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앞으로 서울 고척스카이돔으로 프로야구를 보러 가실 분들은 야구 규칙하고 리그 규정을 확실히 숙지하고 가셔야 할 모양입니다. 올해 유독 고척돔에서 규칙이나 규정을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번에는 16일 롯데 선발 투수 노경은(33·사진)이 4번 타자 자리에 들어서게 된 이야기입니다.


롯데는 이날 고척돔에서 방문 경기를 치르면서 전준우(31) - 손아섭(29) - 최준석(34) - 이대호(35) - 김상호(28) 순서로 1회초 공격을 진했습니다. 문제는 1회말 수비 때 생겼습니다. 2번 타자 이택근(37) 타석 때까지 최준석이 계속 1루수 자리를 지키자 안방 팀 넥센 장정석 감독이 항의를 하고 나섰습니다. 롯데에서 건네 받은 타순표(선발 라인업)에는 이대호가 1루수로 나와 있다는 겁니다.


롯데 관계자도 "케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며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롯데 조원우 감독은 이날 경기 전 "이대호를 4번 지명타자로 내고, 1루수는 3번 최준석이 맡는다"고 밝혔지만 선발 라인업에는 반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타순표 작성 자체는 다른 사람이 하더라도 기록실에 타순표를 내기 전에는 감독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게 기본인데 조 감독도 무언가를 착각한 겁니다. 


결국 롯데로서는 지명타자 최준석이 1루수 이대호를 대신해 수비에 들어간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야구 규칙 6.10(b)ⓓ는 지명타자가 사라지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이 바로 "지명타자가 수비에 나갔을 때"입니다. 같은 규칙 6.10(b)ⓐ①에는 "각 팀은 경기마다 투수를 대신하여 타격할 타자를 지명할 수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지명타자가 사라지면 투수가 타순표에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


(혹시 '우리 팀 투수는 타격이 좋으니 투수는 그냥 타석에 서고 포수 등 타격이 약한 다른 포지션을 대신해 지명타자가 들어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으십니까. 이 규정에 따라 지명타자는 '투수를 대신하여 타격할 타자'입니다. 따라서 별도 규정을 정하지 않은 이상 다른 포지션을 대신해 지명타자가 들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대호는 이날 1회초에 삼진으로 물러난 걸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거꾸로 2003년 데뷔 후 단 한 타석도 기록하지 않았던 노경은은 4회와 6회 두 차례 타석에 들어서야 했습니다. 결과는 두 번 모두 삼진이었습니다. 


253일 만에 선발 등판한 노경은은 마운드 위에서는 삼진 6개를 잡아내며 6이닝을 2실점으로 막고 퀄리트스타트를 기록했지만 결국 팀이 1-2로 패하며 패전 투수가 됐습니다. 4번 타자 도움을 받기는커녕 4번 타자가 빠진 상태로, 심지어 프로 데뷔 첫 두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자기가 4번 타자 자리를 책임져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참고로 선발 투수가 4번 타자 자리에 들어선 건 2004년 6월 12일 광주 경기 때 두산 레스(44) 이후 13년 만입니다. 전체 투수 중에서는 한화 이태양(27)이 지난해 5월 12일 안방 경기 때 연장 12회말에 4번 타자 자리에 대타로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심판진이 규칙을 제대로 적용했습니다. 사흘 전에는 심판들이 한국야구위원회(KBO)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리그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제재금 100만 원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13일 넥센 선발 마운드를 차지한 사이드암 투수 한현희(24)는 3회초 수비를 앞두고 마운드 위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넥센 코칭스태프는 한현희를 내리기로 결정하고 왼손 투수 금민철(31)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아무도 금민철이 마운드에 오르는 걸 막지 않았고 전광판에도 투수가 금민철로 바뀌었죠. 


그제서야 3루심 김병주 심판이 "왼손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면 안 된다"고 넥센 더그아웃에 알렸습니다. 원래는 이 규정이 맞습니다. KBO 리그 규정 15조에 따라 부상으로 갑작스레 투수를 바꿔야 할 때는 같은 유형 투수로 바꿔야 하거든요.



넥센은 결국 금민철을 내리고 오른손 투수 오윤성(19)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럼 모든 문제를 해소한 걸까요? 아닙니다. 사이드암, 언더핸드는 역시 사이드암, 언더핸드로 바꿔야 하거든요. 만약 이런 유형이 없다면 던지는 손만 맞추면 되지만 이날 넥센 출전 선수 명단(엔트리)에는 사이드암 투수 신재영(28)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KBO는 이튿날 "잘못된 투수 교체를 용인했다"는 이유로 이날 심판진 전원에게 징계를 내렸습니다.


왜 하필 고척돔에서만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김인식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도 '고척돔 기운을 받아 꼭 승리하겠다'더니 결국 참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롯데는 롯데고 우연은 우연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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