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저는 나지완(29·KIA)이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낌새가 이상했는지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걔가 왜 거기에 서 있었는지 의아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지난달 28일 2014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였습니다. 시상식을 마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빠져나오던 상황. 모든 선수가 인터뷰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지완은 굳이 기자들을 향해 오더니 "스프링캠프 때부터 아팠는데 여기 오려고 참고 뛰었다. 그런데 대표팀에 소집되고 나니 참고 뛰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며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수술받을 생각이다. 뼛조각이 돌아다녀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딴에는 대회 기간 별로 보여준 게 없어 변명하고 투지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 모두가 알지만 쉬쉬했던 문제를 자기 스스로 털어놓은 겁니다. 팬들이 이미 팀별 안배로 '무임승차'했다고 의심하고 있던 선수가 사실이 그랬다고 양심고백하는 것하고 '다를 바' 없는 발언을 한 것.


불똥은 국회로 튀었습니다.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10일 열린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나지완 선수가 부상을 안고도 아시아경기에 출전한 것을 뒤늦게 고백하면서 태극마크가 병역 면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최상의 전력을 꾸리기보다는 구단별로 군 미필자를 뽑아서 선수단을 꾸려 '군 면제 메달'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몇몇 야구 팬들이 문제 삼던 부분을 지적하고 나선 셈입니다.


야구는 늘 타깃이었다

사실 이번 대회 때 제가 인터뷰한 소위 비인기 종목 선수들 반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금메달을 따면 "이번에 금메달 못 따면 군대 갔어야 하는데 정말 잘 됐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곤 했습니다. 세계 수준하고 격차가 크거나 올림픽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몇몇 종목에서는 아시아경기 금메달이 아니면 병역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요. 운동선수 대부분은 '젊음'이 없으면 꿈을 이루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도 제가 이 칼럼에 쓴 것처럼 스포츠 팬들은 "아직 징병검사도 안 받은 사격 대표 김청용(17)이 '군대 가기 싫다'고 금메달 따려 안달하는 건 구역질이 나서 못 보겠다"거나 "다른 선수들과 20kg도 넘게 차이 나게 이기는 장미란(31)이 올림픽에 나가는 건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축구는 대표 선수 20명 전원이 병역 면제를 받았는데 12명이 혜택을 받은 야구 선수들이 더 문제가 됩니다.


4년전 광저우 대회가 끝나고 블로그 포스트로 썼듯이 저는 야구 대표팀이 비교적 약체를 상대로 금메달을 딴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이나 대만을 향해 왜 너희는 최고 수준 대표를 보내지 않았냐고 따질 문제라고 봅니다. 아시아경기에서 야구를 빼야 한다는 논란이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어떤 대표팀을 뽑아 보내든 우리가 상관할 문제도 아니고 말입니다. 나라마다 아시아경기 수준을 보는 눈이 다른 게 자명한 일이니 말입니다.


한번 운동장에 서서 높이 날아오는 플라이볼을 잡으려 해봐. 의외로 힘들 걸? 공이 어디로 오는지, 언제 떨어질지, 판단이 잘 안 설 걸?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게 프로의 임무지. 야구라는 종목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경기전에 땀을 흘리는 스포츠야. - '니시오카 츠요시(西岡剛)의 야구론'


그런데 앞서 언급한 블로그 포스트 내용처럼 인간은 일단 어떤 방향으로든 눈에 보이는 잣대를 기준으로 삼게 돼 있습니다. 능숙하게 문을 따는 베테랑보다 자물쇠를 부수는 '초짜' 열쇠 수리공이 더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그저 인간 본성일 뿐이니 나무랄 일도 아니죠. 야구는 '경기 전에 땀 흘리는 스포츠'라는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기에 그들이 평생 땀을 얼마나 흘렸든 상관없이 야구 선수들은 참 너무 쉽게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그 상황에서 나지완이 정말 큰~ 일을 해낸 겁니다.


나지완 법 정말 탄생하나?

그래서 만약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이 내놓은 병역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법은 '나지완 법'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의원은 "스포츠 선수가 병역 면제를 받으려면 그만큼 국위 선양에 대한 확실한 기여가 있어야 한다. 국민이 보기에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업적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특례를 주자는 것"이라며 "체육과 예술대회 수상자들의 병역 면제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대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운동선수가 처음 병역 혜택을 받게 된 건 1973년 3월 3일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예술·체육요원 제도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뒤 몇 차례 손질을 거쳐 지금은 병역법 제68조의11①에 따라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을 따거나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면 4주간 훈련을 받은 뒤 34개월(훈련 기간 포함) 동안만 관련 직종(해당 종목 선수나 지도자 등)에 종사하는 걸로 병역 의무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2008년까지는 월드컵 축구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예술ㆍ체육요원 편입 대상 경기였습니다. 갈수록 혜택 범위가 줄어들고 있는 거죠. 그전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도 병역 혜택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현역 복무 자원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이 범위를 더 좁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건 '누적점수제'입니다. 경기력향상연구연금(체육연금) 지급 때처럼 포인트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체육 요원 누적 점수 부여 기준(안)
 대회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올림픽  120  100  60  25  15  10
 아시아경기  50  25  15  -  -  -
 세계선수권  4년 주기  60  40  20  -  -  -
 2~3년  40  20  10  -  -  -
 1년  20  10  5  -  -  -


지난해 병무청에서 마련한 개선안(표 참조)은 이 점수가 100점을 넘을 때만 병역 혜택을 주는 방식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아시아경기는 2회 연속 우승을 하든지 2관왕 이상을 해야 예술ㆍ체육요원 편입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병무청은 이 누적점수제를 이르면 이번 아시아경기부터 적용할 방침이었지만 무산됐습니다. 당연히 체육계 반발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 제도를 놓고 병무청과 오래 논의한 끝에 기존 방식대로 가자고 7월 결론 내린 상태"라고 전해습니다. 게다가 이번 정부 들어 체육계를 비리의 온상처럼 몰고가고 있는 분위기도 체육계를 더욱 똘똘 뭉치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시아경기 초반 메달 레이스가 생각보다 저조하자 몇몇 체육계 인사는 "정부에서 하도 들쑤시고 다니니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병무청 역시 "당장 제도를 바꿀 계획이 없다. 장기간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수면 아래 가라 앉아 있던 걸 다시 건져낸 게 바로 나지완 효과.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 김기희(25·전북)가 '4분 제대'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찬반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국회에서 난리가 날 정도는 아니었죠. 게다가 정말 아파서 뛰기 힘든 상황일지도 모르는데 나지완은 최근 잔여경기 일정을 나름 성실히 소화하고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늘 혀끝을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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