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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스턴 전 커미셔너. 동아일보DB

데이비드 스턴 전 미국프로농구(NBA) 전 커미셔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8세.

 

NBA 사무국은 스턴 전 커미셔너가 미국 뉴욕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1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스턴 전 커미셔너는 지난해 12월 12일 뉴욕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응급수술을 받고 집중 치료 중이었습니다.

 

1942년 미국 뉴욕 맨하탄에서 태어나 뉴욕 닉스 팬으로 자란 스턴 전 커미셔너는 럿거스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로펌 소속 변호사로 법정에서 NBA 사무국을 대리하는 일을 했던 스턴 전 커미셔너는 1978년 법무자문으로 사무국에 들어 왔고, 2년 뒤에는 비즈니스 및 법무 담당 부사장이 됐습니다.

 

이어 래리 오브라이언 전 커미셔너(재임 1975~1984) 후임으로 1984년 2월 1일 제4대 NBA 커미셔너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2014년 1월 31일까지 30년 동안 NBA 수장 자리를 지냈습니다.

 

데이비드 스턴 전 NBA 커미셔너와 마이클 조던. 동아일보DB

마케팅 관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NBA를 만든 건 단연 마이클 조던(57)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던을 만든 게 바로 스턴 전 커미셔너였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건 스턴 전 커미셔너가 동시대 어떤 프로 스포츠 관계자보다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기 때문.

 

조던 본인 역시 "스턴 전 커미셔너가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NBA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면서 "그는 아주 소수만 상상할 수 있던 미래를 현실로 만든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스턴 전 커미셔너는 '비디오 시대'에는 선수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팀은 물론 리그보다도 더 유명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세계화를 추진했습니다. 그가 커미셔너를 맡고 있는 30년 동안 NBA는 전 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40개 이상 언어로 중계하는 프로 리그로 성장했습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가 2006년  시카고에 문을 열게 된 신생 구단에 대해 기자들과 대화하는 장면. WNBA 홈페이지

변호사 시절 NBA에서 아메리칸농구협회(ABA)를 인수·합병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던 그는 커미셔너 재직 시절 NBA 팀 숫자를 23개에서 30개로 늘렸습니다.

 

NBA에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테스트를 도입한 것도 스턴 전 커미셔너였고, 샐러리캡(연봉상한제) 제도 역시 그가 커미셔너로 재직하던 중에 도입했습니다. 

 

마이너리그격인 NBA G리그(옛 D리그)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출범 역시 스턴 전 커미셔너 작품입니다.

 

22년 동안 NBA 사무국에서 함께 일한 애덤 실버 현 커미셔너는 "스턴 전 커미셔너는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준비성, 디테일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었다"면서 "멘터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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