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프로야구 광주 경기에서 나란히 1루를 밟은 채 시선을 피하고 있는 KIA 오정환(0번)과 박찬호(25번) 그리고 정성훈 코치.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처
키움과 KIA가 맞붙은 프로야구 8일 광주 경기에서 아주 보기 드문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윷놀이에서 말을 업는 것처럼 주자 두 명이 나란히 1루를 밟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것.
키움 선발 이승호(20)에게 6이닝 동안 무득점으로 막힌 채 0-11로 끌려가던 KIA는 7회말 바뀐 투수 안우진(20)을 상대로 1사 만루 찬스를 잡았습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박찬호(24)가 우중간 담장 앞에 떨어지는 타구를 날렸습니다. 2루타는 기본이고 3루타도 노려봄직한 타구였습니다.
문제는 1루 주자 오정환(20)이 키움 우익수 이정후(21)가 공을 잡았다고 생각했다는 것. 2루를 돌아 3루로 뛰던 그는 방향을 바꿔 1루 쪽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2루로 뛰던 박찬호도 하릴없이 1루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을 눈치 챈 키움 수비진이 2루에 공을 던지면서 오정환은 아웃. 최소 싹쓸이 2루타가 됐어야 할 타구가 '우익수 앞 땅볼'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오정환은 아웃 카운트만 늘린 게 아니라 박찬호의 안타도 하나 지운 셈이 됩니다.
이는 야구 규칙 9.05(b)(1)에 따라 "주자가 포스 아웃 되거나 야수의 실책이 없었다면 포스 아웃되었을 경우"에는 안타로 기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 내야수가 타자주자를 잡는 대신 1루 주자를 잡으려고 2루에 공을 던졌을 때 타자에게 안타를 기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윷놀이에서는 말을 업을 수 있지만 야구에서는 타자가 주자가 되면 1루 주자는 반드시 2루를 향해 뛰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1루에 주자가 있을 때는 2루 주자가, 2루에 주자가 있을 때는 2루 주자가 반드시 다음 베이스를 향해 뛰어야(진루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지키지 못한 주자를 잡아내는 게 바로 '포스 아웃'입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오정환은 2루를 밟았다가 돌아왔지만 야구 규칙 5.09(b)(6)은 "진루할 의무가 있던 베이스에 닿은 주자가 어떤 이유로든 원래 점유하고 있던 베이스로 되돌아가야 할 경우 다시 포스 상태에 놓이게 되며, 그가 도달하여야 할 베이스가 태그되면 주자는 아웃이다(이것은 포스 아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6년 4월 1일 프로야구 고척스카이돔 경기에서 롯데 정훈과 손아섭이 2루를 함께 밟고 있는 모습. 여기서 세이프 선언을 받은 주자는 정훈.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처
1루를 두 명이 밟고 있는 건 아주 보기 드문 일이지만 주자 두 명이 2루 또는 3루를 동시에 밟고 있는 일은 종종 나오는 편입니다.
10년 전(헉!) '야구 규칙 퀴즈: 수비와 주루' 포스트에 남긴 것처럼 베이스 점유권은 기본적으로 앞선 주자에게 있습니다.
두 주자가 동시에 같은 베이스를 차지할 수는 없다. 인 플레이 중에 두 주자가 같은 베이스에 닿고 있다면 그 베이스를 차지할 권리는 앞 주자에게 있으며 뒷 주자는 태그당하면 아웃된다. 단, 이 조항 5.06(b)(2)인 경우는 제외한다. ─ 야구 규칙 5.06(a)(2)
여기서 5.06(b)(2)가 바로 광주 경기 같은 케이스입니다. 포스 아웃 상태가 되면 뒤에 있는 주자에게 점유권이 있는 겁니다. (루를 차지할) 권리를 주장하기 앞서 (진루)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자가 주자가 되고 진루의 의무가 생겨 두 명의 주자가 같은 베이스에 닿고 있는 경우 그 베이스를 차지할 권리는 후위주자에게 있고 선행주자는 야수가 공을 지닌 채 선행주자의 신체 또는 진루해야만 하는 베이스를 터치하면 아웃된다. ─ 야규 규칙 5.06(b)(2)
이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래처럼 트리플 플레이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 동영상에서 시애틀 포수 마이크 주니노(28)가 두 선수를 모두 태그했을 때 토론토 3루 주자 에제키엘 카레라(32)는 세이프, 1루에서 달려온 케빈 필라(30)는 아웃이었습니다. 태그 아웃 상태라 루 점유권이 앞선 주자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레라가 베이스에서 발을 떨어뜨린 사이 주니노가 다시 카레라를 태그하면서 카레라도 아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순간적으로 규칙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수비수는 일단 주자 두 명을 모두 태그하면 되고 주자는 일단 끝까지 베이스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영리한 (그리고 발이 느린) 일부 선수들은 자기보다 다음 주자가 빠를 때 일부러 베이스 앞에 멈춰서 자신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모든 종목이 그런 것처럼 야구 역시 순간적인 센스가 부족하면 손발이 고생하는 스포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