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퀴즈 하나. 흔히 '신인 선수 지명회의'라고 풀이하는 '드래프트' 제도를 처음 도입한 프로 스포츠 리그는 어디였을까요? 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것만으로 이미 눈치채실 수 있듯이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입니다. NFL 각 팀은 1936년부터 드래프트를 통해 신인 선수를 뽑았습니다.


퀴즈 하나 더. 지난해까지 드래프트를 통해 NFL 선수가 된 건 총 2만6138명. 그러면 이 가운데 조막손(손가락이 없거나 오그라져서 펴지 못하는 손)이었던 선수는 몇 명이었을까요? 네, 정답은 제로(0)였습니다. 대신 올해 드래프트 이후에는 정답이 1로 늘었습니다. 시애틀이 5라운드(전체 141위)에서 센트럴플로리다대 라인배커(2선 수비수) 샤킴 그리핀(23·아래 사진 오른쪽)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NFL은 보통 사흘에 걸쳐 드래프트를 진행합니다. 올해 드래프트는 26~28일(이하 현지시간) 텍사스주 앨링턴에 있는 AT&T 스타디움에서 열렸습니다. 각 구단은 탐이 나는 유망주일수록 빠른 순번에서 '모셔가기' 때문에 드래프트 사흘째가 되면 관심이 시들해지게 마련. 그런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샤킴 때문이었습니다.


NFL 구단에서 샤킴에 주목한 건 왼손이 아니라 발 때문이었습니다. 샤킴은 3월 4일 인디애나폴리스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NFL 스카우팅 컴바인(신인 드래프트 참가 선수 대상 체력 측정 행사) 때 40야드(약 36.6m)를 4.38초에 주파했습니다. NFL 컴바인 역사상 라인배커로는 가장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2003년 존 앨스턴(35·은퇴)이 세운 4.40초가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빠른 선수는 보통 힘은 약하게 마련. 샤킴은 의수를 착용하고 102㎏ 벤치프레스를 스무 번 성공했습니다. (아버지는 맞춤형 훈련 도구를 만들어 아들이 벤치프레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한 손이 불편하지만 이를 상쇄할 스피드와 파워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 샤킴은 드래프트 전 "한 손이든 두 손이든 구기 종목 선수는 공만 갖고 놀면 된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샤킴은 '양막대 증후군(amniotic band syndrome)' 때문에 왼손 손가락이 다 자라지 않은 채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손가락을 제대로 펼 수 없는 탓에 고통이 너무 심했습니다. 네 살 때는 자기가 칼로 자기 손가락을 자르려고 시도할 정도였습니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깜짝 놀라 다음 날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샤킴은 결국 왼손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한 손이 없다고 못할 건 없었습니다. NFL 선수가 흔히 그렇듯 고등학교 때는 육상, 야구에서도 남다른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던 건 사실이지만 라인배커로 포지션을 정착한 다음에는 2016년 아메리칸 애슬레틱 콘퍼런스(ACC)에서 '올해의 수비 선수상'을 탔고, 지난 시즌에는 피치볼에서 수비 최우수 선수(MVP)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센트럴플로리다대는 지난 시즌 무패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NFL 전문가 사이에서는 샤킴이 4라운드 때 지명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선이 우세했습니다. 실제로는 한 라운드 밀렸지만 그게 샤킴에게는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시애틀에서 뛸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이 샤킴에서 특별한 이유는 이 팀이 지난해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뽑은 선수 이름은 샤킬 그리핀(23·코너백)이기 때문. 샤킴과 샤킬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이 포스트에서 계속 샤킴을 성(姓)인 그리핀이 아니라 샤킴이라고 쓴 이유입니다. 존 슈나이더 시애틀 단장은 전화로 드래프트 소식을 알리면서 "다시 쌍둥이 형과 뛸 수 있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샤킬은 고교 졸업을 앞두고 미시시피대, 마이애미대, 플로리다주립대,같은 미식축구 명문대에서 입학 제의를 받았지만 사양하고 센트럴플로리다대 입학을 선택했습니다. 이 대학에서만 쌍둥이 형제 두 명에게 모두 장학금을 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샤킬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패키지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배경 스토리가 있는 형제에게 스폰서가 붙는 게 당연한 일. 샤킴은 이미 나이키, (오디오 브랜드) 보스 등과 후원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렇다고 샤킴이 이제부터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냉정하게 말해 그는 여전히 5라운드 드래프티고 이런 선수는 시즌 초반 아니 어쩌면 개막 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유니폼을 벗게 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샤킴이 지금껏 이룬 것만으로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겁니다. 샤킴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포기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됐다고. 부모님 역시 샤킴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으로 그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저 역시 쌍둥이 아빠로서 샤킴의 앞날에 축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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