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KT 김민혁(24·사진)이 첫 번째 '끝내기 3피트 수비방해' 장본인으로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KT는 4일 잠실 경기에서 안방 팀 두산에 4-5로 뒤진 9회초 1사 만루 찬스를 잡았습니다. 이때 타석에 들어선 김민혁은 2루수 앞 땅볼을 쳤습니다.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두산 2루수 오재원(34)이 포수 박세혁(29)에게 공을 던져 3루 주자 송민섭(28)을 잡아냈고, 박세혁은 다시 1루수 오재일(33)에게 송구했지만 김민혁이 공보다 먼저 1루에 도착했습니다.


이러면 일반적으로는 세이프 판정이 나오게 마련. 그러면 KT는 2사 만루에서 다시 동점 또는 역전을 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민혁이 베이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추평호 1루심이 주먹을 들어 아웃을 선언하면서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습니다.



김민혁이 아웃 판정을 받은 건 홈에서 1루 사이를 계속 파울라인 안쪽으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야구 규칙 5.09(a)(8)은 다음 상황은 타자 아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타자주자가 본루에서 1루 사이의 후반부를 달리는 동안 3피트 라인의 바깥쪽(오른쪽) 또는 파울 라인의 안쪽(왼쪽)으로 달려 1루 송구를 처리하려는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하였을 경우


단, 타구를 처리하는 야수를 피하기 위하여 3피트 라인의 바깥쪽(오른쪽) 또는 파울 라인의 안쪽(왼쪽)을 달리는 것은 관계없다. 


이때 '3피트 라인'은 홈 플레이트에서 1루를 연결하는 파울라인과 평행하게 (당연히) 3피트(91.44㎝) 거리를 두고 그은 선을 가리킵니다. 위 GIF를 보신 분은 3피트 라인이 어떤 선인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위에 있는 규칙 인용문을 꼼꼼하게 읽으신 분이라면 원래 이렇게 달렸다고 무조건 아웃을 선언하라고 규정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셨을 겁니다.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하였을 경우"라는 전제가 붙어 있으니까요.


같은 내용을 다룬 메이저리그 공식 규칙도 두 조건을 접속사 'and'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주자가 규칙이 허락한 주로(走路)에서 벗어났고 그 결과 야수를 방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아웃인 겁니다.


그럼 이날 김민혁도 야수를 방해했을까요? 김민혁이 뛰는 걸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김민혁이 파울라인 안쪽으로 뛴 건 분명한 사실. 그렇대도 그가 때린 타구가 두산 2루수 → 포수 → 1루수 손을 거치는 동안 방해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수비를 방해했다는 판정을 받은 걸까요?


지난해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프로야구 10개 감독이 모여 야구 규칙 5.09(a)(8)에서 "1루 송구를 처리하려는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하였을 경우"를 제외하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타자주자가 본루에서 1루 사이의 후반부를 달리는 동안 3피트 라인의 바깥쪽(오른쪽) 또는 파울 라인의 안쪽(왼쪽)으로 달렸다"면 무조건, 자동으로 아웃을 주기로 한 겁니다. 그러면서 '3피트 수비방해'라는 기록 항목도 따로 생겼습니다.


이렇게 뜻을 모은 건 '방해했다'는 판단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규칙도 모호합니다. 야구 규칙에 들어 있는 '용어의 정의' 44(a)에 따르면 '공격 측의 방해'는 "공격팀 선수가 플레이를 하려는 야수를 방해하거나 가로막거나 저지하거나 혼란시키는 행위"입니다. 사실상 야수가 수비하는 데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방해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


문제는 심판 판정은 반대일 때가 많았다는 겁니다. 롯데와 NC가 맞붙은 지난해 9월 8일 마산 경기에서 NC 이우성(25)이 세이프 판정을 받은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우성은 4회말 1사 만루에서 투수 앞 땅볼을 쳤습니다. 롯데가 투수 송승준(39) → 포수 안중열(24) → 1루수 이대호(37) 순서로 공을 주고 받는 동안 이우성은 파울라인 안쪽으로 달렸습니다.



