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중3이 다 되도록 키가 160㎝도 되지 않은 소년이 있었다. (사실 당시 만 15세 평균 키는 164㎝ 정도밖에 되지 않기는 했다.) 이런 소년이 이전에 어디서 제대로 야구 실력을 뽑낸 게 아니라면 정식 야구부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소년은 '나는 야구 선수로 고교에 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소년은 야구부에 들어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웠고 정말 야구 선수로 고교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고교 입학 첫 날 야구부가 모인 자리에서 '교실로 돌아가라. 더 이상 야구부 활동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렵사리 운동을 허락한 부모님께 차마 '야구부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던 소년은 일부러 유니폼을 더럽힌 다음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날도 소년이 학교 근처에 있던 대학교 운동장을 찾은 것도 순전히 유니폼을 더럽히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웬 걸? 그 운동장에서 연습 중인 고교 야구부가 있었다. 이 학교는 문을 연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고, 야구부는 아예 그해 처음 문을 열었다. 학교에 야구 연습을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없어 대학교 야구장을 빌렸던 것.


사이드암 투수를 꿈꾸던 소년은 이 학교 감독에게 '나를 좀 받아달라'고 사정했고 결국 그 학교로 전학을 가 3년을 보냈다. 이 학교는 창단 석 달 만에 출전한 제16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보성고를 4-3으로 물리치고 1회전을 통과했지만 이후에는 전국 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소년이 졸업하면서 야구부도 문을 닫았다.


소년은 고교 졸업반이 됐지만 오라는 대학도 프로야구 팀도 없던 게 당연한 일. 그렇게 1년 동안 별 다른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이듬해 겨울 OB(현 두산)가 집 근처로 겨울 훈련을 하러 왔다. 여전히 제대로 된 야구 경험은 없었지만 고교 시절 키(182㎝)가 훌쩍 자란 그는 OB 캠프를 찾아가 '훈련 보조'를 자처했다. 새 봄이 되자 소년은 3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배팅볼 투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퓨처스리그(2군) 투수 코치 눈에 들면서 제대로 투수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그해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OB가 그를 정식으로 지명하면서 이 소년은 진짜 프로야구 경기에 나설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소년은 데뷔 첫해 10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했고, 이후 5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수 기록을 이어갔다. 이후 삼성과 SK를 거치면서 13년간 남긴 통산 기록은 122승 100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54. 소년은 학창시절 보여준 게 제일 없는데 프로에서 제일 성공한 사나이로 유니폼을 벗었다.



이미 눈치 채신 분이 적지 않겠지만 이 소년은 바로 '배트맨' 김상진(48·현 삼성 코치)이다. 마산동중에서 야구부에 첫 발을 내딛은 김 코치는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에 진학했지만, 야구부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청강고(현 마산제일고)로 학교를 옮겼다. 그 뒤 이야기는 위에 쓴 대로다.


갑자기 김 코치 인생 스토리가 떠오른 건 2019년 신인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낸 한선태 씨(24) 때문. 한 씨는 학창시절 아예 야구부를 경험한 적이 없다. 대신 일본 독립리그인 '베이스볼 챌린지(BC) 리그' 소속 도치기(栃木)에서 투수 수업을 받으면서 이번에 프로야구 문을 두드렸다. 한 씨는 현재 시속 146㎞짜리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폼이 올라온 상태다.



우리가 김 코치의 처음을 기억하는 건 그가 마침표를 예쁘게 찍었기 때문이다. 과연 한 씨는 어떤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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