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중국 야구 대표 선수단. 대만야구협회 홈페이지


한국 야구 대표팀이 중국에 패했습니다.


네, 제대로 읽으신 거 맞습니다. 한국 야구가 중국 빵치우(棒球)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윤영환 감독(경성대)이 이끄는 한국은 14일 대만 타이중(臺中) 인터콘티넨탈구장에서 열린 제2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에서 승부치기 끝에 중국에 3-4로 졌습니다.


7회까지 한 점도 뽑지 못한 채 0-3으로 끌려가던 한국은 8회초에 무사만루 찬스를 잡은 뒤 강현우(18·유신고·KT 입단 예정)의 적시타 등으로 3-3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연장 10회말 전진 수비하던 유격수 이주찬(21·동의대)이 천쥔(陳俊鵬·24)이 친 땅볼을 잡지 못하면서 결국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중국에 진 건 2005년 미야자키(宮崎) 아시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에서 3-4로 패한 뒤 14년 만입니다.


린치우거(任秋革) 중국 감독은 "매우 흥분된 기분이다. 두 팀 모두 매우 잘 싸웠다. 그저 우리가 운이 조금 더 좋았다"면서 "우리가 이겼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도 올림픽을 향해 계속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도쿄(東京) 올림픽 최종 예선 진출권 두 장이 걸려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개최국 일본을 제외한 상위 2개 팀이 최종 예선 진출권을 받아가는 방식입니다. 물론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면 문제가 없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이 티켓이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홈런을 친 뒤 3루 코치와 하이파이프를 하고 있는 양진. 대만야구협회 홈페이지


이날 중국에서 제일 눈에 띈 선수는 양진(楊晉·21)이었습니다. 양진은 이날 5회 2타점 적시타를 때렸고 7회에는 배동현(21·한일장신대)으로부터 1점 홈런을 뽑아내는 등 3안타(2루타 1개, 홈런 1개) 경기를 선보였습니다. 


양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성인 대표팀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한국을 이겨 무척 기쁘다.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감이 생긴 듯 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양진은 어디에서 연습을 했을까요?


정답은 미국 독립리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오브 인디펜던트 프로페셔널 베이스볼' 소속 텍사스 에어호그스입니다. 양진뿐만 아니라 중국 야구 대표팀 (상비군) 선수는 전부 이 팀 소속으로 실전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지난해 쓴 '베이스볼 비키니'에서 인용하면: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중국·대만 코디네이터로 활약한 김윤석 씨는 "중국야구협회(CBA)가 2020 도쿄올림픽 전까지 야구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실전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해 아예 독립리그 팀에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 시즌 에어호그스 공식 명칭은 아예 '베이징(北京) 쇼강(首鋼) 골든이글스(金鷹)가 후원하는 텍사스 에어호그스(Texas AirHogs-powered by Beijing Shougang Golden Eagles)입니다. 쇼강은 중국 국영기업인 수도강철공사를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중국 대표팀 상비군 선수들도 원래 서로 다른 팀에서 뛰었지만 올해 이 팀을 만들어 소속을 바꾼 다음 이들을 에어호그스로 보냈습니다. 문자 그대로 국가적 투자를 단행한 셈입니다. 


김 코디네이터는 "중국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 올림픽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빠져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국가적 투자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야구가 다시 2020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중국은 현재 야구 대표팀 전력 강화 장기 프로젝트인 '늑대와 함께 춤을(與狼共舞) 계획'을 세우고 한국, 일본을 따라잡으려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대표팀 상비군을 미국 독립리그에 보낸 것도 이 계획의 일부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이 투자는 성공적입니다.


대만 실업팀 '대만전력'을 이끌고 있는 리잉난(李盈南) 감독은 "특히 빠른 공 대처가 많이 늘었다. 흡수를 얼마만큼 했는가의 문제인데, 실제 경기에서 얼마나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 확실히 타격은 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이번 한국 대표팀에는 프로 선수가 한 명도 없습니다. 대학생 20명과 고교 선수 4명이 전부입니다. 만약 4년 전 대회 때처럼 대표팀에 프로 선수가 즐비했다면 중국에게는 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평균 연령 21세인 중국 대표팀 성장세가 무섭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중국을 만났다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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