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류제국(31)은 9일 현재 평균자책점 0.87로 3위에 올라 있습니다. 두 경기에 등판해 10과 3분의 1이닝을 소화하면서 1점만 내준 성적표. 그런데 실제로 그가 내준 점수는 모두 8점입니다. 나머지 7점은 비자책점입니다. 평균자책점이 1점도 안되는 류제국이 1승도 거두지 못한 이유입니다.
야구에서 실점은 크게 자책점(自責點)과 비(非)자책점으로 나뉩니다. 자책점은 말 그대로 투수에게 책임이 있는 점수. 투수가 볼넷이나 안타 등을 허용해 일반적인 과정으로 내준 점수입니다. 반면 비자책점은 야수 실책 등이 없었다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록원이 판단한 점수를 가리킵니다. 즉 투수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불운한 실점인 셈입니다.
지난해 비자책점이 가장 많았던 선수는 KIA 소사(29)와 넥센 나이트(39)로 각 11점이었습니다다. 류제국은 국내 복귀 첫해였던 지난 시즌에는 비자책점이 2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현재까지는 유독 LG 수비수들이 류제국을 도와주지 않고 있는 것이죠.
야구에서 실점을 계산할 때 눈여겨볼 또 한 가지는 '책임 주자' 개념입니다.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인 투수가 아니라 주자를 진루시킨 투수에게 실점을 기록하려고 생긴 개념이죠. 이 때문에 '분식(粉飾)회계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구원 투수들도 있다. 자기 평균자책점은 좋지만, 등판 때마다 앞선 투수가 내보낸 주자는 거의 여지없이 홈으로 들어오게 하는 투수들에게 이런 별명이 붙습니다. 이 때는 앞선 투수 평균자책점만 올라가니까요.
뒤에 나오는 투수가 좀더 의무감을 갖고 던질 수 있도록 팀 기록에는 비자책점이지만, 투수 개인에게는 자책점으로 기록하는 반(半)자책점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책임주자 개념 때문에 실제로 결승점을 내준 투수와 패전 투수가 다른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1차전 때 넥센 이택근(34)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은 건 두산 정재훈(34)이었지만 패전 투수는 윤명준(25)이었습니다. 끝내기 안타 때 결승 득점을 올린 유한준(33)을 볼넷으로 내보낸 게 윤명준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