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키는 작아도 공 아주 잘 때렸어요."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김성우 사무국장은 같은 팀 리베로 여오현 플레잉 코치(41·175㎝·사진 오른쪽)가 레프트로 뛰던 홍익대 재학 시절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리베로가 됐지만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이 '수비 전문 선수'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사실 여 코치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축구에 리베로라고 부르는 포지션이 있는 건 쉽게 이해가 갑니다. '리베로(Libero)'는 라틴어 계열 언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 그러니 그라운드 위를 자유롭게 누비면서 최종 수비수부터 공격형 미드필더 구실까지 해내는 선수를 리베로라고 부르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반면 배구에서 리베로는 제일 제약이 많은 포지션입니다. 일단 리베로는 (수비 전문 선수니까) 공격을 하면 안 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네트 상단 위에 있는 공을 때릴 수 없습니다. 당연히 블로킹도 할 수 없고, 서브를 넣어서도 안 됩니다. 또 주장을 맡을 수도 없습니다. 


위에 있는 단락을 자세히 읽으신 분은 그럼 '네트 아래 있는 공으로는 공격이 가능한가?'하고 의문을 품으셨을지 모릅니다. 정답은 '네'입니다. FIVB 규칙은 서브와 블로킹을 제외하고 상대 코트로 공을 보내는 모든 행위를 공격타구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IVB 규칙 13.1 공격타구의 특성

13.1.1 서비스와 블록을 제외한, 상대편 쪽으로 볼을 보내는 모든 행위는, 공격타구로 간주된다.

13.1.2 공격하는 동안 잡거나 던져지지 않고 볼을 깨끗하게 쳐 넣어진 것이라면 티핑(tipping:가볍게 툭 치는 것)이 허용된다.

13.1.3 공격타구는 볼이 네트 수직면을 완전히 통과하거나 상대팀에 의해 접촉되는 순간 완료된다.

 

그래서 여 코치(코트 오른쪽 파란 옷 입은 사람)가 6일 OK저축은행을 상대한 2018~2019 도드람 V리그 안방 경기 도중 아래 GIF처럼 공을 넘긴 건 '공격 타구'에 해당합니다.



원래 배구에서 어떤 선수가 이렇게 공을 넘겨 상대 코트에 공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하면 득점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 코치는 이 경기 전까지 통산 득점이 제로(0)입니다. 이런 플레이를 처음 했기 때문일까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통산 득점 제로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리베로는 득점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리베로는 득점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리베로가 공격에 성공하는 장면은 상대 팀 범실로 기록지에 남습니다. 이번에는 OK저축은행 리베로 조국기(30)가 마지막으로 공을 건드렸기 때문에 조국기가 범실을 저지른 것으로 기록에 남게 됩니다.



이렇게 리베로가 팀 득점을 올리는 게 아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래 같은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는 나옵니다.  



그렇다면 배구에서 리베로는 왜 리베로라고 부를까요? 교체 횟수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원래 배구에서는 세트당 여섯 번까지만 선수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바꾼 선수끼리만 교체가 가능합니다. 코트에 있던 A 선수가 경기에서 빠지고 B 선수가 코트에 들어갔다고 치면 B 선수가 코트에서 나올 때는 반드시 다시 A 선수와 교대해야 합니다.


FIVB 규칙 15.6 선수교대 제한

15.6.1 스타팅 라인-업의 선수는 한 세트에 한번만 경기를 나갈 수 있고. 한 세트에 한번만 다시 경기에 들어갈 수 있으며, 라인-업에 있는 이전의 위치로만 다시 들어갈 수 있다.

15.6.2 교대선수는 세트당 한번만 스타팅 라인-업의 선수자리로 경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세트마다 단 한번만, 교대선수는 동일한 스타팅선수와 다시 교대되어질 수 있다.


반면 리베로는 이런 제약 없이 언제든 코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배구 경기장에 가보시면 리베로가 코트를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프로배구는 2011~2012 시즌부터 리베로를 팀당 두 명까지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두 리베로가 번갈아가면서 코트에 나서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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