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프로배구 여자부 인천 경기에서 GS칼텍스 러츠(오른쪽)가 흥국생명 블로킹을 뚫고 있는 장면.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서장훈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보는 것 같다.
한 프로배구 여자부 팬은 GS칼텍스 외국인 선수 러츠(25·미국·라이트) 활약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러츠는 17일 프로배구 2019~2020 V리그 여자부 경기에서 33득점(공격성공률 41.6%)을 기록하면서 팀이 '디펜딩 챔피언' 흥국생명에 3-2(25-21, 18-25, 23-25, 25-20, 15-12) 재역전승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33득점은 개인 V리그 최다 득점 기록입니다.
러츠의 활약에 힘입어 GS칼텍스도 승점 18점(6승 1패)으로 현대건설(6승 2패)을 승점 1점 차이로 제치고 선두 자리에 복귀했습니다. 러츠는 이날 현재 득점 3위(170점), 공격성공률 2위(41.6%), 오픈 성공률 2위(41.9%), 후위 성공률 3위(43.0%), 블로킹 3위(세트당 0.750개) 등 공격 전부문에 걸쳐 상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러츠는 프로배구 여자부 역대 최장신(206㎝) 선수입니다. 제자리에 서서 팔을 뻗으면 손가락 끝까지 높이(스탠딩 리치)는 271㎝. 여자부 네트 높이가 224㎝니까 가만히 서서 팔만 올려도 네트보다 47㎝ 위로 팔이 있는 올라가는 겁니다.
팀 동료 한수지(오른쪽)와 함께 상대 공격을 블로킹하고 있는 러츠.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러츠는 "큰 키 때문에 팔만 뻗어도 상대를 막을 수 있다는 건 잘못된 얘기다. 나는 매 순간 전력을 다해 뛴다. 나는 한 번도 대충 뛴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러츠의 제자리(서전트) 점프는 50㎝. 제자리에서 뛰어도 네트 위로 1m 가까운 벽을 만들 수 있는 셈입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태어난 러츠는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륨(BP)에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한국 석유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그 덕에 어느 나라에 가도 적응이 빠르다는 게 장점이라고 합니다.
러츠는 "한국에 오기 전에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음식을 먹어 보고 왔다. 왜 외국인은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닭볶음탕은 물론 불닭볶음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웃었습니다.
지금은 GS칼텍스에서 '복덩이'가 됐지만 2018~2019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공개선수평가) 때만 해도 러츠에게 눈길을 주는 지도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키가 너무 커서 순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2부 리그로 향한 그는 몸무게를 7㎏ 가량 줄인 뒤에야 '재수'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러츠는 2019~2020 여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 전체 전체 4순위로 GS칼텍스에서 지명을 받았습니다.
러츠는 "지난해 트라이아웃에서 떨어진 뒤에도 계속 한국에 오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주위에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만큼 기량이 올라간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 2부 리그 소속 '쿠오레 디 맘마 쿠트로피아노'에서 뛰던 당시 러츠. 구단 페이스북
그렇다면 러츠는 어떤 점에서 기량을 더 끌어올려야 할까요?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이 2% 아쉽게 생각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높이'입니다.
차 감독은 "러츠가 정점에서 공을 때리는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공을 정점에서 때려야 위력이 가장 좋은데 타이밍을 못 잡을 때가 많다"면서 "'타점을 잡아서 때리는 연습을 더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러츠는 "이탈리아에서는 선수들이 키가 있어어 높이를 살린 배구를 하지만 V리그만큼 빠르지 않다. 또 한국은 수비가 굉장히 좋다"면서 "V리그는 모든 팀이 강해서 한 경기 한 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내게는 V리그가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1993~1994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한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서장훈 문경은 김훈 우지원 석주일. 동아일보DB
물론 왜 러츠를 보고 '서셀럽' 서장훈(45·207㎝)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러츠를 서장훈과 비교하기는 무리입니다
이제는 아재들만 기억하시겠지만 서장훈이 연세대 유니폼을 입고 1993~1994 농구대잔치에 처음 등장했을 때 농구팬 반응은 문자 그대로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으니까요. 서장훈은 '키 큰 선수는 어떻다'는 선입견을 모두 무너뜨린 선수였습니다.
서장훈이 합류한 연세대는 이해 결승전(3선승제)에서 3승 1패로 상무를 꺾고 대학 팀으로는 처음으로 농구대잔치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연세대는 그룹별 리그 세 경기를 포함해 결승전까지 총 22경기를 소화했는데 결승 3차전에서 82-92로 패했을 뿐 나머지 2 1경기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서장훈은 이 대회에서 최우수신인으로 뽑힌 건 물론 베스트5와 수비 5걸에 모두 이름을 올리면서 최우수선수(MVP) 타이틀까지 차지했습니다. 서장훈은 1996~1997 시즌에도 모교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MVP를 차지했습니다. 프로 농구 출범 이전에 대학 선수가 농구대잔치 MVP를 차지한 건 이 두 차례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