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법재판소는 브리지는 스포츠가 아니라 카드 게임이라고 판결했지만, 세계브리지연맹(WBF)은 엄연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인 단체입니다.
따라서 브리지 선수도 세계반도핑기구(WADA) 규정에 따라 도핑 테스트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징계도 뒤따릅니다. 현재 WBF 세계랭킹 1위 가이어 헬게모(49·모나코)가 1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이유입니다.
WBF는 헬게모가 지난해 9월 29일(이하 현지시간) 월드 브리지 시리즈 때 제출한 검사 샘플에서 임신 촉진제로 쓰는 클로미펜과 합성 테스토스테론이 나와 11월 20일까지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고 지난달 28일 발표했습니다. (WADA에서 처음 징계를 내린 날이 지난해 11월 20일이라 올해 이날까지 1년이 되는 겁니다. 이후 소명 절차를 거쳐 징계 내용을 확정한 게 이번 발표 내용입니다.)
이에 모나코브리지연맹은 "몸을 쓰는 스포츠에 적용하는 반도핑 규칙에 따라 두뇌 스포츠인 브리지 선수가 징계를 받은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 이번 징계는 두뇌 스포츠만의 독특한 특징을 무시한 처사다. 현재 반도핑 규칙은 두뇌 스포츠에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말 지적 능력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헬게모는 원래 노르웨이 태생으로 2009년까지 모국 대표로 뛰었습니다. 노르웨이브리지연맹은 "헬게모가 경기력을 끌어올리려고 약물을 복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징계가 끝나고 돌아올 때 는 더 강한 선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어디까지가 도핑이 아니고, 어디서부터가 도핑인지 결론을 내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디서부터 스포츠라고 볼 수 있는지도 마찬가지. 그래서 브리지는 물론 체스나 e스포츠 선수도 현재 WADA 기준을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도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역시 앞으로 세계 스포츠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