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맥과이어(30·삼성·사진)가 21일 대전 경기에서 9이닝 동안 한화 타선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열네 번째 노히트노런 주인공이 됐습니다. 이 블로그에 '노히트노런 이모저모'가 올라온 게 2012년 9월 26일. 맥과이어를 포함해 그 사이 네 명이 더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으니 업데이트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 써봅니다.


• 이날 승리가 맥과이어에게는 한국 프로야구 데뷔 첫 승이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데뷔 첫 승을 노히트노런으로 장식한 건 맥과이어가 처음입니다.


일본 프로야구에는 데뷔 첫 승은 물론 데뷔 첫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선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곤도 신이치(近藤眞市·51). 곤도는 주니치 유니폼을 입고 1군 데뷔전을 치른 1987년 8월 9일 요미우리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기준이 살짝 애매합니다. 범퍼스 존스(1870~1938)는 신시내티 선발 투수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1892년 10월 15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피츠버그를 상대로 볼넷 3개는 내줬지만 안타는 맞지 않고 9이닝을 소화했습니다. 문제는 실책으로 1점(비자책)을 내줬다는 것.


메이저리그는 안타를 한 개도 맞지 않은 '노히터'에 방점을 두기에 이를 기준으로 하면 데뷔 첫 경기 노히터가 맞고, 데뷔 첫 승이 노히터인 것도 맞습니다. 단,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노히트뿐 아니라 노런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기준에 맞추면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는 없습니다.


대신 윌슨 알바레스(49·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1991년 8월 11일 메이저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에 성공하면서 데뷔 첫 승을 기록한 적은 있습니다. 클레이 벅홀츠(35·당시 보스턴)도 커리어 두 번째 등판이었던 2007년 9월 1일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습니다. 벅홀츠는 이로부터 2주 전 데뷔 첫 경기서도 승리 투수가 됐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첫 승은 아니었습니다.




• 맥과이어는 이 경기서 삼진 13개를 잡아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공식적으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 13명 가운데 그 누구도 해당 경기에서 삼진을 10개 이상 잡아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선동열(56), 정명원(53), 보우덴(33)이 각각 기록한 9개가 최다 기록.


단, 비공인 노히트노런 기록자 가운데는 삼성 배영수(38·현 두산)가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10월 25일) 때 10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려면 '완투승'을 거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배영수는 10이닝 동안 안타도 맞지 않고 점수도 내주지 않은 채 마운드에서 내려가고도 공식 노히트노런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현재까지 노히트노런이 91번 나온 일본에서는 탈삼진 16개가 최다 기록입니다. 히로시마 선발 소토코바 요시로(外木場義郞·74)가 1968년 9월 14일 경기서 다이요(현 요코하마)를 상대로 퍼펙트게임(⊂노히트노런)에 성공할 때 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메이저리그 기록은 이보다 하나 많은 17개. 놀란 라이언(72)이 1973년 7월 15일 노히트노런 경기에서 처음으로 17번째 삼진을 잡아냈고, 맥스 슈어저(35)도 2015년 10월 3일 노히트노런 때 탈삼진 17개를 기록했습니다. 



2015년 10월 3일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는 맥스 슈어저(왼쪽). 워싱턴 홈페이지


• 1973년 라이언과 2015년 슈어저는 이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라이언은 이해 5월 15일에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슈어저 역시 그해 6월 20일에도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 시즌에 노히트노런에 두 번 성공한 것. 두 선수 말고도 네 명이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들 가운데 제일 재미있는 건 역시 조니 밴더 미어(1914~1997·사진). 신시내티 선발 투수였던 밴더 미어는 1938년 6월 11일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다음 나흘 뒤인 그달 15일 다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습니다. 맞습니다. 두 경기 연속 노히트노런입니다.


로이 할러데이(1977~2017)도 재미있습니다. 할러데이는 2010년 5월 29일 플로리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스무 번째 퍼펙트게임에 성공한 뒤, 그해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10월 6일) 때 다시 노히트노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밖에 앨리 레이놀즈(1917~1994)가 1951년 7월 12일9월 28일에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버질 트럭스(1917~2013)도 이듬해(1952년) 5월 15일8월 25일에 두 차례 노히트노런에 성공했습니다. 



