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우리는 '90년대 최고의 선발 투수와 최고 타자에 대해 알아봤다. 그럼 '80년대에는 어땠을까? 과연 이 시대에는 어떤 '괴물'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줬을까? 기준은 마찬가지로 RCAA와 PRCAA다.
'80년대 괴물은 괴물답게 '헐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RCAA 243은 팀 후배 '짱구' 장효조에 15점 앞선 기록이다. 둘 모두 대구에서 선수 생활 절반을 보냈기 때문에 (물론 '89, '90년 두 시즌 동안 장효조는 롯데 소속이었다.) 이 기록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똑같이 9 시즌을 뛴 '오리 궁둥이' 김성한과 기록을 비교해 봐도 이 정도 차이는 이만수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밖에 '부산 싸나이' 김용철부터 '해결사' 한대화, '촌놈' 김봉연, '문어' 김성래, '온달' 이광은, '우루사' 윤동균, '노랑머리' 김종모 등도 탑 10에 들만한 활약을 펼쳤지만 위 세 선수와는 어느 정도 격차가 존재한다. 누적 수치로 따져서는 이 셋을 따라올 라이벌이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도 단연 이만수가 최고다.
평균을 알아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근소한 차이로 장효조가 역전에 성공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코너 외야수와 포수가 갖는 차이까지 감안하자면 이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김성한은 수비 포지션을 논하기에 앞서 타격 기록 자체가 뒤진다. 물론 이만수의 포수 수비력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전체 야수를 꼽는다고 해도 확실히 '80년대는 이만수의 시대였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제 투수쪽으로 눈을 돌려 보자. 성급한 독자라면 최동원과 선동열의 이름을 떠올릴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예상은 역시나 빗나가지 않는다. 1승 1무 1패라는 기구한 맞대결 성적이 증명하는 것처럼 이 둘이야 말로 진정한 '최고'이고 사실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가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둘 모두 대단한 투수였다.
하지만 프로에서 보여준 것만큼은 확실히 '멍게' 선동열의 우위다. '80년대에 5.5 시즌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최동원을 능가하고도 남을 만한 누적 성적을 남겼다. 물론 한국시리즈 4승 기록은 아무나 거둘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무쇠팔' 최동원은 전성기가 이미 지난 상태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화려함은 인정하지만 꾸준함에서는 최동원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둘을 동시대에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80년대 야구팬들은 축복받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역시나 그 뒤를 두 선수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꼴뚜기' 김시진이 잇고 있다. 이 세 선수가 나란히 찍은 사진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도 빠질 수 없다. 통산 완투 기록이 말해주듯 윤학길이야 말로 마운드 위에서 고군분투한 진정한 에이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밖에 '너구리' 장명부와 MBC의 신구 에이스 '술고래' 하기룡과 '노송' 김용수 역시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김용남은 해태와 MBC에서 활약했던 선수였고, '왕발' 황규봉 역시 '80년대 라이온스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평균으로 알아봐도 선동열, 최동원 체제는 견고하다. 장명부가 이에 뒤질세라 둘을 뒤쫓는다. '싸움닭' 조계현은 선동열이 없었다면 해태의 에이스를 맡기에도 충분한 재목이었다. 이런 목록에서 이름이 빠질 리 없는 선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 '색시' 이강철까지 버티고 있었으니 해태는 마운드 높이가 실로 아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올빼미' 김일융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84 한국시리즈는 최동원의 4승(3패)으로 유명하지만 김일융도 3승 4패를 남ㄱ녔다. 그밖에 '슈퍼 베이비' 박동희도 당시 포텐셜만 놓고 보자면 선동열 못지않았다. 김청수 또한 롯데 마운드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이미 결론을 내린 것이나 다름 없지만 투수 쪽에서는 확실히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압도적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누구였는지를 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후추 명전에 실렸던 표현대로 꼭 잡아야 하는 경기라면 선동열을 마운드에 올리겠지만, 그래도 안 된다면 찾을 수밖에 없는 투수가 바로 최동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프로에서 보여준 것만으로는 확실히 선동열의 승리다.
우리의 '80년대 프로야구는 참으로 풍요로웠다. '70년대 고고 야구의 인기를 등에 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선수들은 모두가 스타였으며, 그 결과 실제로도 투타 모두에 걸쳐 호쾌하고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넘쳐났다. 말 그대로 근성과 투지의 시대였던 셈이다. 그리고 촌스러운 그리움이 주는 낭만은 '80년대를 더더욱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누가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인가? 아마 해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80년대의 프로야구를 접한 이들에게, 가장 야구 보기가 좋았던 시절은 바로 이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순박한 별명으로 선수들을 부를 수 있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