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는 두 팀에서 각각 팀내 퀵오픈 성공률 1위를 기록한 대한항공 김학민(34·61.3%·왼쪽)과 현대캐피탈 박주형(30·58.5%)
'빠른 배구'를 앞세운 현대캐피탈이 '높은 배구'로 막아선 한국전력을 꺾고 두 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습니다. 이 기사에 쓴 것처럼 현대캐피탈이 프로배구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거둘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퀵오픈'이었습니다.
C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퀵오픈은 이름 그대로 속공(퀵)과 오픈의 하이브리드 버전입니다. 세터가 빠르게 세트(토스)한 공을 날개 공격수가 스파이크로 연결하는 형태죠. 아래 그림처럼 말입니다.
정규리그 2위 현대캐피탈은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서 퀵오픈을 42개 시도해 37개를 득점으로 연결했습니다(공격 성공률 88.1%). 특히 1차전에서는 퀵오픈 시도 20개 중 19개(95.0%)를 한국전력 코트에 꽂아 넣으며 기선제압에 성공했습니다. 전체 공격 시도 중에서 퀵오픈이 차지하는 비율(점유율)은 31.1%. 이는 정규리그 때 퀵오픈 점유율(26.2%)보다 5% 포인트 가까이 올라 간 비율입니다.
▌2016~2017 V리그 남자부 팀별 공격 유형 비중
구단 | 오픈 | 후위 | 퀵오픈 | 속공 | 시간차 | 이동 |
대한항공 | 29.4% | 26.0% | 27.4% | 12.4% | 4.7% | 0.0% |
우리카드 | 32.5% | 23.9% | 27.3% | 13.3% | 2.9% | 0.1% |
현대캐피탈 | 28.8% | 22.1% | 26.2% | 18.4% | 4.6% | 0.0% |
OK저축은행 | 32.4% | 26.5% | 21.4% | 15.0% | 4.1% | 0.4% |
KB손해보험 | 36.3% | 24.9% | 19.6% | 12.9% | 6.1% | 0.1% |
한국전력 | 41.4% | 22.7% | 19.2% | 14.0% | 2.7% | 0.0% |
삼성화재 | 41.8% | 28.2% | 14.8% | 13.1% | 2.0% | 0.1 % |
그런 점에서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하고 맞붙는 올 시즌 챔피언결정전은 '퀵오픈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때 퀵오픈 점유율(27.4%)로 지난 시즌에 이어 퀵오픈을 가장 많이 쓴 팀이었습니다. 게다가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 서브를 가장 잘 받는 팀입니다.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서브 후 득점에 성공한 비율은 29.6%로 리그 전체 평균(30.6%)보다도 낮습니다. 원래 현대캐피탈은 이 비율이 33.1%로 리그 1위인 팀입니다. 챔프전 때도 서브를 잘 받는다면 퀵오픈 점유율이 올라갈 여지가 충분합니다.
반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한국전력은 '뻥배구'의 팀이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이번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서도 오픈(39.4%)과 후위(24.6%) 공격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정규리그 때(64.1%)도 두 공격 유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번 플레이오프(64.0%)하고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규리그에서 한국전력보다 이 두 공격 유형 비중이 더 높았던 건 프로배구 출범 13년 만에 처음 '봄배구' 진출에 실패한 삼성화재(70.0%)뿐이었습니다.
뻥배구로 승부를 보려면 외국인 선수가 터져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직선 코스는 블로킹, 대각선 쪽은 수비 라인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바로티(26·헝가리) 봉쇄 작전을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바로티는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서 공격 성공률 31.4%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공격 효율로 따지면 그나마 .039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공격 유형별 점유율 추이
그러니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번 한국전력 탈락은 몰방(沒放) 배구의 몰락을 알리는 결정적 신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OK저축은행이 챔프전에서 삼성화재를 연거푸 무너뜨리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올 시즌에는 한국전력마저 KO 패를 당했습니다.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는 상황에서 바로티나 삼성화재 타이스(26·네덜란드) 이상으로 몰방 역량을 갖춘 선수가 얼마나 V리그 무대를 찾을지도 불확실합니다. (소문으로는 월척급 선수들이 줄 섰다는 말도 들리기는 합니다만…)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저는 몰방 배구를 하는 팀이 한두 팀 있어도 괜찮다는 쪽입니다. 세상엔 틀린 걸 다르다고 우기는 사람도 많은 법이니까요. 과연 다시 몰방 배구에 다시 봄날이 찾아올까요? 아니면 이대로 봄날이 가고 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