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도대체 아시아경기(아시안 게임)를 무슨 재미로 보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제 사랑 정구와 카바디 보는 재미'라고 답하겠습니다.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지만 아시아경기 때는 볼 수 있는 8개 종목 가운데 하나인 카바디는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 중 비인기 종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종주국 인도에서는 12개 팀이 참가하는 프로 리그가 존재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청자 숫자 기준으로 카바디 리그는 인도 프리미어 리그(IPL·크리켓)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높습니다. (파키스탄에서도 올해 카바디 프로 리그가 출범했습니다.)
카바디 프로 리그가 한국과 아주 무관한 것도 아닙니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아래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선수가 바로 한국 남자 카바디 대표팀 주장 이장군(26)입니다. 벵갈에서 레이더(공격수)로 뛰는 이장군은 지난 시즌 리그 전체 연봉 3위(1023만 루피·약 1억6757만 원)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카바디를 아주 많이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는 (공동) 동메달을 차지하기도 했고, 2016년 카바디 월드컵 때는 종주국이자 안방 팀이고 디펜딩 챔피언이기도 했던 인도를 개막전에서 34-32로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분명 카바디는 낯설기는 낯선 종목. 도대체 카바디는 어떻게 보는 걸까요?
카바디 = 피구 + 술래잡기 + 격투기
카바디에서 기본적으로 공격수(레이더·Raider)가 수비수(defender, 예전에는 수비수를 안티·anti라는 이름으로도 불렀습니다) 몇 명을 태그(터치)했는지에 따라 결정합니다. 피구에서 공으로 상대를 맞히면 점수를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터치를 당한 안티는 피구에서 몸에 공을 맞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일단 코트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
피구와 달리 태그를 당했다고 곧바로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레이더가 중앙선을 넘어 안전하게 자기 진영으로 돌아갈 때만 아웃을 당합니다. 따라서 수비진은 태그에 성공한 레이더가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공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상대를 태그하고, 또 자기를 태그한 상대를 붙잡으러 다닌다는 점에서 카바디는 술래잡기를 닮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격투기 또는 럭비가 떠오르는 신체접촉이 발생합니다. 레이더는 손뿐만 아니라 유니폼 옷깃을 포함한 신체 모든 부분으로 상대 신체를 어디든 태그할 수 있고, 수비수 역시 몸을 날려 레이더를 경기장 바닥에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물리적 충격도 큽니다. 한국 여자 카바디 대표 임재원(32)은 "뒤엉켜 넘어질 때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느낌"이라고 전했습니다.
위 GIF처럼 상대를 태클해 코트에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면 레이더는 아웃입니다 = 수비팀이 1점을 얻습니다. 카바디는 각 팀 일곱 명으로 시작하는 종목. 이 GIF에서 한국(줄무늬 유니폼) 선수가 다섯 명뿐인 건, 점수(2-2)에서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인도에 두 점을 내줬기 때문입니다.
수비팀에서 득점하는 방식이 이것뿐인 건 아닙니다. 카바디(कबड्डी)는 힌디어로 '숨을 참는다'는 뜻입니다. 카바디 경기에서 레이더는 중앙선을 넘어선 순간부터 계속 '카바디, 카바디, 카바디…'라고 외치면서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이를 칸트(cant)라고 부르며 이에 실패하면 칸트 아웃(cant out)이라는 반칙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때 수비팀은 공격권을 가져오면서 1점을 더합니다.
점수를 따면 그 점수만큼 아웃당한 선수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선수가 아웃당하면 경기가 끝나는 피구와 차이가 나는 점입니다. 카바디에서 한 팀 선수가 모두 아웃을 당했을 때(올 아웃)는 모든 선수가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대신 상대 팀이 2점을 얻게 됩니다. (올 아웃을 예전에는 로나·lona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신 카바디는 시간 제한을 두고 승부를 가립니다. 남자부 경기 시간은 전·후반 20분, 여자부는 각 15분입니다. 남녀부 모두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쉬는 시간 5분을 둡니다. 물론 이 경기 시간 동안 점수를 한 점이라도 더 많이 얻은 팀이 승리합니다.
이제 기본 개념은 잡으셨을 줄 알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위에서 수비 득점을 봤으니 공격 득점도 봐야겠죠?
