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세터는 내가 만들면 된다."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야전 사령을 내눴지만 프로배구 남자부 우리카드 신영철(56) 감독은 역시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우리카드는 29일 삼성화재와 4 대 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카드에서는 김광국(33·세터) 김시훈(33·센터) 황경민(24·레프트)과 함께 주전 세터 노재욱(28)이 유니폼을 갈아 입게 됐습니다.


거꾸로 삼성화재에서는 류윤식(31) 송희채(28·이상 레프트) 이호건(24·세터)이 우리카드로 팀을 옮깁니다.


이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삼성화재 → 한국전력을 선택한 박철우(35·라이트)의 보상 선수로 삼성화재 소속이 된 이호건은 이 팀에서 한 경기도 안 뛰고 팀을 옮기게 됐습니다.


우리카드에서 11년을 보내고 팀을 옮기게 된 김광국.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삼성화재에서 세터 자원을 필요로 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주전 세터 김형진(25)은 워낙 말 많고 탈 많은 세터인데다 백업이던 권준형(31)마저 FA 자격을 얻어 OK저축은행으로 떠났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세터를 필요로 하는 모든 팀에 제일 '만만한' 영입 대상이 바로 김광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광국은 다른 팀에서는 충분히 백업 정도는 맡을 수 있는 세터지만 우리카드에서는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카드에 노재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우리카드가 기록한 세트(토스)는 총 3212개. 그 가운데 71%인 2279개를 노재욱이 띄웠습니다.


노재욱에 이어 팀내 세트 2위인 하승우(25)도 308세트가 전부입니다. 노재욱과 비교하면 8분의 1을 겨우 넘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세터가 있었기에 우리카드는 유광우(35)를 대한항공에 내주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프로 데뷔 이후 다섯 번째 팀에서 뛰게 된 노재욱.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랬는데 노재욱을 트레이드했으니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 감독은 "삼성화재에서 김광국을 달라고 하기에 (대한항공 감독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류윤식을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삼성화재에서 OK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후 본격적인 트레이드 논의가 오가면서 2 대 2 트레이드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여기에 노재욱과 송희채, 이호건를 바꾸는 트레이드를 추가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래 삼성화재에서는 박철우 보상 선수로 센터 쪽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신 감독 요청으로 이호건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트레이드 자원으로 쓰려는 이유로 말입니다.


신 감독은 "노재욱을 보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군 문제가 걸려 있어 조금 더 멀리 내다보려 했다. (세터를 키울) 자신이 없었으면 재욱이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재욱과 송희채 모두 군 입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양 팀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카드를 맞췄다는 겁니다.


송희채는 5월 18일 입대 예정이고 노재욱 역시 이르면 다음 시즌 개막 전 군 복무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신 감독은 "송희채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가 되면 나경복(26)이 입대할 때가 된다. 그때를 염두에 두고 송희채를 영입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화재 구단 레전드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고희진 감독. 동아일보DB 


새로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게 된 고희진(40) 감독은 "노재욱 군 문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면서 노재욱을 당장 다음 시즌부터 내보낼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이어 "에이스(박철우)가 떠났다. 충격을 받은 선수들 분위기를 추스리는 게 중요했다"면서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됐다. 이번 트레이드가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삼성화재에서 노재욱을 원했다는 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올해 2월 사석에서 만난 삼성화재 관계자가 "노재욱은 천하의 최태웅(현대캐피탈 감독)도 포기한 선수"라고 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FA 박상하(34)를 우리카드에서 영입할 때 보상선수로 내준 유광우를 다시 데려오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박철우 권준형이 모두 팀을 떠난 상태라면 고 감독에게 '취임 선물'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우리카드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삼성화재로 건너가게 된 황경민. 동아일보DB


단, 개인적으로는 노재욱이 아니라 황경민이 진짜 취임 선물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공격도 안 되고 수비도 안 되던' 송희채가 '받고 때리기의 정석' 황경민으로 바뀌는 셈이니까요.


물론 우리카드로 건너가게 된 류윤식이 입대 전 7시즌 동안 전부 서브 리시브 성공률 50% 이상을 기록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즌이 갈수록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2019~2020 시즌은 현대캐피탈 여오현(42) 플레잉코치 그러니까 리그에서 상대 서브를 제일 잘 받은 선수도 성공률 50%를 넘기지 못한 첫 시즌입니다.


데뷔팀 대한항공에 이어 우리카드에서 신 감독과 다시 손발을 맞추게 된 류윤식.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군 입대 전 마지막 무대였던 2017~2018 시즌 류윤식은 리시브 성공률 53%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리그 서브 리시브 성공률은 41.2%였습니다.


개인 기록과 리그 기록을 가지고 '서브 리시브 성공률+'를 계산하면 이 시즌 류윤식의 기록은 129입니다.


리그 평균보다 29%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뛰었다는 뜻입니다.


황경민은 2019~2020 시즌 서브 리시브 성공률 46.3%를 기록했고 리그 평균 기록은 35.8%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브 리시브 성공률+를 계산하면…


역시 129가 나옵니다.


이것만으로도 지난 시즌 삼성화재 발목을 잡았던 서브 리시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공격에서는 차이가 큽니다.


이번 시즌 황경민은 공격 효율 .346을 기록했고 리그 평균 .338이었습니다. 그러면 황경민의 공격 효율+는 103입니다.


같은 기준으로 2017~2018 류윤식의 공격 효율+를 계산하면 78이 전부입니다. 리그 평균보다 22%(=100-78%) 효율이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 같으면 황경민을 류윤식과 바꾸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카드에는 황경민과 엇비슷한 스타일인 한성정(24)이 있기 때문에 황경민이 아예 못 내줄 카드는 또 아닙니다.


심지어 황경민과 달리 한성정은 (생계유지 곤란으로) 군 면제를 받은 상태입니다.


우리카드 구단 인터넷 홈페이지


야구에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불펜 포수도 바꾸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둘러 막을 내린 시즌이었지만 우리카드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둥 뿌리를 뒤흔드는 선택을 내렸습니다.


신 감독에게 다음 시즌은 이번 계약 마지막 시즌이기도 합니다.


신 감독은 '프로배구의 김경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우승컵과는 인연이 없는 인물.


분명 '윈 나우(Win Now)'를 선택해야 할 시점으로 보이는데 신 감독이 밝은 트레이드 이유는 미래였습니다.


모든 트레이드는 결국 세월이 흘러야 진짜 승패를 알 수 있게 되는 것.


지금 보기에는 삼성화재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 보이는데 신 감독이 정말 호언장담한 대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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