식 정상을 12번 차지한 '복식 전문 선수'였습니다.
사실 그가 복식 전문 선수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닙니다.
단식에서도 1991년 호주 오픈 결승에 올랐지만 모니카 셀레스(48·미국)에게 패했고, 1993년 윔블던 결승에서도 슈테피 그라프(52·독일)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식 우승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노보트나 코치는 1998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나탈리 토지아(54·프랑스)를 꺾고 기어이 메이저 단식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이 대회는 당시 서른 살이던 노보트나 코치가 단식에 참가한 45번째 대회였습니다.
노보트나 코치는 이 대회 때 마르티나 힝기스(41·스위스)와 짝을 이뤄 여자 복식 정상에도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여자 단식과 복식 정상을 모두 차지한 건 총 13명이고 횟수는 총 46번입니다.
역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65·미국)가 13번으로 이런 기록을 가장 많이 남겼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크레이치코바에게 수잔 렝글렌 컵(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 우승 트로피)을 전달한 사람이 바로 나브라틸로바였습니다.
크레이치코바 역시 '스승'처럼 단식보다 복식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입니다.
그는 카테리나 시니아코바(25·체코·68위)와 짝을 이뤄 2018년 프랑스 오픈과 같은 해 윔블던에서 이미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크레이치코바-시니아코바 조는 이번 대회에서도 결승에 진출해 있는 상황.
만약 이들이 13일 이가 시비옹테크(20·폴란드·9위)-베서니 매택샌즈(36·미국·14위) 조까지 물리친다면 크레이치코바는 단·복식을 동시 석권하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크레이치코바는 1998 윔블던 당시 노보트나 코치보다 나이도 어린 데다 이번이 다섯 번째 메이저 대회 단식 출전이라 성공만 하면 스승보다 빨리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프랑스 오픈에서 이런 기록이 나온 건 2000년 대회 때 마리 피에르스(46·프랑스)가 마지막입니다.
결국 크레이치코바-시니아코바 조가 2-0(6-4, 6-2) 승리를 거두면서 크레이치코바는 단·복식 정상을 모두 차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