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장에서 볼카운트 2-0이 되면 울려 퍼지는 응원 소리가 있다. '3구 삼진!' 이 바로 그것. 그러나 이 응원은 대체로 '4구 삼진'에서 시작해 숫자가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로 2-0에서 투수들은 곧바로 승부를 걸어오기보다 유인구를 하나 던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에도 투수들은 모두 785개의 3구 삼진을 잡아냈다. 실제로 볼카운트가 2-0이 된 타석이 9386번 나왔으니 비율로 따져도 8.4%밖에 되지 않는 비율이다. 희소성이 있는 건 분명 하지만 그렇다고 희박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수준. 과연 어떤 투수들이 이 강렬한 압도감을 만끽했을까?

리오스는 31개의 3구 삼진을 잡아내 이 부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류현진의 30개. 수긍이 갈 만한 이름들이다. 공동 3위를 차지한 그레이싱어, 장원삼의 기록이 19개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두 투수가 얼마나 빨리 공포에 빠져들게 했는지 알 수 있다. 4위는 18개를 기록한 박명환. 5위는 이닝수가 적은 오승환이 차지했다. 오승환의 기록은 17개다. 그 뒤를 장원준과 황두성의 15개가 뒤따른다.

투수들의 경우 유독 현대 선수들의 이름이 상위권에 많이 포진해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위에서 언급한 장원삼, 황두성 이외에도 캘러웨이(14개), 송신영(11개), 손승락(10개) 등이 10개 이상의 3구 삼진을 기록했다. 셋업맨 신철인과 박준수 역시 9개의 3구 삼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투수들의 공을 받은 포수별 분포로 보면 김동수가 81개의 3구 삼진을 받아낸 데 비해 강귀태(31개)와 이택근(3개)의 기록이 인상적이다. 포구 이닝을 감안하자면 강귀태와 이택근이 좀더 과감(무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택근도 시즌 초반까지는 분명 포수였습니다!)

타자 가운데 가장 많은 3구 삼진을 당한 선수는 한화의 고동진. 그의 18개보다 2개 적은 16개를 기록한 박재홍이 2위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이 두 선수의 팀 메이트인 김민재가 15개를 당했다. 김민재와 WBC 대표로 함께 활약한 김종국 역시 15개다. 다음은 서울 라이벌 팀들의 차지. LG의 박용택은 14개의 3구 삼진을 당했고, 두산의 나주환과 전상렬 역시 공 3개만에 삼진을 당한 게 11번씩이었다.

투수가 현대라면 타자는 한화다. 고동진, 김민재는 탑 3안에 이름을 올렸고 이도형, 이범호 등이 10개의 3구 삼진을 당했다. 클리어(9개), 조원우(8개) 등의 기록 역시 꽤 많은 편이다. 김태균 역시 10개의 3구 삼진을 당했지만, 한화 소속이 아닌 SK 소속의 김태균이다. 한화 김태균의 3구 삼진은 6개로 한화에서 '진짜' 타자인 선수 가운데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어서 어떤 형태로 삼진을 솎아냈는지 알아보자. 먼저 스윙 3개로 삼진을 잡아낸 경우다. 스윙에는 헛스윙과 파울이 포함된다. 두 명의 신인 좌완 투수가 공동 1위다. 한 명은 예상대로 류현진이고, 또 다른 한명은 현대의 이현승이다. 이들의 기록은 6개. 우완 투수인 박명환과 채병룡이 5개로 그 뒤를 따르지만, 다시 신인 좌완 장원삼이 4개다. 장원준과 전병두 등 또 다른 영건 좌완들 역시 4를 기록했다. 확실히 좌완이 대세다.

이 가운데 가장 놀라운 선수는 KIA의 전병두다. 전병두는 이 네 번의 삼진 가운데 3번의 타석에서 상대 타자로부터 3개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파울 없이 3개의 헛스윙만으로 삼진을 잡아냈다는 뜻이다. 홍원기, 마해영, 정원석 등이 그 희생양. 모두가 전에 전병두와 한 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라는 점 역시 재미있다.

마해영은 전병두 이외에도 박명환을 상대로 헛스윙만 세 차례를 기록한 적이 있고, 정원석 역시 박준수의 공을 노렸지만 헛방망이질 세 번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전병두를 피하는 데 성공한 호세는 랜들과 그레이싱어에게 마찬가지 수모를 당했다.

그럼 세 개의 공을 연거푸 심판의 손이 올라가도록 던진 경우는 어땠을까? 볼 카운트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변한다는 건 어찌 보면 공공연한 비밀. 실제로 2-0이 되면 스트라이크 존이 좁아진다는 인상을 주기에 연거푸 세 개의 스트라이크를 집어 넣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리오스는 상대 타자 4명의 얼을 빼놓고야 말았다. 김원형, 전병호, 카라이어 역시 타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 게 3번씩이다. 신철인과 송진우 등 8명의 투수가 이 상황을 2 차례 연출했을 뿐, 나머지 투수들은 겨우 한 차례의 경험이라도 있다면 만족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3구 삼진은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하다. 그래서 우리는 헛된 바람이 될 줄 알면서도 목이 터져라 '3~구 삼진!'을 외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허무해 보이는 것도 없다. 넋이 빠진 듯 고개를 떨군 채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타자를 보는 마음은 편하지 못하다. 차라리 심판에게 존에 대해 항의라도 하는 편이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그것이 3구 삼진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가장 기억에 남는 3구 삼진의 주인공은 김병현이다. 공 9개로 상대 타순을 strike out the side 하는 투구는 확실히 김병현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마 조용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차례 했던 것 같다. 그럼 올해 가장 놀라운 3구 삼진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강상수에게 당한 박정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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