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24'라는 숫자가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 왜 중요한지 아는 팬과 아직 알지 못하는 팬.
정우영 SBS스포츠 아나운서는 확실히 알고 계시는 쪽입니다.
정 아나운서는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친구 공개로) 아래처럼 남기셨습니다.
동일 아웃카운트에서는 주자가 늘어나면 공격팀의 기대득점(expected run)은 올라간다. 반면 같은 주자배치에서 아웃카운트가 늘면 공격팀의 기대득점은 내려간다. 이 특징은 리그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나타나며 매우 #팩트 에 가깝다.
오늘 롯데와 KT의 경기 9회말을 재구성해보자. 위 표는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KBO리그 기대득점을 공개한 곳이 별로 없어서 그냥 쓴다.
이닝시작. 무사주자 없음. ER=0.54
선두타자 배정대의 안타. 무사 주자1루. ER=0.9(+0.36)
권동진의 희생번트 실패. 1사 주자1루. ER=0.57(-0.33)
신본기 삼진, 권동진 도루. 2사 주자2루. ER=0.35(-0.22)
이홍구 고의사구. 2사 주자1,2루. ER=0.58(+0.23)
송민섭 볼넷. 2사만루. ER=0.92(+0.34)
김병희 끝내기 안타.
변동폭이 가장 큰 구간을 보면 선두타자 배정대의 안타와 2사 1,2루에서 송민섭이 얻어낸 볼넷이기는 하다. 그러나 배정대의 안타는 수비의 뒷받침을 받지 못했고 그 이후 김원중은 아웃카운트를 늘려가면서 기대득점수치를 순조롭게 낮춰가는 중이었다. 2사 1루가 될 수 있는 상황이 2사 2루가 되면서 벤치가 고의사구라는 결정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각각 상황의 기대득점은 0.24와 0.35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고의사구라는 벤치의 결정은 기대득점 수치를 0.35에서 0.58로 늘렸고 이 결과는 팀의 패배로 이어졌다.
상대팀의 최고의 타자에게가 아니라면 고의사구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답을 숫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기대득점수치 #KBreport 2013시즌 KBO기대득점 참조)
이걸 뒤늦게 발견하고 읽는데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KBO리그 기대득점을 공개한 곳이 별로 없어서'라는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코드를 짜서 2018~2020년 기대 득점을 계산해 봤습니다.
주자 | 0아웃 | 1아웃 | 2아웃 |
없음 | 0.570점 | 0.298 | 0.115 |
1루 | 0.995 | 0.579 | 0.250 |
2루 | 1.283 | 0.793 | 0.365 |
3루 | 1.530 | 1.046 | 0.434 |
1, 2루 | 1.653 | 1.016 | 0.491 |
1, 3루 | 1.911 | 1.298 | 0.582 |
2, 3루 | 2.144 | 1.533 | 0.630 |
만루 | 2.536 | 1.694 | 0.854 |
이제 '기대 득점이 도대체 뭐야?'하고 생각하셨던 분도 슬슬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이런 표가 있으면 각 아웃 카운트와(=3가지) 주자 상황(=8가지)에서 시작해 이닝이 끝날 때까지 '평균적으로' 몇 점이나 뽑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 아나운서께서 말씀하신 상황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 '평균' 표 다음에는 보통 '확률' 표가 따라옵니다.
위에서 우리가 본 표는 '총점' 개념입니다. 이닝이 끝날 때까지 총 이만큼 점수를 따냈다는 사실을 정리했다는 뜻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 1점이라도 뽑은 확률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도 9회말 5-5 동점 상황이라 1점만 뽑으면 그대로 경기는 끝이었습니다.
주자 | 0아웃 | 1아웃 | 2아웃 |
없음 | 29.4% | 17.0 | 7.4 |
1루 | 45.6 | 28.7 | 13.6 |
2루 | 66.5 | 44.6 | 23.7 |
3루 | 87.6 | 69.9 | 29.3 |
1, 2루 | 65.5 | 43.9 | 24.3 |
1, 3루 | 87.8 | 68.3 | 30.4 |
2, 3루 | 86.7 | 69.9 | 27.7 |
만루 | 86.8 | 67.6 | 34.7 |
그러면 같은 상황에서 득점 확률 변화를 그래프로 그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이번에도 고의사구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 .218인 이홍구(31)에게 고의사구 사인을 내는 게 옳은 일이었는지는 저 역시 회의적입니다.
단, 고의사구 전후 득점 확률은 23.7%에서 24.3%로 0.6%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이 정도면 '이홍구에게 고의사구를 낸 게 문제였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숫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고의사구 효과는 왔다 갔다 합니다.
2012~2014년 득점 가치(Run Value)를 계산했을 때 고의사구는 기대 득점을 .190점 '줄이는' 플레이였습니다.
2016~2018년에는 거꾸로 고의사구를 얻으면 기대 득점이 .110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프로야구 감독은 결국 상황에 맞는 사인을 내라고 연봉을 받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노파심에 한번 더 강조하자면 위에서 말씀드린 값은 전부 어디까지나 '평균'입니다.
실제로는 이닝마다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아, 이 팀은 왜 맨날 '잔루만루'냐"고 너무 노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