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프로야구 모두 해마다 7월 31일은 트레이드 마감일입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날 이후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 팀끼리 선수를 주고 받을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홈페이지(MLB.com)는 8월 1일(이하 현지시간) '추추 트레인' 추신수(36·텍사스)를 포함해 8월에 트레이드 소식이 들릴 확률이 높은 10명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요? 트레이드 마감일이 지났는데 어떻게 트레이드 소식이 들린다는 걸까요?
웨이버 트레이드는 왜 따로 있을까?
사실 한미일 모두 8월 1일 이후에도 선수가 팀을 옮기는 일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대신 트레이드 마감일을 넘어 선수를 주고 받을 때는 '웨이버(waiver)'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는 8월 1일 이후에 선수를 바꾸는 걸 '웨이버 트레이드'라고 표현합니다. (자연스레 7월 31일 이전은 '논 웨이버 트레이드'가 됩니다.)
웨이버에는 공시(公示)라는 낱말이 뒤따라옵니다. 공시는 "공공 기관이 권리의 발생, 변경, 소멸 따위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게시하여 일반에게 널리 알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 그러니까 8월 1일 이후 선수를 다른 팀에 보내려고 하는 팀은 '우리 팀에서 이 선수를 내보내려 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피력해야 하는 겁니다. 거꾸로 7월 31일 이전에 논 웨이버 트레이드가 가능할 때는 이렇게 공개적인 의사 표시 없이 '물 밑에서' 트레이드 카드를 맞춰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규정이 존재하는 건 '짬짜미'를 막으려는 이유가 제일 큽니다. 7월까지는 그래도 '가을 야구' 향방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8월말이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때 만약 이런 제약 조건이 없다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에서 적절한 대가를 받고 '대권'을 노리는 팀에 선수를 밀어주는 꼼수를 부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난을 치는 구단이 나오지 못하도록 '공개 트레이드를 하라'고 못 박고 있는 겁니다.
KBO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규약은 웨이버를 통해 팀을 옮긴 선수는 아예 포스트시즌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94조 [웨이버 공시] ① 제93조에 따라 선수계약을 해지 또는 포기하고자 하는 구단은 매년 정규시즌 종료일까지 총재에게 당해 선수계약에 관한 웨이버를 신청하여야 한다. 단, 8월 1일 이후 웨이버에 의해 이적한 선수는 포스트시즌에 출장할 수 없다.
일본과 미국(메이저리그)에서는 9월 1일 이후 팀을 옮긴 선수에 대해 같은 규정을 적용합니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한신(阪神)이 니혼햄에서 웨이버한 루이스 멘도사(35)와 8월 31일에 계약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트레이드 제도는 짬짜미 위험으로부터 100%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남자프로농구(KBL) 2003~2004 시즌에 있었던 '바셋 임대 트레이드'가 대표 사례.
당시 모비스(현 현대모비스)는 4라운드 종료 시점 기준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범(凡)현대가에 속하는 KCC에 당시 리그 최고 빅맨으로 손꼽히던 외국인 선수 바셋(41)을 내주고 호프(46)와 다음 시즌 신인 지명권을 받아 왔습니다.
결국 KCC는 우승을 차지했고, 모비스는 이 지명권으로 현재까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네 번 뽑힌 양동근(37)을 영입하면서 명문 팀으로 가는 초석을 다졌습니다.
트레이드 마감일이 있어도 이런데 없다면…
웨이버 (트레이드) 어떻게 진행할까?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일본야구기구(NPB)에서 특정 선수에 대해 웨이버 공시를 하게 되면 이 선수를 데려가고자 하는 팀은 1주일 이내에 영입 의사를 밝히면 됩니다. (이를 클레임·claim이라고 표현합니다.) 만약 클레임을 요청한 구단이 여럿이라면 성적이 나쁜 팀부터 우선권을 갖게 됩니다. 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원 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한국은 300만 원, 일본은 390만 엔(약 4000만 원)입니다.
선수를 원하는 구단이 없을 때는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선수 신분이 자유계약선수로 바뀌지만 해당 시즌에는 어떤 팀과도 계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이때 '자유계약선수'도 원하는 팀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맞지만 프리에이전트·FA하고는 다른 개념입니다.)
메이저리그는 '웨이버 트레이드' 자체를 인정하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합니다. 일단 웨이버 공시 요청을 하는 건 똑같습니다. 여러 팀에서 클레임 요청이 들어오면 성적 역순으로 우선권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때 소속 리그 우선권도 있습니다. 만약 내셔널리그 소속 팀에서 선수를 웨이버했다면 내셔널리그 1위 팀이 아메리칸리그 꼴찌 팀보다 우선입니다.
다른 팀에서 클레임이 들어오면 원 소속 팀은 세 가지 옵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는 트레이드를 카드를 맞춰 보는 겁니다. 카드 교환 말미는 이틀입니다. 두 번째는 조건 없이 보내는 것. 이때는 선수를 데려가는 팀에서 남은 연봉 전체를 부담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클레임 요청을 한 팀이 (데려올 만한 선수가 없는 이유 등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웨이버를 철회하면 그만입니다. (한 팀에서 한 선수를 두 번째로 웨이버했을 때는 철회 권한이 없습니다. 이때는 무조건 클레임 요청에 들어온 팀으로 보내야 합니다.)
48 시간 안에 클레임 요청이 한 건도 없다면 (이를 클리어·clear라고 표현합니다.) 원 소속 팀은 그 어떤 팀과도 트레이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을 때 그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8월 어느 날 추신수 웨이버 소식이 들린다고 해서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치가 떨어져서 방출하려는 게 아니라 가치를 인정 받아 팀을 옮기려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