카바디, 카바디, 카바디…
자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는 것처럼 이 공격은 3점짜리입니다. 레이더가 어디 어디서 수비수를 세 번 태그했는지 잘 보이시나요? 이 플레이를 잘 뜯어 보면 실제로 공격 득점이 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장면을 보면 이 공격수가 이미 상대 진영에 있는 흰 선을 넘어선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선은 보크(Baulk) 라인이라고 부릅니다(아래 그림 참조). 중앙선을 넘어간 레이더가 상대 선수와 신체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도 아웃당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라인 안쪽에 최소 한 발을 디딘 다음 돌아와야 합니다. (한 발만 디뎠을 때 다른 쪽 발은 공중에 뜬 상태여야 합니다.) 이때는 아웃을 당하지 않지만 득점도 기록할 수 없습니다.
보크라인을 넘어간 이 레이더는 수비팀 55번을 라인 끝까지 몰고가서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건 왜 그럴까요? 경기 도중 공수를 막론하고 아래 그림에서 보라색 영역을 벗어나면 아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55번 선수는 끝까지 중심을 잡으려 했던 겁니다.
단, 태그 이후 그러니까 신체 접촉이 발생한 다음에는 로비까지 좌우 폭을 1m씩 넓게 쓸 수 있습니다. 수비팀에서 먼저 캐치를 시도할 때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 공격수는 수비진을 요리조리 피하기도 하고 힘으로 제압하기도 한 다음 왼쪽 로비를 통해 귀환에 성공했습니다.
▌카바디 남자 경기장 구조(여자 경기장은 12m × 8m)
아, 보너스 라인을 말씀 드리지 않았네요. 이 라인은 수비팀 선수가 6명 이상 남아 있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공격수가 이 라인을 넘었다가 무사히 돌아오면 1점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GIF에서는 레이더가 보너스 라인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수비수가 4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너스 점수는 없습니다.
여기까지 살펴 봐도 위에 있는 GIF에서 공격팀이 3점을 딴 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보크라인을 넘어갔다 온 뒤로는 수비수도 라인 바깥으로 내쫓지 못했고 정작 자기가 잡히기 급급했는데 3점을 가져간 이가 도대체 뭘까요?
카바디는 칠총칠금(七縱七擒)
정답은 이 GIF에 들어 있습니다. 레이더가 수비수를 터치하는 것뿐 아니라 수비수가 먼저 공격수에게 달려들었을 때도 태그로 인정합니다. 여기서는 레이더가 자기 진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비수 세 명을 뿌리쳤기 때문에 3점을 인정받을 수 있던 것. 이런 이유로 카바디에서는 수비수가 먼저 공격수에게 접근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 GIF를 통해서 자기 진영으로 '안전하게' 돌아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체 어떤 부분이든지 중앙선을 넘어 자기 쪽 코트 바닥에 닿으면 됩니다. 물론 이렇게 귀환에 성공할 때까지 계속 '카바디, 카바디, 카바디…'를 외치고 있어야 합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위에 있는 한국-인도 경기 GIF나 이 GIF에 모두 '두 오어 다이 레이드(Do or Die Raid)'라는 표현이 등장한 걸 포착하셨을 겁니다. 위에서 레이더는 보크라인만 넘으면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죠? 이럴 때는 어떤 팀도 득점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공격 시도를 '빈 레이드(Empty Raid)'라고 부릅니다. 두 번 연속 빈 레이드가 나오면 다음 공격이 바로 두 오어 다이 레이드 상황이 됩니다. 이때는 (원래 공격 제한 시간인) 30초 안에 득점에 실패하면 무조건 공격수는 무조건 아웃 = 수비팀이 1점을 얻습니다.
이 GIF에는 '슈퍼 레이드(Super Raid)'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이건 공격으로 3점 이상 올렸을 때를 나타냅니다. 프로 리그에는 '슈퍼 태클(Super Tackle)'도 있습니다. 수비수가 3명 이하일 때 수비 득점에 성공하는 게 바로 슈퍼 태클입니다. 이때 수비팀은 보너스 점수 1점을 더해 총 2점을 얻습니다.
한국 남자 카바디 대표 홍동주(32)는 "카바디가 매력적인 건 수비할 때는 절대 혼자 힘으로 할 수가 없고, 공격을 할 때는 결코 어느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면서 "수비할 때 호흠이 완벽하게 딱 맞아서 레이더를 잡아낼 때의 희열, 그리고 홀로 상대 진영에 들어서 1 대 7로 붙어서 성공하고 돌아왔을 때의 쾌감이 바로 카바디의 맛"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8 평창 올림픽 때 컬링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때는 카바디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재미를 알려주는 종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