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첫인상은 그냥 수다스러운 일본 아주머니였습니다. 믹스드존(Mixed Zone) 인터뷰는 보통 간단하게 소감 정도 묻고 끝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혼다 유미코(本田由美子·55·사진 왼쪽) 씨는 기다리기 지루할 정도로 일본 기자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인터뷰 시간이 짧아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여전히 술술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시더군요. 질문을 몇 개 준비 못 해간 게 오히려 죄송할 정도였습니다.

혼다 씨는 2014 인천 아시아경기에 양궁 '컴파운드'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1959년생에서 유추하실 수 있는 것처럼 이 대회 '비공식' 최고령 선수입니다. 비공식이라고 붙인 건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최고령 선수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낯부끄러운 표현을 떳떳하게 걸어둔 곳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양궁은 크게 '리커브(recurve)'와 '컴파운드(compound)'로 나뉩니다. 리커브는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그 양궁이고, 컴파운드는 도르래와 조준경을 부착한 활로 경기하는 종목입니다.
 

컴파운드는 이번 인천 대회부터 아시아경기 정식 종목이 됐습니다. 만약 컴파운드가 정식 종목이 아니었다면 혼다 씨는 일본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37살에 리커브 선수 출신이던 친구 권유로 양궁을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혼다 씨는 "친구가 하는 말이 일본에는 컴파운드 전문 선수가 얼마 없다. '노력하면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끌려 양궁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일본 컴파운드 국가대표는 혼다 씨가 유일합니다.

혼다 씨는 인천에서 8강 진입이 목표였지만 25일 열린 16강 전에서 데브 트리샤(23·인도)에 140-146으로 패해 출전 사흘 만에 대회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올림픽에는 출전할 수 없지만 아시아경기에 출전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컴파운드 선수로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천이 아주 큰 도시라고 들었는데 지금까지는 선수촌과 경기장만 오가느라 제대로 구경을 못했다. 리커브 선수들 경기를 응원하는 짬짬이 인천을 둘러볼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루에 200발 정도 쏘면서 이 대회를 준비했다"는 혼다 씨는 "다른 선수들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코치도 연습을 앞두면 내 컨디션을 물어볼 만큼 신경을 써야해서 폐를 끼치지 않으려 조심한다"며 "대신 젊은 선수들처럼 승부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집중력 있게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처음 친구가 권유했던 것처럼 리커브 대신 컴파운드를 선택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혼다 씨는 '리커브보다 컴파운드가 더 매력적인 이유를 들어 달라'는 질문에는 "리커브보다 점수가 잘 나오기 때문에 마치 내가 활을 잘 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웃으며 답했습니다. 이어서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그랑프리 때 한국 (컴파운드) 선수들을 처음 봤다. 자세도 정말 좋고 진짜 잘 쏜다고 느꼈다"고 덧붙였습니다.

혼다 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항상 나 자신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활을 쏜다. 나 자신에게 지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현역 선수로 남고 싶다. 선수 생활이 끝나도 취미로 컴파운드를 즐기고 싶다"며 "일단 다음 자카르타 대회 때는 꼭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아경기에는 컴파운드처럼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는 종목도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물론 너무 종목이 많아 대회가 지나치게 방만 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목을 모두 제외했다면 우리는 한국 여자 크리켓 대표팀을 볼 수 없었을 거고, 물론 혼다 씨 역시 만나보지 못했을 겁니다. 저마다 서로 다른 꿈을 믿고 지지해주는 것, 그 역시 스포츠가 아름다움 이유가 아닐까요.

※아시아경기 화제 인물 기사로 취재했는데 이틀 연속 기사 채택에 실패해 블로그에 남겨둡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