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3년 만에 다시 초보 팬을 위해 최대한 친절하게 쓴 가이드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ABC부터 시작할 수는 없는 법. 미식축구를 보는 법부터 궁금하시면 예전 포스트 '도대체 풋볼은 어떻게 보는 걸까?'를 참조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달 4일 오전 8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올 시즌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을 가리는 '슈퍼볼 LIII'가 열립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로마 숫자 'LIII'. 이를 아라비아 숫자로 바꾸면 53에 해당합니다. 슈퍼볼 미디어 가이드는 "정규리그 대부분이 열리는 연도와 슈퍼볼이 열리는 연도가 다르기 때문에 로마 숫자를 채용했다"고 ('있어 보이니까'를 제외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다른 종목이라면 2018~2019 시즌이라고 표기할 이번 시즌은 NFL 기준으로 2018 시즌입니다. 그런데 슈퍼볼은 2019년에 열립니다. 그래서 '2019 슈퍼볼'이라고 쓰면 이게 2018 시즌 챔피언 결정전인지 2019 시즌 챔피언 결정전인지 불문명하기 때문에 슈퍼볼 LIII라고 쓰는 겁니다.


슈퍼볼에서 '볼'은 ball이 아니라 bowl입니다. 이 볼은 원래 (대학) 미식축구 주요 경기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 경기장 모양이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볼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런 볼 (게임) 가운데 최고니까 슈퍼볼입니다.


사실 이런 이름이 붙은 건 이 경기가 처음 열린 1966년 슈퍼볼(super ball)이라는 장난감이 유행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캔자스시티 구단주였던 라마르 헌트(1932~2006)가 자기 아이들이 슈퍼볼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이 경기 우승 팀은 위에 있는 사진에서 지난해 슈퍼볼 최우수선수(MVP) 닉 폴스(30·필라델피아)가 들고 있는 것처럼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받아 갑니다. 보석 브랜드 '티파니'에서 100% 은(銀)으로 만드는 이 트로피는 높이는 22인치(약 55.9㎝)고, 무게는 7파운드(약 3.2㎏) 나갑니다. 시중에서 사려면 3500달러(약 396만 원) 정도 줘야 한다고 합니다.


1966년 열린 첫 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팀은 그린베이였고 이듬해 챔피언 역시 그린베이였습니다. 당시 그린베이를 이끌던 감독 겸 단장 이름이 바로 빈스 롬바르디(1913~1970)입니다. 당연히 롬바르디 감독이 슈퍼볼에서 우승했을 때는 트로피 이름이 이렇지 않았습니다. 5회 슈퍼볼부터 우승 트로피에 지금 같은 이름이 붙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월드리시즈를 비롯해 나머지 4대 북미 프로스포츠(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야구) 챔피언 결정전은 맞대결 두 팀 안방을 오가며 여러 번 열리지만 NFL 결승전은 단판 승부입니다. 그것도 어떤 구장에서 경기를 치를지 미리 정해두기 때문에 두 팀 모두 안방으로 쓰지 않는 곳에서 열릴 확률이 높습니다. 슈퍼볼 LIII는 애틀랜타가 안방으로 쓰는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에서 열립니다. 


이렇게 개최 구장을 미리 정해 놓는 건 슈퍼볼이 워낙 빅 이벤트인만큼 모든 프랜차이즈에 골고루 기회를 주려는 목적입니다. 참고로 내년 슈퍼볼 LIV하드록 스타디움(마이애미)에서 열립니다. 현재 2024년 열리는 슈퍼볼 LVIII까지 개최 도시를 정한 상태이며, 이 슈퍼볼 LVIII는 메르세데스 벤츠 슈퍼돔(뉴올리언스)에서 막을 올릴 예정입니다.



AFC vs NFC

디 애틀랜틱(The Atlantic) 홈페이지


메이저리그가 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NFL도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와 아메리칸풋볼콘퍼런스(AFC)로 나눠 경기를 치릅니다. 월드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이 맞붙는 것처럼 슈퍼볼 역시 NFC 챔피언과 AFC 챔피언 맞대결입니다.


올 시즌 NFC 챔피언은 로스앤젤레스(LA) 램스, AFC 챔피언은 뉴잉글랜드입니다. 뉴잉글랜드는 사실상 보스턴을 연고지로 삼는 팀입니다. 그러니까 월드시리즈에 이어 또 한번 보스턴-LA 팀이 맞붙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월드시리즈와 슈퍼볼에서 같은 도시 팀끼리 맞붙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NFL에 속한 팀은 총 32개. 그러면 각 콘퍼런스에 속한 팀 숫자는? 네, 절반인 16개입니다. 이 16개 팀은 다시 4개 팀씩 디비전을 구성합니다. 각 콘퍼런스별 플레이오프에는 각 디비전 1위 4개 팀과 나머지 팀 가운데 가장 승률이 높은 2개 팀 등 총 6개 팀이 참가합니다. 콘퍼런스가 두 개니까 플레이오프 전체 참가 팀은 총 12개겠죠?



