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역전을 허용하자 더그아웃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한국 대표팀. 대만 쯔유(自由)시보 홈페이지 캡처
어쩌다 한 판, 그것도 승부치기 끝에 패했다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판 내리 졌을 때는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2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이 또 한 번 중국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네, 대만 아니고 중국 맞습니다.
윤영환 감독(경성대)이 이끄는 한국은 20일 대만 타이중(臺中) 인터콘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대회 3, 4위전에서 중국에 6-8로 역전패했습니다. 한국은 이날 8회초 공격을 마쳤을 때만 해도 6-2로 앞서 있었지만 8회말 6실점하면서 경기를 내줬습니다.
이로써 14일 조별리그 1차전 때도 3-4로 무릎을 꿇었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만 중국에 두 번 패하게 됐습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중국에 2연패한 건 물론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 전에는 2005년 미야자키(宮崎) 아시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에서 3-4로 딱 한 번 패했을 뿐입니다. 조별리그 1차전 때는 14년 만에 중국에 졌지만 또 한 번 패하는 데는 엿새면 충분했습니다.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 출전권 획득을 자축하며 기념 촬영 중인 중국 야구 대표팀. 중국봉구협회 홈페이지
한국은 이날 패배로 내년 도쿄(東京)올림픽 최종 예선 출전권도 날려버렸습니다. 한국이 내년 도쿄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려면 다음달 열리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에서 올림픽 개최국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오세아니아 국가 가운데 제일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합니다.
솔직히 고교생 4명, 대학생 20명이 이름을 올린 이번 대표팀 성적으로 한국 야구가 중국 빵치우(棒球)에 밀렸다고 평가하는 건 오버입니다. (참고로 우리 대표팀도 평균 21세, 중국도 21세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이들이 또래 가운데 최고 선수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는 대졸보다 고졸이 인정받는 직업. 또래 중에 야구를 더 잘하는 선수들은 대학이 아니라 프로 팀에서 뛰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대회에 대학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린 이유는 뭘까요?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 대회 대표팀 선발 소식을 알린 보도자료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자긍심을 심어주고, 특히 침체된 대학야구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대학선수 위주로 구성했다. 앞으로 협회는 젊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 태극마크의 사명감을 갖고, 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아마추어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건,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성적보다 사명감을 키우고 다채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팀을 꾸리겠다는 게 협회 방침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뽑으면 됩니다.
사실 프리미어 12에서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할 수 있는 아시아·오세아니아 국가는 역시 일본을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대만뿐인데 정말 그렇게 되면 대만이 아시아선수권에서 따낸 최종 예선 출전권은 이 대회 4위인 한국이 받습니다. 이 정도 대회에 이 정도 대표팀을 꾸려도 결정적인 영향은 없다는 뜻입니다.
2019 대학야구 U리그 왕중왕전 경기 장면. 한국대학야구연맹 홈페이지
문제는 프로야구입니다. 프로야구 각 구단은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제5차 이사회를 통해 (올해 8월 26일 진행한) 내년도 2차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부터 대졸 선수를 '의무적'으로 뽑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목적은 역시나 '대학야구 활성화'입니다.
대학야구 활성화에 왜 프로야구가 앞장서야 하나요? 그리고 그 방식이 왜 의무 지명이어야 하나요? 이제는 심지어 중국 선수보다 기량이 떨어지는데요? 실제로 의무 지명 제도를 도입했지만 각 팀이 내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대졸 선수는 18명이 전부입니다. 이런 제도가 없던 올해 드래프트(20명)보다 오히려 두 명 줄어든 숫자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대학 졸업 후 지명 받은 선수에게는 '드래프트 앤드 팔로우(Draft-and-follow)'라는 표현을 씁니다. 지명을 받고 나면 계약금으로 실랑이 하지 않고 곧바로 계약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 대졸 선수는 달라야 하나요? 졸업 전에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는 제도가 없어서?
학생 야구 선수 프로 진출 현황. EBS 화면 캡처
아닙니다. 프로 선수가 되기는 너무 힘들고, 프로 선수가 된다고 해도 오래 버티기도 힘이 듭니다. 2014년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 117명 중 38명(32.5%)은 현재 '은퇴' 상태입니다. 신인 선수 가운데 3분의 1이 5년도 못 버티는 겁니다. 이해 드래프트 때는 대졸 선수 52명이 지명을 받았는데 이 중 23명(44.2%)이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꼭 대학에 가서도 그러니까 이미 프로 선수가 될 기회를 한 번 놓친 다음에도 계속 하던 대로 야구에만 다걸기(올인)하도록 방치하는 게 한 사람 미래를 위해서 나은 길일까요?
예비군 훈련에 참가한 어느 (젊은) 날 '국방력 증강 때문이 아니라 동대장 일자리 때문에 이 제도가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대학야구도 혹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야구인들 일자리 때문에 대학 야구부가 계속 예전 대학야구가 인기 있던 시절을 못 잊는 건 아닌가요?
오히려 고교 시절까지 '야구 선수'가 아니었던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게 진짜 대학야구 활성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비선출'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학창 시절 야구만 했던 친구들도 진짜 자기가 살고 싶은 인생에 한 걸음 더 다가갈 확률이 올라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