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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 시즌 김태균의 성적은 여러모로 동갑내기 라이벌 이대호에 비해 확실히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누가 더 순도 높은 4번 타자인가? 하는 질문 앞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김태균의 4번 타자 순도는 99.8%, 이대호의 기록은 77.4%밖에 되지 않았다.

갑자기 웬 순도? 롯데 팬 여러분 긴장할 필요 없다. 순도는 그저 4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비율을 뜻하는 수치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순도(純度)가 아닌 순도(順度)다. 김태균은 2006 시즌 전체 511 타석 가운데 510 타석을 4번 타자로 들어섰다. 반면 이대호는 4번 타자로 386타석(전체 499타석)을 맞이했을 뿐이다.

이대호 역시 대타로 기용된 타석을 제외하자면 대개 3번(44타석)이나 5번(68타석)으로 기용되면서 꾸준히 클린업 트리오에 포진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태균의 경우 선발로 기용된 122 경기 모두 4번 타자로 출장했다. 게다가 대타로 투입된 두 경기에서도 한 번은 6번 타자였지만, 5월 21일 경기에선 4번 타자 이도형을 대신해 타석에 들어섰다. 한화 김인식 감독의 머릿속엔 '김태균 = 4번 타자'라는 공식이 확실히 각인돼 있는 셈이다.


<표1> 전체 타석 대비 해당 타순 타석 비율

사실, 김인식 감독은 김태균뿐 아니라 다른 타자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거의 일관되게 유지하는 스타일이다. 1번 조원우(97.4%)를 시작으로 3번 데이비스(97.3%) - 4번 김태균(99.8%) - 5번 이도형(80.9%) - 6번 이범호(72.2%) 그리고 마지막 9번 김민재(76.6%)까지 출장과 동시에 타순이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시스템이다. 김인식 감독이 펼치는 '믿음의 야구'는 이런 데서도 확인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결과는 팀 타순 타석 비율을 알아봐도 마찬가지다. 한화의 4번 타자는 총 540타석을 맞이했다. 단 한 번이라도 4번 타자 자리에 들어선 선수는 모두 7명, 하지만 김태균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타석 합계는 30번밖에 되지 않는다. 한화의 4번 타자가 김태균일 확률(점유율)이 무려 94.4%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대호의 같은 기록은 70.2%밖에 되지 않았다. 확실히 김인식 감독의 4번 타자는 김태균이라는 얘기다.


<표2> 팀 타순 타석별 해당 선수 점유율

다른 선수들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조원우(65.0%)와 데이비스(83.8%)는 각각 삼성의 박한이와 KIA의 장성호에게 자리를 양보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출장 여부의 문제였을 뿐, 이들이 다른 타순에 포진됐기 때문은 아니다. 수비 위치에 상관없이 타순만을 고려했을 때 시즌 126 경기를 치르면서 김인식 감독이 사용한 선발 라인업의 총수는 76개.이는 8개 팀 평균 95개와 비교할 때 거의 20개 가까이 적은 수치다.


<표3> 감독별 선발 라인업 사용수

물론 김인식 감독의 이런 '믿음'에 대해 모든 팬들의 동의를 하는 건 아니다. 지난 한국 시리즈에서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던 데이비스를 계속 3번 타순에 기용하는 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김인식 감독이 이 팀을 맡은 이후 지난 2년간 한화 타자들은 모두 1,133점을 뽑아냈다. 같은 기간 한화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은 삼성(1,152점)뿐이다. 적어도 득점력 때문에 타순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화의 성적 역시 2년간 계속 상승세다. 2004 시즌 7위(53승)던 정규 시즌 성적은 김인식 감독 부임 첫해 4위(64승)에서 지난 시즌 3위(67승)로 해마다 오르고 있다. 게다가 포스트 시즌에서도 '05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이어 '06년에는 한국 시리즈 진출로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성적 향상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구축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역시 포스트 시즌에서 김태균이 보여준 모습이다. 2005년 포스트 시즌에서 김태균은 거의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큰 경기에서 약한 징크스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포스트 시즌의 모습은 왜 그가 '괴수두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지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김인식 감독은 새로운 시즌에도 한화 사령탑을 맡는다. 그리고 정교함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파워만큼은 최고인 이도형, 이범호 역시 여전히 타선에 건재하다. 데이비스가 떠난 자리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 크루즈가 차지할 전망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분명, 한화의 4번 타자는 김태균의 차지일 것이다.

진정한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김인식 감독은 분명 김태균의 가치를 인정하고, 또 누구보다 그를 지지했다. 이제는 김태균이 스스로 보여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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