플레이오프 첫 단계는 각 콘퍼런스별 승률 3-6위, 4-5위가 맞붙는 와일드 카드 결정전입니다. 여기서 승리한 팀이 각각 승률 1, 2위와 맞붙는 '디비전 라운드'를 치릅니다. 그다음은 슈퍼볼 진출자를 가리는 '콘퍼런스 챔피언 결정전'입니다. 21일 현재 여기까지 진행이 끝난 상태입니다.


이날 열린 두 콘퍼런스 챔프전은 모두 연장 끝에 승부가 갈렸습니다. 컨퍼런스 결승전이 모두 연장전까지 간 건 NFL 역사상 처음 있는 일. 먼저 열린 NFC 챔프전에서 램스가 뉴올리언스를 26-23으로 물리쳤고, 이어 열린 AFC 결승전에서는 뉴잉글랜드가 캔자스시티를 37-31로 꺾었습니다.


이날 승리로 램스는 2016년 LA로 다시 연고지를 옮긴 뒤 처음으로 슈퍼볼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팀 역사 전체로 보면 2002년 열린 슈퍼볼 XXXVI에 이어 18년 만에 처음. 공교롭게도 당시 슈퍼볼 상대가 뉴잉글랜드였습니다. 램스는 2000년 열린 슈퍼볼 XXXIV 때 딱 한 번 챔피언을 차지했습니다.


뉴잉글랜드는 3년 연속 슈퍼볼 진출입니다. 뉴잉글랜드는 2017년 슈퍼볼 LI에서는 애틀랜타를 34-28로 꺾고 빈스 롬바드리 트로피(뭔지 기억하시죠?)를 들어 올렸지만, 지난해 슈퍼볼 LII 때는 필라델피아에 33-41로 패했습니다. 뉴잉글랜드는 2002년 슈퍼볼 XXXVI 시작으로 슈퍼볼 LI까지 다섯 번 챔피언으로 등극했던 팀입니다.



Old vs Young


명절이 되면 꼭 나오는 '차례상 차리는 법' 기사처럼 한국 언론에서도 이번 슈퍼볼 예상 기사가 나올 겁니다. 그러면 'Old vs Young'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이 등장할 확률이 99.9%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올해 슈퍼볼을 가장 설명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뉴잉글랜드가 old고, 램스가 young입니다.


뉴잉글래드 빌 벨리칙 감독(67)과 쿼터백 톰 브래디(42)가 램스를 꺾고 처음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던 2002년 션 맥베이 램스 감독(33)은 열여섯 살이었고, 쿼터백 재러드 고프(25)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필요한지)?



벨리칙-브래디 콤비에게는 이번이 아홉 번째 슈퍼볼. 맥베이-고프 콤비는 이번이 첫경험입니다. NFL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지휘봉을 잡았던 맥베이 감독은 슈퍼볼 역사에도 최연소 감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두 팀을 이끄는 쿼터백은 17살 차이.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쿼터백이 슈퍼볼 맞대결을 벌이는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두 쿼터백은 나이 차이만큼 커리어 차이도 큽니다.


브래디(사진 왼쪽)는 NFL을 대표하는 '엄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래디는 뉴잉글랜드를 이끌고 우승 반지 다섯 개(XXXVI, XXXVIII, XXXIX, XLIX, LI)를 차지했습니다. NFL 슈퍼볼 우승을 다섯 번 차지한 선수는 브래디와 찰스 할리(55)뿐이고 한 팀에서 이런 경험을 한 건 브래디 한 명뿐입니다. 게다가 브래디는 브라질 출신 톱 모델 지젤 번천(39)과 결혼해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 올해 슈퍼볼에서 뉴잉글랜드가 승리하게 되면 브래디는 NFL 역사상 처음으로 팀을 여섯 차례 우승으로 이끈 쿼터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겁니다. 또 슈퍼볼 50(이때는 예외적으로 아라비아 숫자로 썼습니다)에서 40세로 우승한 페이턴 매닝(43)을 뛰어 넘어 역대 최고령 슈퍼볼 우승 쿼터백으로도 이름을 남길 수 있습니다. 