이우성이 베이스에 도착하자 나광남 1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습니다. 이대호가 베이스에서 떨어진 상태로 공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우성이 파울라인 안쪽으로 뛰는 바람에 송구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이대호와 조원우 당시 롯데 감독이 항의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올해 같은 규칙을 적용하면 이우성은 물론 3피트 수비방해로 아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기계적으로 규칙을 적용하는 게 옳은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야구에 수비방해 규칙이 존재하는 건 수비팀이 아무 잘못도 없이 피해를 봤을 때 이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일 겁니다. 윤병웅 전 한국야구위원회(KOB) 기록위원장은 2013년 "수비방해의 궁극적 의미는 '부당이득 환수'"라며 "(수비방해는) 불공정 피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김민혁이 파울라인 안쪽으로 뛰었기 때문에 KT가 이득을 본 건 무엇이고, 두산이 손해를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김민혁이 파울라인 바깥쪽으로 뛰었다면 두산 야수진이 그를 잡아낼 수 있었을까요? 박세혁이 공을 던지는 순간 김민혁이 어디를 뛰고 있었는지가 판단 기준이기 때문에 이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뀐 규정을 적용한 첫 케이스였던 LG 이형종(30) 사례도 마찬가지. 이형종은 지난달 27일 문학 경기 때 9회초 무사 1, 2루에서 희생번트를 대고 달리다가 수비방해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호 LG 1루 코치가 바깥으로 뛰라고 사인을 보냈지만 SK 포수 이재원(31)이 공을 던지는 순간 이형종은 파울라인 안쪽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형종이 파울라인 안쪽으로 뛰어서 LG가 부당하게 얻은 이득은 무엇인가요? 이형종이 안쪽으로 뛰지 않았다면 SK 수비진이 타자주자 이형종 대신 1루 또는 2루 주자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랬을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형종은 공보다 발이 늦어 아웃 판정을 받았으니 1루에서도 이득을 본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수비방해 규칙이 존재하는 의도와 무관하게 3피트 수비방해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게 이번 시즌 원칙이기 때문에 LG는 1사 2, 3루가 아니라 1사 1, 2루에서 다시 공격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러면 공격 측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게 아니라 공격 측이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게 아닌가요?


윤 전 위원장은 이렇게 부당한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공격측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주자를 아웃시켰다면 수비방해는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나온 두 사례는 모두 포수가 공을 던지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야수 앞으로 타구가 굴러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풍기 KBO 심판위원장은 "포구 위치는 관계가 없다. 야수가 타구를 처리하는 위치와 무관하게 주자가 3피트 라인을 지키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김 위원장 말처럼 "타자주자가 본루에서 1루 사이의 후반부를 달리는 동안 3피트 라인의 바깥쪽(오른쪽) 또는 파울 라인의 안쪽(왼쪽)으로 달렸다"고 무조건 아웃 판정을 받아야 한다면 2루수 앞 땅볼을 친 선수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나요?



네, 이건 너무 갔습니다. 단, 심판이 수비방해 여부를 (자기도 모르게) 판단해 판정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냥 타자주자가 저렇게 뛰는 것도, 심판이 저렇게 판정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런 일일 뿐입니다.


반면 3피트 수비방해 규칙을 적용할 때는 양 팀 선수단 모든 '아,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원칙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자연스럽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상황인 겁니다. 타자주자는 1루에서 살아야 하고, 살려면 최대한 직선으로 뛰어야 하니까요.


물론 아직 낯설어서 그럴지 모릅니다. 뭐든 익숙해지면 괜찮은 법일 테니 말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 선수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연습경기를 보면 일본 선수들은 아무도 안쪽으로 주루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아마추어부터 그렇게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야, 찾았다, 이 놈!



'아무도' 같은 말이 항상 거짓말 우려를 내포하고 있듯이 100% 자동 적용도 항상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게 마련. 


사실 메이저리그 규칙도 1931년까지는 타자주자가 주로에서 벗어나면 수비방해 판정과 무관하게 무조건 아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이 쌓이고 쌓이자 1932년부터 '그래서 수비를 방해했다고 심판원이 판정할 때'라는 조건을 넣었습니다.


이 정도 시행착오를 경험했으면 그냥 규칙에 나와 있는 대로 규정을 적용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왜 그동안 심판이 잘못했는데 이제 와 선수가 피해를 봐야 하나요?



댓글, 2

  •  댓글  수정/삭제 1
    2019.04.08 13:40

    습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의도적인건 맞음
    더구나 좌타자인데 안쪽으로 뛰면 오히려 시간적으로 손해보기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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