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2등'마저 실패한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소프트웨어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캐피탈은 '숙적' 삼성화재에서 대형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면 더 대단한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는 데만 몰두했던 게 사실. 이번 시즌에는 접근법을 달리했습니다. '주포' 문성민(29·사진 왼쪽)을 중심으로 팀 컬러 찾기에 나선 겁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문성민이 다시 라이트로 돌아간다는 것. 새로 팀을 이끌게 된 최태웅 감독(39)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미시마(三島)시에서 전지훈련 중인 최 감독은 "몰방(沒放) 배구에 집착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튼튼하게 명가를 재건하겠다"며 "팀의 기초부터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최 감독이 강조하는 '기초'란 모든 선수가 공격할 수 있고, 또 득점할 수 있는 것. 문성민이 포지션 변화를 시도하면서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성민은 "다른 팀은 특정 선수가 공격 점유율이 높다. 외국인 선수에게 공을 많이 올리는 걸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라며 "하지만 감독님께서 우리 팀의 색을 다르게 잡았다.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뿐 아니라 우리 선수 모두가 팀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면서 "플레이가 빨라졌다. 큰 공격을 때리는 횟수는 줄어들고 페인트나 연타를 이용한 공격이 많아졌다"고 팀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최 감독 역시 "되든 안 되든 세게 치고 보자는 식으로 '뻥배구'를 해서는 배구가 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연타를 강조하고 있다. 연타가 제대로 들어가면 상대 팀 분위기가 흔들린다. 우리가 경기를 주도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캐피탈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또 한 가지는 '스피드 배구'. 최 감독은 "스피드 배구가 그저 빠르기만 한 배구가 아니다. 공격수가 때리기 좋은 토스(세트) 속도가 있다. 그 타이밍을 딱 맞추는 게 관건"이라며 "코치가 초시계를 들고 일일이 토스 하나 하나 시간을 재고 있다. 타이밍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80% 정도 만들어진 것 같다"고 자평했습니다.
문성민은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우리가 새로운 배구로 첫발을 내디딘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빨리 성공했으면 좋겠다.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면서 개인 성적보다 팀을 위한 플레이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어 "지난 시즌 팀 성적은 역대 최악이었다. 선수들 모두 거기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곱씹으며 "이번 시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배구를 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고 긍정적으로 내다봤습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15승 21패로 V리그 출범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봄 배구' 무대를 밟지 못했습니다.
여전한 불안요소는 베테랑 세터가 없다는 것. 최 감독은 "당분간 노재욱(23)과 이승원(22) 둘 모두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계속해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플레이오프에 오르면 좋겠다"면서 "시몬(28)이 제때 돌아온다면 OK저축은행과 삼성화재가 2강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본다. 재미있는 시즌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습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팬들이 납득하기 힘든 성적을 낸 게 사실. 문성민은 팬들에게 "우리 배구를 즐기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현대캐피탈 팬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