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호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놀랐던 것은 럭비와 크리켓에 대한 호주 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이었다. 어찌됐든 국내에서는 두 종목 모두 생소한 종목이었던 게 사실이니 말이다.

럭비는 대학교 재학 중 잠시 접할 기회가 있어 그래도 친숙했다. 물론 호주에서만 사용되는 로컬룰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우리 여자 배구의 백어택 2점처럼 익숙해지기 그리 곤란한 문제는 아니었다. AFL, NRL, 럭비 유니온 등 규칙이 다르면 다른 대로, 같은면 같은 대로 늘 남성다운 박진감이 넘치는 럭비 경기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크리켓은 좀 달랐다. 크리켓이라면 NBA를 보기 위해 돌린 '스타 TV'에서 이따금 마주쳤던 게 전부였다. 가장 기초적인 룰이야 곧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게 왜 재미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할 일이었다. 차라리 야구가 너무 그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호주 국민들은 우리가 해변에서 '살인배구'를 하고 축구공을 차듯, 크리켓을 즐겼다. 신문 1면의 주인공 역시 크리켓의 보울러(Bowler)인 경우가 많았다. 보울러는 야구로 치면 투수였으니 사실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존 메이저 前영국 총리의 말을 어느 책에서 읽게 됐다. "크리켓의 룰을 설명하는 것은 우수한 두뇌를 판가름하는 위대한 시험이다." 사실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는 무리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경기 중간 선수들을 위한 티타임(Tea Time)까지 마련된 길고 지루한 경기는 확실히 익숙해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최근 ICC 크리켓 월드컵이 한창이라는 소식 정도는 알고 있으니 그때 맺은 인연이 아직 유효하기는 한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꼭 당구공 같았던 그 가죽공의 느낌 또한 잊지 않고 있다. 가능성이 0%에 가깝긴 하지만, 국내에서 크리켓 경기를 볼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구장을 찾아 힘찬 응원을 보낼 의향도 물론이다.

이제 야구 이야기를 해보자. 어느 정도 숙련된 팬이 아니라면, 사실 야구 경기 또한 길 때는 5시간이 넘어가는 길고 지루한 경기다. 방망이를 들고 있는 한 사내가 똑같이 공을 때려냈는데 왜 어떤 때는 아웃이 되고 어떤 때는 또 세이프가 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은 경기 시간과 스코어만 보여주는 다른 종목의 전광판과 달리, 야구 전광판은 알기 힘든 영어 약자로 가득 차 있다. 선수 이름 앞에 붙은 숫자는 등번호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그런데 자칭 야구 마니아를 자처하는 수준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광판에 E가 켜지면 실책을 뜻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고, 선수 이름 앞의 7이 좌익수를 뜻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우리팀의 이해관계가 상대팀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싸우기 시작한다. 응원팀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키보드 앞에 앉아, 케이블 TV로 야구를 시청하면서.

그러는 사이 구장 시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야구장을 찾는 발길이 뜸해진다. 글러브를 끼워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제 '마구마구'에서 몇 점을 내줬는지는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면서 일본, 미국의 야구 저변과 응원 열기를 마냥 부러워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역시 한국 야구는 안 돼."

그래서 한국 야구는 이제 정말 안 되게 생겼다. 2000년대 최고 명문 팀은 80억이라는 헐값에도 매각에 실패했고, 우리 아마 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구장은 문화재로서의 보존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국내 야구 중계의 새바람을 선도하던 두 케이블채널은 텅 빈 관중석에 질려, 많아야 5 타석이 전부인 이승엽, 이병규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둘러싸고, 야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예의 그 싸움이 한창이지만 정작 일반 국민들은 무슨 일이 있냐는 식이다.

사실 야구 규칙을 온전히 이해시키는 것 역시 "우수한 두뇌를 판가름하는 위대한 시험"이다. 하지만 야구를 즐기는 일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혹시 주변에 야구장에 가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친구는 없는가?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야구장을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기회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처음 야구장을 찾은 이들의 반응 또한 대체로 "재미있다."는 쪽이다. 새파란 잔디가 깔린 시원한 밤하늘을 가르는 하얀 공의 궤적, 더위를 날리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 그 청량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모든 관중이 편안히 관람할 수 있는 최신식 구장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이는 확실히 우리 야구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구장을 굳이 지을 이유가 무엇일까. 구장이 낙후되어, 우리 야구는 재미가 없어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는 핑계는 잡시 접도록 하자. 그리고 무조건 한번만 야구장을 향한 발길을 재촉해 보자.

그럼 보게 될 것이다. 구장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관중수를 확인하는 선수들을. 공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레 투구 동작에 임하는 투수를. 뜬공을 향해 거칠게 달려가는 외야수를, 그리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내야수의 민첩한 송구를. 다정스레 전광판 읽는 법을 설명하는 남자친구를.

그리고 듣게 될 것이다. 어이없는 투구에 더 어이없는 힘찬 스윙, 하지만 곧 터져 나오는 관중들의 웃음과 짜증을. 파울볼을 주워 아이에게 건네는 자상한 가장의 따뜻한 목소리를. 맥주를 판매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잔뜩 잠긴 목소리를. 상대 투수를 주눅 들게 만드는 견제 방해 응원 소리를. 그리고 무엇보다 풍선막대 소리와 함께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수십 년 된 낡은 구장에서 경기를 보지 않아도 될 권리를. 우리 경기를 마음껏 우리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는 권리를. 그저 이 땅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야구 경기를 그 어떤 리그의 경기보다 더 목청껏 소리 높여 응원할 수 있는 권리를 말이다.

그리고 한 번 더 솔직해져 보자.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이 필요한가. 아니면 데이트를 하기 위해, 주말을 친구들과 보낼 공간을 위해 극장이 필요한가. 극장을 한번 찾을 때 야구장을 한 번 더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매일 똑같은 생활 패턴에 대한 일탈로서 야구장을 한번쯤 찾는 게 그리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크리켓 팬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야구에 지금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야구팬인 것 같다. 야구 마니아가 아닌 야구팬 말이다. 그래서 이런 야구팬들 만드는 것은 야구 마니아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니, 우리가 먼저 야구 마니아가 되기에 앞서, 특정 팀의 팬이 되기에 앞서, 스스로가 야구팬이 되어야 할 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인정받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게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가 외면하는 우리 야구, 우리 스스로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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