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사무실에 전화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나이가 두 배쯤 많은 선수를 찾았다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죠. 그런데 시속 98마일짜리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를 찾았는데 보고를 안 하면 잘릴 거예요(I call the office and I tell them I got a guy here almost twice these kids' age, I'm gonna get laughed at. But if I don't call in a 98-mile-an-hour fastball, I'm gonna get fired). ─ 영화 '루키' 중에서


짐 모리스(56·사진)는 1999년 9월 18일(이하 현지시간)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고 텍사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1983년 1월 드래프트 때 밀워키에서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모리스는 이후 7년간 마이너리그에서만 뛰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야구 선수 생활을 접었습니다. 그 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레이건카운티고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면서 야구부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 학교 야구부는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훨씬 익숙했던 팀. 모리스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지역 예선을 통과한다면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이 학교 야구부가 (눈치 없이) 지역 예선을 1위로 통과하면서 모리스는 시험 삼아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에 참가했습니다. 2002년 디즈니에서 내놓은 영화 '루키'를 보신 분이라면 잘 알고 계실 이야기.


이 영화에서 트라이아웃을 마친 모리스에게 탬파베이 스카우트가 건네는 말이 바로 맨 처음에 나온 인용구입니다. 모리스가 나이를 걱정할 때 스카우트는 구속(球速)에 주목한 것.


첫 번째 선수 생활 때 모리스는 한 번도 마이너리그 A 위로 올라가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AA팀 올랜도에서 시작한 모리스는 AAA팀 더램에서 23이닝 동안 삼진 16개를 잡아내며 가능성을 선보였고 기어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첫 등판했을 때 모리스는 36세였습니다.


이 영화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모리스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령 신인으로 알고 계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가 은퇴 이듬해(2001년) 펴낸 책 제목부터 'The Oldest Rookie'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모리스가 이 사기극(?)을 시작한 주인공인지도 모릅니다. 



새철 페이지의 경우


일단 새철(사철) 페이지(1906~1982·사진)는 확실히 모리스보다 더 나이 들어 메이저리그를 밟았습니다. 페이지는 1948년 7월 9일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세인트루이스(현 볼티모어)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러니까 42세에 빅 리그 무대에 처음 데뷔한 것. 


물론 페이지가 뒤늦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건 순전히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페이지는 1927년 니그로리그 경기에 첫 등판했습니다. 그 후 20년 넘게 여러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이미 '역사상 최고 투수'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다가 재키 로빈슨(1919~1972)이 1947년 브루클린(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과 계약하면서 유색인종도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능해지자 뒤늦게 빅 리그 무대를 밟았던 것.


그러니 페이지를 예외로 쳐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이렇게 △인종차별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했거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 승격이 사실상 어려웠거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먼저 뛴 다음에 메이저리그에 건너왔거나 하지 않은 선수 가운데 최고령 신인은 알렉스 맥콜(1894~1991)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콜(사진)은 39세였던 1933년 8월 27일 워싱턴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1915년부터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으니 프로 데뷔 이후 18년 만에 메이저리그 승격 기회를 잡은 것. 워싱턴에서 시즌 중반 갑자기 그를 메이저리그로 불러 올린 정확한 이유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맥콜은 이듬해(1934년) 9월 29일 빅리그 통산 46번째 경기에 나선 뒤 다시는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습니다. 대신 마이너리그에서는 1941년까지 7년을 더 뛰었습니다.


참고로 199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번째 외국인 선수로 현대와 계약했던 조 스트롱(56·사진)은 2000년 5월 11일 안방 경기에서 애틀랜타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38세.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동시에 경험한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나이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선수가 바로 스트롱입니다. 메이저리그 신인 전체로는 13위.


거꾸로 가장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는 조 넉스홀(1928~2007)입니다. 넉스홀은 1944년 6월 10일 경기 때 신시내티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그는 16살이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만 15세 10개월 11일.



김봉수의 경우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나이만 놓고 보면 원년(1982년) 당시 39세였던 백인천 플레잉 감독(76·사진)이 제일 늦은 나이에 1군 첫 경기를 소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백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미 19년을 뛴 상태였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는 기록.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2003년 롯데에서 38세에 데뷔한 김영화(54·포수)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신신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미츠야마 히데카즈(光山英和)라는 이름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16년간 활약한 선수였기 때문에 패스.


이원국(71) 역시 1983년 MBC 유니폼을 입었을 때 서른 다섯이었지만 1966년 도쿄(東京)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를 시작으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이미 프로 선수 생활 경험한 상태였습니다. 고국에 프로야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노구(?)를 이끌고 귀국했던 케이스. 


이렇게 다른 나라 프로야구 경험이 없는 '진짜 신인' 출신 가운데는 황덕균(35·은퇴)이 2013년 9월 8일 경기에서 NC 유니폼을 입고 만 30세 4개월 9일에 1군 데뷔전을 치른 최고령 신인 기록입니다.


거꾸로 최연소 기록은 아직 원년 기록을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OB(현 두산) 박종호(55)는 1982년 4월 14일 대구구장에서 안방 팀 삼성을 상대로 만 17세 4개월 7일에 데뷔전을 치렀는데 지금까지도 1군 경기에 출전한 가장 어린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OB는 최연소 계약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96년 1월 9일 계약금 1억3800만 원, 연봉 1200만 원에 계약한 투수 김봉수(40·사진)가 주인공.


김봉수는 서울 휘문중 3학년 때 최고 시속 140㎞를 기록한 강속구 투수 유망주였지만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떠나면서 그해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17세에 OB와 계약하게 됐던 것.


단, 김봉수는 1군 등판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이 때문에 김봉수가 최연소 프로야구 선수였다고 말하기에는 2%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일본 프로야구 최연소 지명 기록을 가지고 있는 츠지모토 켄토(辻本賢人·30·사진) 역시 1군 무대 등판 기록 없이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츠치모토는 15세였던 2004년 신인 드래프트 때 한신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계속 2군에서만 머물다가 2009년 방출 통보를 받고 프로야구 무대를 떠났습니다.


거꾸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늦은 나이에 지명을 받아 입단한 건 이시무라 노리오(市村則紀·66)입니다. 주니치는 1982년 드래프트 때 당시 30세였던 이시무라를 3순위로 지명했습니다.


이시무라는 주니치에서 3년, 세이부에서 3년을 뛰면서 통산 5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95를 기록한 뒤 은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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