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 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24'라는 숫자가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 왜 중요한지 아는 팬과 아직 알지 못하는 팬.

 

정우영 SBS스포츠 아나운서는 확실히 알고 계시는 쪽입니다.

 

정 아나운서는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친구 공개로) 아래처럼 남기셨습니다.

 

동일 아웃카운트에서는 주자가 늘어나면 공격팀의 기대득점(expected run)은 올라간다. 반면 같은 주자배치에서 아웃카운트가 늘면 공격팀의 기대득점은 내려간다. 이 특징은 리그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나타나며 매우 #팩트 에 가깝다.

 

오늘 롯데와 KT의 경기 9회말을 재구성해보자. 위 표는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KBO리그 기대득점을 공개한 곳이 별로 없어서 그냥 쓴다.

이닝시작. 무사주자 없음. ER=0.54

선두타자 배정대의 안타. 무사 주자1루. ER=0.9(+0.36)

권동진의 희생번트 실패. 1사 주자1루. ER=0.57(-0.33)

신본기 삼진, 권동진 도루. 2사 주자2루. ER=0.35(-0.22)

이홍구 고의사구. 2사 주자1,2루. ER=0.58(+0.23)

송민섭 볼넷. 2사만루. ER=0.92(+0.34)

김병희 끝내기 안타.

 

변동폭이 가장 큰 구간을 보면 선두타자 배정대의 안타와 2사 1,2루에서 송민섭이 얻어낸 볼넷이기는 하다. 그러나 배정대의 안타는 수비의 뒷받침을 받지 못했고 그 이후 김원중은 아웃카운트를 늘려가면서 기대득점수치를 순조롭게 낮춰가는 중이었다. 2사 1루가 될 수 있는 상황이 2사 2루가 되면서 벤치가 고의사구라는 결정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각각 상황의 기대득점은 0.24와 0.35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고의사구라는 벤치의 결정은 기대득점 수치를 0.35에서 0.58로 늘렸고 이 결과는 팀의 패배로 이어졌다.

 

상대팀의 최고의 타자에게가 아니라면 고의사구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답을 숫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기대득점수치 #KBreport 2013시즌 KBO기대득점 참조)

 

이걸 뒤늦게 발견하고 읽는데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KBO리그 기대득점을 공개한 곳이 별로 없어서'라는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코드를 짜서 2018~2020년 기대 득점을 계산해 봤습니다.

 

▌2018~2020 프로야구 상황별 기대 득점
 주자  0아웃  1아웃  2아웃
 없음  0.570점  0.298  0.115
 1루  0.995  0.579  0.250
 2루  1.283  0.793  0.365
 3루  1.530  1.046  0.434
 1, 2루  1.653  1.016  0.491
 1, 3루  1.911  1.298  0.582
 2, 3루  2.144  1.533  0.630
 만루  2.536  1.694  0.854

 

이제 '기대 득점이 도대체 뭐야?'하고 생각하셨던 분도 슬슬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이런 표가 있으면 각 아웃 카운트와(=3가지) 주자 상황(=8가지)에서 시작해 이닝이 끝날 때까지 '평균적으로' 몇 점이나 뽑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 아나운서께서 말씀하신 상황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 '평균' 표 다음에는 보통 '확률' 표가 따라옵니다.

 

위에서 우리가 본 표는 '총점' 개념입니다. 이닝이 끝날 때까지 총 이만큼 점수를 따냈다는 사실을 정리했다는 뜻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 1점이라도 뽑은 확률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도 9회말 5-5 동점 상황이라 1점만 뽑으면 그대로 경기는 끝이었습니다.

 

▌2018~2020 프로야구 상황별 득점 확률
 주자  0아웃  1아웃  2아웃
 없음  29.4%  17.0  7.4
 1루  45.6  28.7  13.6
 2루  66.5  44.6  23.7
 3루  87.6  69.9  29.3
 1, 2루  65.5  43.9  24.3
 1, 3루  87.8  68.3  30.4
 2, 3루  86.7  69.9  27.7
 만루  86.8  67.6  34.7

 

그러면 같은 상황에서 득점 확률 변화를 그래프로 그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이번에도 고의사구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 .218인 이홍구(31)에게 고의사구 사인을 내는 게 옳은 일이었는지는 저 역시 회의적입니다.

 

단, 고의사구 전후 득점 확률은 23.7%에서 24.3%로 0.6%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이 정도면 '이홍구에게 고의사구를 낸 게 문제였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숫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남은 게 하나도 없는 2013년 고의사구 장면. 동아일보DB

사실 고의사구 효과는 왔다 갔다 합니다.

 

2012~2014년 득점 가치(Run Value)를 계산했을 때 고의사구는 기대 득점을 .190점 '줄이는' 플레이였습니다.

 

2016~2018년에는 거꾸로 고의사구를 얻으면 기대 득점이 .110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프로야구 감독은 결국 상황에 맞는 사인을 내라고 연봉을 받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노파심에 한번 더 강조하자면 위에서 말씀드린 값은 전부 어디까지나 '평균'입니다.

 

실제로는 이닝마다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아, 이 팀은 왜 맨날 '잔루만루'냐"고 너무 노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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