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올 6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는 '드림팀이 실패하는 이유(Why dream teams fail)'라는 기사가 실렸다. 포춘은 실패한 드림팀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 야구 대표팀과 엔론을 꼽았다. 미국 대표팀을 만든다는 사실 만으로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 가슴이 뛰었지만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최고 인재들을 모아 최고 경영기법으로 운영하던 엔론 역시 미국 역사상 최고 스캔들 속에 처참히 무너졌다. 포춘이 꼽은 이유는 "조직적 사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드림팀 또 하나가 실패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1998 방콕, 2002 부산 대회와 견줘 뒤질 것이 없는 전력을 구축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쥐어든 성적표는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혹시 이번 삿포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도 미국 야구 대표팀과 엔론하고 똑같은 이유로 무너지게 된 건 아닐까.

물론 김재박 감독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장. 하지만 김 감독이 팀을 이끄는 스타일은 단기전과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김 감독이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제 현대 유니콘스 타자들은 감독 사인이 없어도 스스로 번트를 댈 줄 안다. 유니콘스라는 조직 내에 이미 각 상황에 따라 어떤 선수가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지 '조직적 합의'가 나온 상태임 셈. 이런 합의가 선수 개인 성과뿐 아니라 팀 전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함은 물론이다.

김 감독 성공신화에도 조직적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다르게 말하자면 유니콘스의 성공에는 오랜 시간을 통해 선수들 사이에서 '멘탈 모델'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표팀 선수들은 그리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추지 못했다. 김 감독 스타일이 통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다.

그런데도 대표팀의 지향점은 유니콘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꾸로 말해 김 감독이 선수 개개인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니콘스에서 통하던 작전이 대표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선수들이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면 결국 책임은 김 감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과 태도, 성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대신 본인 스타일만 강요했다는 추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김 감독은 조직 리더로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은 것 같다. 리더는 조직 내부 문제뿐 아니라 외부 환경에도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말하자면 조직 외부를 상대로는 '외교관'의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팀의 프로젝트를 광고하고, 외부에서 필요한 자원을 얻어오고 지지를 얻는 모든 역할 역시 리더가 할 일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부터 끊임없이 구설수에 시달렸다. 김 감독이 외교관 역할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시즌이 끝난 후 대표 선수를 차출한다면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좋은 외교관이라면 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는 선수들 발언 공개가 잇따랐다. 팬들도 "A 선수보다 B 선수다 나은데 왜 안 뽑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건 소위 '집단 사고‘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 행정부 각료들은 당대 최고 전문가였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상 가장 바보스러운 판단이라고 손꼽히는 '쿠바 침공'을 결정했다. 도대체 이 천재들을 이렇게 바보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단사고는 '우리 집단은 반드시 성공한다', '우리는 반드시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하며 반대는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우리 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팀은 아시아최고 수준이다. 금메달은 이미 우리 것' 또는 '참가를 요구받았지만 사양하는 건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는  논리가 야구팬들 사이에도 팽배했다. 또 지난 아시안 게임 대회 두 번과 올 초 WBC에서 거둔 성공은 이런 착각을 부채질하기 충분했다. 이 착각을 바로 잡는 일도 김 감독 의무였다.

물론 아시안 게임에서도 얼마든 질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졌다는 건 문제다. 멘탈 모델, 리더십 그리고 집단 사고에 이르기까지 김재박 호는 약점을 너무 많이 안은 채 항해를 시작했다. 선장 김 감독 역시 문제의 한 축이었다. 아니, 어쩌면 김 감독 본인이 가장 큰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작전 야구의 대명사가 조직적 사고를 잊었다는 건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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