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야구 삼성도 '제일기획 시대'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제일기획은 11일 ㈜삼성라이온즈 주식 12만9000주를 취득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체 주식이 20만 주이기 때문에 이번에 제일기획에서 사들이는 건 64.5%입니다. 같은 시스템 9월 7일자 공시를 보면 당시 ㈜제일모직은 라이온즈 주식 3.0%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67.5%를 소유하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 라이온즈 최대 주주는 삼성전자㈜였습니다. 적어도 이 블로그에 주주현황을 처음 올린 2007년 이후 줄곧 그랬습니다. (당시 자료는 2005년 기준·아래 그래프) 올 3월 2일에 이 시스템에 올라온 '감사보고서'를 보면 라이온즈 지분 소유 구조는 △삼성전자 27.5% △삼성SDI 15.0% △CJ제일제당 15% △신세계 14.5% △기타 28.0%로 돼 있었습니다. 삼성 그룹 구조조정에 따라 제일모직이 삼성SDI 산하 소재부문으로 바뀌었던 걸 감안하면 처음 블로그에 올렸을 때하고 그대로였던 겁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9월 7일자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친척(?)이 모두 빠지고 진짜 그룹 계열사만 남게 된 겁니다. 이 공시에 달린 주석은 "2015.09.01 제일모직㈜와 삼성물산㈜의 합병 및 합병존속회사의 사명변경(삼성물산㈜)으로 인한 변동 공시임"이라고 돼 있습니다. 결국 그 사이에는 주식 보유 변동 내역을 공시한 적이 없지만 제일기획 이관 '물밑 작업'으로 주식이 오갔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CJ에서 ㈜서울히어로즈하고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 때 'CJ는 이미 라이온즈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하고 찾아 보니 빠졌길래 '정말 가능성이 있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삼성 쪽에 양해만 구하면 도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제가 처음 라이온즈도 제일기획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은 건 5월 중순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기사로 쓰지는 못했습니다. 그 뒤 스포츠서울에서 [단독]을 달아 9월 11일 관련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해를 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밝히자면 저 혼자만 알고 있었는데 어떤 외압 때문에 쓰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많은 기자 및 관계자가 이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스포츠서울에서 때를 잘 포착한 겁니다.) 스포츠서울 보도 이후에도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공식 발표가 나왔으니 제일기획에서도 열심히 준비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일기획은 이관 소식을 알리는 참고 자료에서 "최근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구단들은 과거 승패만을 중요시했던 '스포츠단'에서 체계적인 마케팅 전략과 팬 서비스를 통해 수입을 창출해내는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제일기획은 수원삼성) 축구단 인수 후 K리그 유료 관중비율 1위 달성, 유소년 클럽 등 선수 육성시스템 강화, 통합 패키지 스폰서십과 브랜드데이 도입 등 마케팅 수익 창출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며 스포츠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라고 자평했습니다.


프로야구 삼성이 내년부터 안방으로 쓰게 될 '라이온즈 파크'. 올해 초 사진입니다. 대구시 제공


사실 이 전부터 느꼈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돈 안 쓰겠다는 뜻이구나'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안현호 라이온즈 단장이 줄곧 강조한 것도 "스포츠 구단도 최소한 똔똔은 맞춰야 한다"는 거였거든요. 실제로 이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박석민(30)을 NC에 빼앗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당장 매출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니 지출을 통제해야 실적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프로축구 사정은 잘 모르지만 수원삼성도 비슷한 문제에 시달린 걸로 전해들었습니다.


그럼 과연 라이온즈는 자생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프로 구단이 돈을 버는 구조는 간단합니다. 제일 덩치가 큰 건 (대)기업에서 받는 스폰서십 비용(광고료)하고 TV 중계권료. 한국 프로 구단은 이미 대기업 소유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 광고료를 받아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모기업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계열사에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돈이 필요 이상 많으냐? 올 4월에 소개해 드린 것처럼 유진투자증권㈜에서는 "현재의 계열사 지원금은 시장가치에 의거한 적정한 광고비 지출이지, 의미없는 금액 지출이 아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아니라면 이미 15년 전부터 '거품' 논란을 빚었는데 FA 몸값이 이렇게 치솟는 시장이 계속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같은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프로야구는 TV 중계권료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조치가 아주 의미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일단 FA 시장은 버티는 거지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선발 투수보다 구원 투수에게 더 큰 몸값을 안겨주는 건 구단이 선수단 중심으로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돈이 많고 적은 걸 떠나 꼭 필요한 곳에 알맞게 쓰는 구조를 뿌리 내리는 데 제일기획이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제일기획은 같은 자료에서 "(라이온즈 이관으로) 현재 진행 중인 스포츠 구단 마케팅 혁신 작업에 속도를 내는 한편, 팬들에게 보다 만족스러운 볼거리와 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 구단에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솔루션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일기획이 한국 프로 스포츠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바로잡았다'는 표현을 써야 할까요? 아니면 '새로 만들었다"는 표현을 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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