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태극마크 무게는 종목을 따지지 않습니다. 세월도 묻지 않습니다.

 

남춘천여중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됐으니 어느 덧 대표 생활 12년차.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반납했을까요?

 

양수진(26·LH·오른쪽)은 "후배들이 그만두고 새 얼굴이 들어와도 나는 항상 자리를 지켰다. 나를 보고 '저 언니 정말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양수진은 근대5종 국가대표입니다. 양수진은 원래 수영 선수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수영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육상 선수 출신 어머니 몸에서 태어났으니 처음부터 한 종목만 하기는 무리였는지 모릅니다.

 

아니, 수영만 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한국체대 졸업 후 소속팀을 찾지 못하던 때가 특히 그랬습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 때 은메달과 동메달을 하나씩 목에 걸었지만 오라는 팀이 없던 겁니다.

 

양수진은 "성실하게 운동만 하면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이 틀릴 때가 많아 기가 죽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LH에서 근대 5종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양수진은 '밥 벌이'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자력 진출권을 따내며 2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일 마침내 생애 첫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양수진은 이날 정민아(22), 최민지(21·이상 한국체대), 김선우(18·경기체고)와 함께 2012 인천 아시아경기 근대 5종 여자 단체전에서 함께 5120점으로 우승했습니다.

 

양수진은 "이번 금메달은 성실함에 대해 하늘이 준 선물 같아"면서 "마지막 아시아경기라고 생각하고 나섰는데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아 정말 만족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하루에 수영, 펜싱, 승마, 복합경기(사격+육상)를 모두 치르는 근대 5종은 개인전 참가 선수 4명의 총점을 모두 더해 단체전 순위를 가립니다. 한국이 따낸 5120점 중 1312점을 따낸 양수진은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했고, 최민지는 1298점으로 동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사실 이날 오전까지 한국은 펜싱, 수영에서 2095점을 얻어 세계랭킹 10위권 선수들만 출전한 중국(2138점)에 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승마 경기부터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선수가 말을 가져오는 승마 경기와 달리 근대 5종에서는 추첨을 통해 배정받은 말을 타고 경기를 치릅니다.

 

중국은 말 추첨 과정에서 한국이 '꼼수'를 썼을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을 뽑아 놓고도 중국에서 가져온 고삐와 안장을 쓰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역효과가 난 게 당연한 일. 말들이 낯선 장구에 어색함을 느끼면서 중국 선수 2명이 실격하고 말았습니다.

양수진은 "승마는 겨울부터 공을 들였던 종목이다. 평소 2~3일에 한번 탔는데 매일 2~3 마리씩 탔다"며 "이렇게 연습했는데 오늘 또 중국이 말을 잘 탔다면 아마 좌절했을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사실 근대 5종에서 안방 어드밴티지가 있다면 바로 이렇게 경기에 쓸 말을 모두 타 볼 수 있다는 것. 한국 대표팀을 이 점을 활용해 승마를 '전략 종목'으로 정했습니다.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그는 벌써 내일을 꿈꿉니다. 일단 이달 말에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와 올림픽 선발전에 충실할 계획.

 

양수진은 "잘하는 후배들이 많이 치고 올라오는데 나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후배들은 지금도 잘 해주고 있다.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남자만큼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본다"말했습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이자 근대 5종을 직접 고안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1863~1937)은 "근대5종 선수는 승리하든 못하든 우수한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지 않고 늘 운명을 찾아 개척해 가는 양수진 그리고 한국 여자 근대5종 선수들이야 말로 아시아 최고 만능 스포츠맨입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