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배구 남자부 우리카드에 김은섭(27·사진 가운데)이라는 복덩이가 굴러들어왔습니다. 김은섭은 인하대를 졸업하고 2012~2013 신인 선수 드래프트 때 1라운드 전체 5위로 대한항공에서 부름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키(211㎝)도 크고 운동 능력이 좋아 인하대 시절 국가대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유망주로 손꼽혔던 그에게도 대한항공 선수층이라는 벽은 높았습니다. 김은섭은 데뷔 시즌 10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상무에 입대했습니다. 그 뒤에 찾아온 건 방황. 김은섭은 "솔직히 배구가 하기 싫었다. 정말 열심히 놀았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체육계 은어로 '소풍'을 다녀온 겁니다.


김은섭이 다시 코트로 돌아온 건 넉 달 전. 김은섭은 실업팀을 거쳐 6월 20일 우리카드 유니폼을 처음 입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김은섭은 "밖에 나가 보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배구밖에 없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팀(우리카드)에서 먼저 (입단) 요청이 왔지만 나중에는 내가 매달렸다"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동안 월급이 없었다. 그래도 (김상우) 감독님이 용돈까지 주면서 격려해주셨다"며 웃었습니다.


결국 입단 테스트를 버텨내는 데 성공하고 8월말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곧바로 출장 기회를 보장받은 건 아닙니다. 이제 운이 따라줄 차례. 주전 센터 박상하(30)가 발목을 다치지 않았다면 1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NH농협 V리그 안방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김은섭은 네 시즌 만에 V리그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블로킹 4개에 속공 2개로 6득점. 우리카드도 지난해 챔피언 결정전 승리 팀 OK저축은행을 3-0(25-18, 25-22, 30-28)으로 완파했습니다. 우리카드가 개막전에서 승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은섭은 1세트 초반 OK저축은 주포 송명근(23)을 두 차례 가로 막으면서 팀이 초반 승기를 잡는데 도움을 줬고, 2세트에서도 블로킹 2개를 기록했습니다. 우리카드는 이날 블로킹 싸움에서 OK저축은행에 12-7로 앞섰습니다.


김은섭은 "경기가 끝났지만 아직도 떨린다. 다시 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서 "경기 때 미친 듯이 뛰는 스타일이다. (오늘은)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일부러 액션을 더 크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위축될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리가 느려서 맨투맨 블로킹은 자신 없는 편이다. 하지만 (큰 키 덕에) 리딩 블로킹은 자신있다. 오늘은 역동작에 안 걸리는 데 집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은섭은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도 올 시즌 최장신 선수입니다. 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은 "저렇게 키 큰 선수가 저런 (민첩한) 움직임이 나오기는 어렵다. 오늘 제일 칭찬하고 싶은 건 서브 범실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지난 시즌 (센터 자리에서) 박상하와 박진우(26) 둘로만 한 시즌을 치른 뒤 고민을 많이 했다. 계속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기회를 주면 절실함이 있어 잘해주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은섭은 인하대에서 날개 공격수와 센터를 병행했고, 대한항공에서도 처음에 수비(리시브)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카드에서는 센터로만 나설 예정. 김은섭은 "내가 살 길은 센터라고 생각한다. 쉬는 동안 배구 템포가 너무 빨라져 숙제가 많아진 것 같다"며 "공백 기간에 아예 운동을 하지 않고 쉬었기 때문에 따라가야 한다. 앞으로 두 배, 세 배 열심히 해야 한다. 지는 게 싫다. 개인 목표보다는 팀이 무조건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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