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포수 김정민은 야구팬들에게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니다. 그렇다 그를 스타라고 부르기는 많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늘 LG에서 김동수, 조인성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주전으로 나선 경기도 그리 많지 않은 게 당연한 일. '00 시즌 외국인 투수 해리거와 찰떡궁합을 맞춘 게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시간이었을 터다.
그래도 LG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팀을 위해 '겸손한' 플레이를 하는 백업 포수 김정민을 말이다. 투수에게 화려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넘기고 자신은 뒤로 숨는 투수 리드, 꼭 필요할 때 한번씩 터뜨리던 진루타나 희생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언제나 화려한 시절은 다른 이들 차지였다. 팀은 어렵고 힘든 순간에만 김정민을 찾았지만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다시 사정이 나아지면 그 자리는 김동수, 조인성에게 다시 돌아갔다. 김정민은 그저 조용히 뒤로 물러나 다시 자신의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어쩌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별명을 붙여줘도 아쉽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렇게 LG 트윈스에서 보낸 세월이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그는 너무 조용하게 자신의 퇴장을 우리에게 알렸다. 이번에도 그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미스터 LG'라는 빛나는 별명을 자랑하는 서용빈이 그의 앞에 있었다. 이번에도 김정민은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게 김정민이 살아온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패자의 방식이 아니라 남을 먼저 위할 줄 아는 겸손한 방식 말이다.
서용빈과 함께한 은퇴 인터뷰에서 어느 기자가 "선수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엇이냐"고 김정민에게 물었다. 김정민은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는 덤덤한 목소리로 "1994년 선동열 현 삼성 감독(당시 해태)에게 끝내기 홈런을 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이 선수 시절 동안 내준 홈런은 다 합쳐도 28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하나를 김정민이 때려낸 것이다. 당연히 남들에게 자랑해도 누구 하나 흉볼 사람이 없는 홈런이다. 더 심한 건 김정민의 통산 홈런이 13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하나를 바로 선동열로부터, 그것도 경기를 끝내는 홈런으로 때려낸 것이다. 몹시 흥분한 말투로 이야기한대도 모두가 고개를 끄떡일 법한 그런 홈런인 것이다. 그래도 그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 홈런은 사실 위대했다. '94년은 우리 프로야구 역사 최전성기에 속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LG와 해태의 라이벌전은 모든 경기가 한국시리즈나 다름없을 정도로 열기에 넘쳤다. 당시 두 팀이 기록한 10 경기 연속 매진 사례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해태엔 '괴물 유격수' 이종범을 필두로 김성한, 백인호 등 찬스에 강한 타자들이 넘치고 있었고, LG엔 신인 3인방이 팀을 이끌며 '신바람 야구'가 그 완성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을 때였다. 재미없는 경기를 하려고 해도 힘든 분위기였다. 그라운드 안은 물론이거니와 관중석에도 긴장감이 넘쳤다.
9회말이 시작되기 전 LG는 해태에 5대 3으로 끌려가고 있었고 마운드 위에는 선동열이 서 있었다. 주자가 나가 있기는 했지만 이미 해태 쪽으로 분위기가 기운 상태였다. 당시 선동열이란 그런 존재였다. 도저히 공을 던질 수 없는 컨디션인 걸 상대 팀이 뻔히 알고 있어도, 그가 불펜에서 몸만 풀고 있으면 주눅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 말이다. LG 팬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1사후 타석에 노찬엽이 들어섰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는 MBC 시절부터 선동열에게는 강한 이미지가 있었다.
곧 LG팬들의 실낱같은 희망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찬엽이 때린 타구가 우중간을 가르며 펜스로 굴러간 것이다. 앞선 주자는 이미 홈으로 들어온 후였고 3루까지 전력질주한 노찬엽마저 세이프. 경기가 한 점 차이로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이광한 감독은 여기서 승부수를 던진다. 허문회를 대타로 기용한 것이다. 허문회는 다시 믿기지 않는 3루타를 터뜨리며 경기를 5대 5 동점으로 만든다. 이 날 경기서 나온 다섯 번째 삼루타였다.
LG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우리도 선동열을 잡는구나. 하지만 LG 팬들은 이내 고개를 설레 저었다. 포수 자리이던 타석에 김동수라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김정민이라는 낯선 사내가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김동수는 8회 수비 때 김동수와 교체돼 있었다. 관중석은 술렁였다. '도대체 김정민이 누구야?' 어쩌면 LG 팬들은 그저 김정민이 빨리 삼진으로 물러나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이 터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김정민은 타석에 들어서 그대로 선동열의 초구를 받아쳤다. 타구는 외야를 향했다. LG 관중석은 다시 술렁였다. 그래, 희생 플라이다. 허문회가 재빨리 홈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우리가 승리한다. 여기저기서 LG 팬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외야로 뻗어나간 타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결국 펜스를 살짝 넘기고 나서야 타구는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선동열, 숙적의 라이벌 해태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것이다.
이게 김정민이 터뜨린 끝내기 홈런의 전모다. 도저히 무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대사건 말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완벽한 드라마였다. 말투는 비록 무덤덤했지만 김정민도 이 사건을 잊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 30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려낸 장종훈이라도 이런 홈런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김정민의 겸손한 방식이다.
사실 김정민에게도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향 팀 한화에서 김정민을 트레이드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LG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협상은 결렬됐다. 그런 까닭에 김정민은 단 한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영원한 조연으로 자신의 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물론 그는 확실히 주연보다 더 멋진 쏠쏠한 '감초' 조연이었다.
지난해까지 우리 프로야구 1군 무대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뛴 선수는 모두 1,859명이다. 어떤 선수들은 많은 팬들 아쉬움 속에 그라운드를 떠났고, 또 어떤 선수는 그런 선수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유니폼을 벗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은퇴 인터뷰, 은퇴 경기라도 가질 수 있는 김정민은 행복한 사나이일지도 모르겠다
김정민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말없이 사라져 간 이들의 마음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미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선수들, 특히 2군 선수들의 힘든 모습을 많이 봤다. 코치가 되면 1,2군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게 해 선수들이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정말 누가 더 잘할 수 있겠는가? 분명 김정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김정민이야 말로 늘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 본보기일 테니 말이다.
요즘 세상에선 모두가 화려한 것만을 좇고 스타에 열광한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뒤를 받치는 조용하고 묵묵한 움직임이 없다면 그 무엇도 빛을 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정민은 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으며, 가장 필요할 때 팀 운영의 숨통을 트여주는 확실한 '감초'였다.
아마 팬들보다 감독이 더 아끼고 사랑했을 선수 김정민, 비록 선수로서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는 늘 주인공이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이런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하는 세상이야 말로 정말 바람직한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김정민을 애써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