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지켜봐야만 합니다. 스켈리턴 신성 윤성빈(23·한국체대·사진)이 드디어 세계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윤성빈은 5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2015~2016 월드컵 7차 대회에서 1, 2차 시기 합계 2분18초2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로써 윤성빈은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처음으로 스켈리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가 됐습니다. (놀랍게도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종목 이름은 '스켈리턴', 단체 이름에는 '스켈레톤'이 맞습니다.)
1차 시기 때만 해도 윤성빈은 1~6차 대회 때 모두 금메달을 딴 마르틴스 두쿠르스(32·라트비아)는 물론 그의 친형 토마스(35)에도 뒤져 3위였습니다. 그러다 2차 시기 때 1분8초82를 기록하며 두 선수를 모두 밀어냈습니다. 두쿠루스 형제는 윤성빈에 나란히 0.07초 뒤지며 공동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세계랭킹은 여전히 1위 마르틴스(1560점) - 2위 윤성빈(1365점) - 3위 토마스(1348점) 순입니다.
두쿠르스 형제는 썰매 명문가 출신입니다. 현재도 아버지 다니스 씨(62)가 코치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다니스 씨는 젊었을 때 봅슬레이 브레이크맨으로 활약했습니다. 두 형제는 1998년부터 국제 무대를 누빈 베테랑 중 베테랑입니다. 마르틴스는 2010 밴쿠버, 2014 소치 올림픽 때 두 대회 연속으로 은메달을 땄고 토마스도 두 대회 모두 4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면 윤성빈은 서울 신림고 3학년이던 2012년 체대 입시를 준비하다 우연히 스켈리턴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키 178㎝인 윤성빈이 농구 림을 두 손으로 잡을 만큼 탄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걸 눈여겨본 체육 선생님이 이 종목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한 겁니다. 윤성빈은 운동을 시작한 지 석 달 만인 그해 9월에 태극마크를 달면서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한국 스켈리턴 선수층이 얇았던 거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소치 올림픽 때 16위에 오르면서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그때 윤성빈은 신발 뒤축에 '보고 있나'라는 네 글자를 적고 뛰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싶은 마음을 담았던 거죠. 스포츠에서 관심을 끄는 데는 성적만한 게 없습니다. 윤성빈은 소치 올림픽 이후 1년이 지난 2014~2015시즌에는 은메달까지 따내면서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습니다. 최종 성적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올 시즌에는 1차 대회 때는 12위에 그쳤지만 그 뒤로는 5위까지 주는 메달을 계속 따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오른 겁니다.
윤성빈은 "외국인 코치(리처드 브롬니 주행코치)가 이 코스를 잘 알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브롬니 코치(39·영국·사진 오른쪽)는 "날씨가 따뜻해 얼음 상태가 자주 바뀌었다. 1차 레이스 때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2차 레이스 때는 코스에 잘 적응하면서 완벽한 경기를 펼쳐줬다"며 "윤성빈이 세계를 놀라킨 것뿐만 아니라 이한신(29·강원도청) 역시 자기 최고 기록인 10위를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평창 겨울 올림픽을 2년 앞두고 집중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3년 반 전에는 썰매 한 번 타본 적 없던 선수가 세계 정상을 차지했다는 건 확실히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겁니다. 봅슬레이에서도 이미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연맹)가 이미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성결대 체육교육과 선후배 사이인 두 선수도 5년 전에는 체육교사를 꿈꾸던 평범한 체대생이었습니다. 서영우는 육상 단거리 선수 경험이 있지만 원윤종은 이전까지 '엘리트 스포츠'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썰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알파인 스키도 비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알파인 스키는 뒤꿈치를 고정한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슬로프를 내려오는 종목입니다. 여기에는 모두 11개 세부 종목이 있는데 크게 속도 종목(활강, 슈퍼 대회전)과 기술 종목(대회전, 회전)으로 나뉩니다. 기술 종목도 그렇지만 제대로 된 알파인 경기장이 없던 한국에서 속도 종목은 꿈도 꾸지 못할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대한스키협회에서 '2018 평창 올림픽 때 우리도 전 종목에 선수를 내보내자'면서 스피드 팀(아래 사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 뒤 대표 선수들은 미국, 칠레,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실력을 키웠습니다. 그 결과 이현지(22·단국대·사진 가운데)가 최고 레벨인 국제스키연맹(FISS) 월드컵보다 두 단계 정도 낮은 FIS컵에서 3위를 할 만큼 기량이 올랐습니다.
평창 대회 때 경기가 열릴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4일 만난 귄터 후야라 FIS 기술위원(64·독일)이 그러더군요. "전주자(前走者·정식 경기 전 미리 코스를 점검하는 주자)로 나선 한국 선수들이 타는 걸 지켜보고 놀랐다. 6개월 만에 이렇게 발전한 건 기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6일부터 이틀간 이곳에서 열리는 FIS 월드컵에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참가하는 김현태(26·울산스키협회)는 회전(기술)과 슈퍼대회전(스피드)을 합친 슈퍼콤바인드에서 메달을 노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평창 올림픽도 흰 코끼리가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즘 하고 있는 걸 보면 2년 뒤에는 정말 '사고를 치는' 한국 선수가 여럿 나와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진짜 '쿨러닝' 같은 영화를 찍어야 하는 나라는 한국인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