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오늘자 A1면에 사고(社告)가 나온 것처럼 19일부터 제69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고교야구 주말리그 왕중왕전이 서울 목동·신월야구장에서 열립니다. 황금사자기는 손기정 선생(1912~2002)이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땄을 때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저항한 이길용 기자(1899~?)가 산파로 나서 만든 대회. 당시 대회 명칭은 제1차 전국지구대표 중등야구 쟁패전이었습니다. 긴 역사 만큼이나 많은 스타들이 황금사자기를 거쳐갔습니다. 황금사자기가 배출한 스타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황금사자기가 없었다면 '평화왕' 강정호(28·피츠버그·사진)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강정호는 고3이던 2005년 이 대회서 모교 광주일고에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타자와 투수를 겸했던 강정호는 성남서고와 맞붙은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강정호 개인으로서는 생애 첫 우승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우승 기록입니다.


당시 우수투수상과 타점왕을 차지한 강정호는 프로야구 넥센 시절 "지금도 우승 당시 마운드로 달려 나가던 순간이 생생하다"며 "타자로 마음을 굳힐 때 미련이 없던 건 당시 투수로서 우승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정호가 프로에서 투수를 선택했다면(실제 지명은 포수로 받았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야수가 몇 년 뒤에나 나왔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LG 봉중근(35)은 아예 황금사자기를 미국 진출 디딤돌로 삼은 케이스. 봉중근은 신일고 1학년이던 1996년 대회 때 결승전을 포함해 팀의 5승 중 4승을 책임졌고, 이듬해에는 대회 4경기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되면서 우수투수상과 도루상까지 받았습니다. 봉중근은 황금사자기 2연패를 이끈 2학년 때 메이저리그 애틀랜타에 입단했습니다. 봉중근은 "야구를 잘해서 스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대회가 바로 황금사자기"라고 회상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백인천 전 롯데 감독(72) 역시 황금사자기를 발판 삼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포수였던 백 전 감독은 1959년 제13회 대회이재환 전 MBC 코치(74)와 배터리를 이뤄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도 2연패 주인공이 되면서 일본에서도 눈여겨보는 한국 대표 타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황금사자기를 거쳐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들은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 그 중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MVP) 출신으로 1호 프로 선수가 된 건 삼성 창단 멤버였던 김한근 현 한양대 감독(61)입니다. 김 감독은 1973년 제27회 대회 때 모교 대구상고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장효조 전 삼성 퓨처스리그(2군) 감독(1956~2011) 역시 김 감독과 함께 우승을 이끌며 우수선수상과 타격상 및 최다 안타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해태 왕조’ 주역들도 고교 시절 황금사자기를 거쳐 갔습니다. 이들 중에는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은 1972년 제26회 대회 군상상고 우승 멤버가 적지 않습니다. 김봉연 현 극동대 교수(63), 김준환 현 원광대 감독(60), 김일권 전 삼성 코치(59), 김우근(59)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이 프로야구에 데뷔하던 1982년 황금사자기 최고 스타는 송진우 현 KBSN 해설위원(49)이었습니다. 송 위원은 에이스로 경기 대부분을 책임지며 창단 27년 만에 처음으로 모교 청주 세광고에 전국 대회 우승을 안겼습니다. 송 위원은 "1982년 황금사자기는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야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우승했던 자신감이 없었다면 프로 생활의 고비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꾸로 김시진 전 롯데 감독(57), 최동원 전 한화 퓨처스리그(2군) 감독(1958~2011), 선동열 전 KIA 감독은(52)은 1980년대 프로야구를 삼분(三分)한 에이스지만 고교 시절 황금사자기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김 전 감독의 대구상고는 경북고에 막혀 본선 진출조차 하지 못했고, 최 전 감독의 경남고는 제30회(1976년) 대회에서 그해 우승 팀 신일고에 3회전에서 패했습니다. 선 전 감독의 광주일고는 1980년 대회 결승에 진출했지만 박노준 현 우석대 교수(53)의 선린상고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고교 야구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황금사자기도 위기를 맞았던 게 사실. 하지만 황금사자기는 '배움의 야구', '매너의 야구'를 모토로 아마추어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는데 앞장섰습니다. 그 덕에 프로야구와 함께 성장하며 프로야구의 젖줄로 자리매김 했습니다다. 프로야구 역사가 30년을 넘기면서 이제 황금사자기는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현재 프로야구 10개 팀 감독 중에서 황금사자기 출전 경험이 없는 건 일본 교토(京都)에서 고교를 졸업한 한화 김성근 감독(73)뿐입니다.


황금사자기 홍보 팸플릿에 넣으려고 쓴 기사를 '갈무리' 차원에서 블로그에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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