1973년 5월 15일 생애 첫 노히트노런에 도전 중인 놀란 라이언(왼쪽). LA 에인절스 홈페이지


• 1973년 두 차례 노히트 노런에 성공한 라이언은 1974년 9월 28일, 1975년 6월 1일까지 3년 연속 노히트노런에 성공하면서 샌디 쿠팩스(84)가 보유하고 있던 역대 개인 최다 노히트노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이후 5년간 노히트노런이 없던 라이언은 1981년 9월 26일 생애 다섯 번째 노히트노런에 성공했고 다시 9년이 지나 1990년 6월 11일 메이저리그 최다 노히트노런 기록을 여섯 번으로 늘렸습니다. 이어 이듬해(1991년) 5월 1일 다시 노히트노런을 남기면서 일곱 번이 현재 메이저리그 최다 노히트노런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뒤로 라이언은 물론 쿠팩스를 넘어선 선수도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사와무리 에이지(澤村榮治·1917~1944)와 노히트노런 경기 최다 탈삼진 주인공 소토코바가 각각 세 차례 노히트노런에 성공한 게 개인 최다 기록입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선발 투수가 받는 상(사와무라상)에 이름을 남긴 사와무라는 일본 프로야구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노히트노런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만약 사와무라가 2차 세계대전 중 향년 27세로 전사(戰死)하지 않았다면 이 기록은 더 늘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노히트노런을 두 번 기록한 투수는 없지만 유승안(63), 강인권(47), 양의지(32)는 포수로 두 차례 노히트노런 투수 공을 받았습니다. 양의지는 아직 현역이기 때문에 이 기록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 등판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있는 호리우치 쓰네오. 요미우리(讀賣)신문 홈페이지


•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과 함께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해 그럴 일이 없지만 지금도 일본 센트럴리그와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때문에 이에 얽힌 사연도 적지 않습니다.


에나쓰 유타카(江夏豊·71)는 한신에 몸담고 있던 1973년 8월 30일 안방 경기에서 주니치 타선을 11회초까지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습니다. 노히트노런 투구를 선보였는데도 연장까지 갔다는 건 한신 타선 역시 한 점도 뽑지 못했다는 것. 이에 에나쓰는 11회말 직접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노히트노런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연장전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도, 심지어 자신이 끝내기 홈런으로 그 기록을 완성한 것도 에나쓰가 유일합니다.


에나쓰가 오른쪽 담장을 앞당겨 놓은 곳(럭키 존)으로 끝내기 홈런을 치는 장면. 아사히(朝日)TV 제공


호리우치 쓰네오(堀內恒夫·71)는 1967년 10월 10일 경기서 투수로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면서 타석에서는 2, 4, 6회말에 걸쳐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7회말 네 번째 타석에서 중전안타를 치면서 4연타석 홈런 기록이 깨지자 '그럼 노히트노런이라도 해야겠다'며 의지를 다잡았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웨스 페렐(1908~1976)이 1931년 4월 29일 경기에서 4회말 2점 홈런을 친 뒤 노히트노런에 성공했고, 얼 윌슨(1934~2005)도 1962년 6월 26일 경기서 3회말 솔로 홈런으로 팀에 선취점을 안긴 뒤 노히트노런까지 기록했습니다. 릭 와이즈(74) 역시 1971년 6월 23일 같은 기록을 남겼는데 와이즈가 앞선 두 명과 다른 건 5회(2점)와 8회(1점) 홈런을 두 방 날렸다는 점입니다.




• 삼성은 이날 프로답지 못하게 16-0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 프로야구 노히트노런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이전에는 선동열(56)이 1989년 7월 6일 무등구장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때 해태 타선이 10점을 뽑은 게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팀이 바로 삼성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퍼드 갤빈(1856~1902)이 1884년 8월 4일 디트로이트 울버린스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때 버팔로 바이슨스 타선이 18점을 뽑은 게 기록입니다. 20세기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제이크 아리에타(33)가 생애 두 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2016년 4월 21일 시카고 컵스 타선이 16점을 뽑은 게 역대 최다 득점입니다.


일본에서는 오토모 다쿠미(大友工·1925~2013)가 1952년 7월 26일 쇼치쿠(현 요코하마)를 상대로 볼넷 하나만 내준 채 경기를 마무리했을 때 요미우리 타선이 17점을 뽑은 게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노히트노런

 이름  구단  날짜  구장  상대  비고
 방수원  해태  1984-05-05  광주  삼미  역대 1호
 김정행  롯데  1986-06-05  사직  빙그레  더블헤더 1차전
 장호연  OB  1988-04-02  사직  롯데  
 이동석  빙그레  1988-04-17  광주  해태  무사사구(실책2)
 선동열  해태  1989-07-06  광주  삼성  
 이태일  삼성  1990-08-08  사직  롯데  신인 1호
 김원형  쌍방울  1993-04-30  전주  OB  최연소(20세9개월25일)
 박동희*  롯데  1993-05-13  사직  쌍방울  5이닝 비공인
 김태원  LG  1993-09-09  잠실  쌍방울  
 정명원  현대  1996-10-20  인천  해태  한국시리즈 4차전
 정민철  한화  1997-05-23  대전  OB  무사사구(낫아웃1)
 송진우  한화  2000-05-18  광주  해태  최고령(34세3개월2일)
 배영수*  삼성  2004-10-25  대구  현대  10이닝 비공인
 찰리  NC  2014-06-24  잠실  LG  외국인 1호
 마야  두산  2015-04-09  잠실  넥센  
 보우덴  두산  2016-06-30  잠실  NC  
 맥과이어  삼성  2019-04-21  대전  한화  데뷔 첫 승




댓글, 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