반면 'NFL의 미래'라고 평가 받는 고프는 이미 두 차례 프로볼(올스타)에 뽑히면서 왜 자신이 2016년 신인 드래프트 때 전체 1순위를 받았는지 증명해 보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기대주'일 뿐입니다. 물론 이번 슈퍼볼에서 우승하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25세 이하 쿼터백이 슈퍼볼에 진출한 건 슈퍼볼 XXXVI(2002년) 때 브래디를 포함해 총 다섯 번. 이 가운데 브래디와 슈퍼볼 XVI(1982년) 때 샌프란시스코 공격을 진두지휘한 조 몬태나(63·당시 샌프란시스코·사진)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몬태나는 그 뒤로도 샌프란시스코에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세 번(XIX, XXIII, XXIV) 더 선물한 명쿼터백이었습니다. 고프가 샌프란시스코 시절 몬태나의 등번호였던 16번을 자기 등번호로 선택한 건 어린 시절 샌프란시스코 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늘 땅 vs 별 땅


쿼터백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건 야구는 투수놀음인 것처럼 미식축구는 쿼터백놀음이기 때문. 평균 연봉만 봐도 쿼터백이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번 슈퍼볼은 러싱 게임에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대체 풋볼은 어떻게 보는 걸까?' 포스트를 읽어보셨거나 이미 미식축구에 익숙하신 분은 잘 아시는 것처럼 미식축구에서 공격 방식은 크게 러싱(rushing)과 패싱(passing)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러싱은 보통 쿼터백으로부터 공을 전해 받은 러닝백이 공을 들고 뛰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래 GIF처럼 말입니다.



패싱은 문자 그대로 주로 쿼터백이 멀리 던진 패스를 받아 공격하는 형태를 가리킵니다. 미식축구에서는 공을 공격 방향 앞쪽으로 던졌을 때만 패스로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쿼터백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지는 플레이는 당연히 패싱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저는 실컷 쿼터백 이야기를 해놓고 러싱 게임이 승부를 가를 거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사실이 정말 그렇습니다. 벨리첵-브래디 콤비가 처음 짝을 이룬 2000년 이후 팀에서 100 러싱 야드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있을 때 뉴잉글랜드는 딱 한 번밖에 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 패배도 정규리그(51승 1패)에서 나왔습니다. 포스트시즌 때는 11전 전승입니다.


램스는 플레이 액션(play actiohn) 패스 때문에 러싱 게임이 중요합니다. 미식축구에서 플레이 액션은 러닝백에게 공을 주는 척 해서 상대 수비수를 속인 다음 패스하는 플레이를 카리킵니다. 아래 동영상처럼 말입니다. 



프로 풋볼 포커스에 따르면 고프는 전체 패스 시도 가운데 플레이 액션을 활용하는 비율이 38%(563번 중 213번)로 리그 1위입니다. 효과도 좋습니다. 고프가 패스를 한 번 시도할 때마다 램스는 평균 7.5야드를 따냈는데 플레이 액션일 때는 10야드로 33.3%를 더 얻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뉴잉글랜드에서는 이 페이크에 속지 않으려 수비 전술을 짤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거꾸로 러싱이 중요해지는 것. 부상 의혹이 있는 토드 걸리(25)나 C J 앤더슨(28) 같은 러닝백이 활발히 움직여야 패스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예상 vs 결과


늘 그렇듯 이번 슈퍼볼에서 누가 이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압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처음에는 램스가 유리하다는 베팅이 많았지만 이제는 뉴잉글랜드 우승 확률이 높다고 예상이 바뀐 상태입니다.



오즈샤크에 따르면 현재 '머니 라인(money line)'은 뉴잉글랜드 -134, 램스 +110입니다. (베팅 결과에 따라서 이 숫자는 얼마든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여러분이 링크를 클릭하셨을 때는 숫자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머니 라인으로 스포츠 베팅에 참가한 사람들이 누가 유리하다고 보는지 판별할 때는 마이너스(-) 부호가 어느 팀에 붙었는지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지금은 뉴잉글랜드 쪽으로 분위기가 기운 상태입니다.



머니 라인에서 마이너스는 100달러를 따려면 걸어야 할 돈을 뜻하고, 플러스는 100달러를 걸었을 때 받는 돈을 나타냅니다. 현재 뉴잉글랜드 쪽에 마이너스가 붙었으니까 이 팀에 베팅해서 100달러를 따려면 134달러를 걸어야 하는 겁니다. 만약 100달러를 걸었다면 74달러63센트밖에 벌지 못합니다. 램스에 100달러를 걸었을 때는 110달러를 딸 수 있습니다. 


모든 베팅에서 기대 수익이 적다는 건 그 쪽을 선택한 이들이 많다는 뜻. 그래서 마이너스가 붙은 쪽이 유리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물론 이 베팅 결과대로 승부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브래디가 처음 챔피언 반지를 차지한 슈퍼볼 XXXVI 때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램스가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20-17 뉴잉글랜드 승리였습니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응?)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누가 이길 거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겼으면 하는 팀은 있을 터. 저는 메이저리그는 레드삭스, 미국프로농구(NBA)는 셀틱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브루인스 팬이고 이 세 팀 모두 보스턴을 연고지로 삼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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