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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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빈, 두 번째 이별


2003년 8월 14일 잠실구장, LG는 SK를 맞아 경기를 치렀다. LG는 SK를 4대 1로 꺾으며 4연승, 2위 삼성을 4게임차로 추격했다. 하지만 많은 LG 팬들이 이 날 경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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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LG 구단은 홈 팬들에게 석유 냄새가 풍기는 노란 수건을 하나 씩 선물했다. 사실 노란 수건은 LG 팬들에게 그리 낯선 응원도구는 아니다. 하지만 이 날은 LG라는 두 글자 대신 뚜렷이 숫자 62가 새겨져 있었다. 서용빈의 등번호 62. 경기 시작 전부터 외야 전광판에는 서용빈의 아내, 탤런트 유혜정의 얼굴이 간간히 비췄다. 그녀의 눈시울은 이미 붉었다.

경기가 끝나고 서용빈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에게 힘찬 목소리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병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서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2년 2개월의 시간을 뒤로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팬들은 반드시 그가 돌아와 주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서용빈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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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서용빈이 돌아왔다. 예전처럼 날카로운 타격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그가 그라운드에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팬들은 서용빈을 믿었다. 하지만 이순철 전 감독은 달랑 10 타석밖에 맡기지 않았다. 결과는 2군행. 팀 주장이었지만 2군 소속이었기에 서용빈은 낮에는 구리 밤에는 잠실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오리라고 믿었다.

이순철 감독이 경질되고 양승호 체제가 출범하고 나서야 서용빈은 다시 1군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팀의 리더로서, 전성기를 함께한 동료로서 팬들은 서용빈을 반겼다. 서용빈도 복귀 첫 경기부터 2타점을 올리며 팬들의 믿음에 부응했다. 서용빈은 다시 팬들 곁으로 영원히 돌아올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26 경기에서 서용빈은 타율 .206에 홈런 하나, 7 타점에 그쳤다. 그리고 오늘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는 결심을 담담하게 밝혔다.

서용빈은 입단 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대주는 아니었다.  '신바람 3인방' 중에서 김재현, 유지현보다 기대치가 떨어지는 선수였다. 서용빈이 거듭난 건 재일교포 스타 장훈 씨의 칭찬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라운드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1994 시즌 서용빈은 신인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1루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장훈의 칭찬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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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뛰어난 1루 수비, 폭발적이진 않지만 정교한 타격. 여기에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 서용빈은 자신을 LG 역사상 최고 인기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모두 자기 스스로 구슬땀을 흘린 결과였다. 무명으로 입단했던 서용빈은 '미스터 LG'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고 팀을 떠나게 됐다. 정말 사람이 떠나고 이름이 남는다.

LG팬도 아니면서 서용빈의 고별 경기 때 잠실구장을 찾았던 건 친한 선배 때문이었다. 24일에도 모 처럼 그 선배와 함께 야구장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그 자랑스러운 퇴장에 힘찬 박수를 쳐줄 것이다. 이번에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의 힘찬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만, 이제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는 진짜 '미스터 LG'가 되는 날일 테니 이번엔 오히려 더욱 기쁜 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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