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용훈의 '입버릇'이 화제다. 상대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면 혼잣말로 "감히, 내 공을 쳐?“하고 중얼거린다는 것이 기사화된 이후다. 그러나 이런 '오기'가 바로 오늘날의 조용훈을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다.
조용훈은 지난 2006년 드래프트에서 2차 4번으로 현대에 지명됐다. 당시 계약금 역시 겨우 5,00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팀에서 그리 큰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플로리다 전지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현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우선 현대의 마무리 투수였던 '조용준'과 이름이 비슷한 것이 가장 큰 이슈였다. 그리고 '문어발 투구'라는 신조어를 낳은 독특함 투구 폼 역시 이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 한 명의 '현대표' 신인왕이 기대됐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조용훈은 2006 시즌 내내 1군에서 단 한 개의 공도 던지지 못했다. 1군 엔트리에 등록된 것 역시 겨우 이틀. 불펜에서 몸만 풀다 다시 2군행 보따리를 싸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조용훈의 신인왕 타이틀은 일단 유보됐다.
그리고 대망의 2007 시즌이 밝았다. 다시 한 번 조용훈의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시범 경기. 5⅔ 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이드암으로서는 빠른 축에 속하는 140 km/h의 속구와 볼 끝의 변화가 심한 투심 앞에 타자들은 제 스윙을 하지 못하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김시진 감독 역시 조용훈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 개막 엔트리에 그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그렇게 희망적으로 시작됐던 조용훈의 2007 시즌, 그러나 시련은 그리 멀리서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조용훈의 2007 시즌 첫 등판은 4월 6일 롯데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 캘러웨이에 이어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0으로 뒤진 1사 1, 3루. 1군 무대에서 공을 처음 던지는 투수에게는 엄청난 압박감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조용훈은 연거푸 볼넷 두 개를 내주며 흔들렸다. 조용훈의 이름을 연호하는 쪽은 오히려 상대팀 롯데 응원단. 밀어내기를 내준 조용훈을 조롱하는 연호였다. 데뷔전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조용훈은 그대로 물러날 만큼 나약한 선수가 아니었다. 다음날 또 다시 마운드에 오른 조용훈은 어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씩씩한 투구를 선보이며 2루 땅볼로 정보명을 잡았다. 그리고 또 다음날 마운드에 올라 통산 첫 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며 1⅔ 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조용훈 돌풍의 시작이었다.
이후 30일 현재까지 조용훈은 27 경기에 나와 방어율 1.80, 2승 1세이브 8홀드를 기록 중이다. 30 이닝 동안 20 탈삼진은 그리 대단한 성적이 못 되지만, 피안타가 16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고무적인 징조다.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야 하는 구원투수에게 피안타는 곧 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건 기록뿐이 아니다. 조용훈의 또 다른 입버릇 역시 특이하다. 조용훈이 긴장감을 푸는 원동력은 바로 '껌 씹기'. 사실상 신인과 다를 바 없는 선수의 버릇이라고 하기엔 당돌함이 느껴지는 습관이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마저 이를 개성이라고 인정해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않은 상태다. 하긴 성적이 저렇게 좋은데 '껌' 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훈은 껌을 질겅 씹으며 마운드 위에 굳건히 서 있다.
조용훈은 마무리 투수가 되겠다는 자신의 희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상대를 제압해 나가고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 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애 첫 세이브는 사직 구장에서 나왔다. 데뷔 전에서 자신에게 수모를 안긴 팀에 너무도 멋지게 설욕한 것이다. 그렇게 조용훈은 계속해서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택했다. 역경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 방법 말이다.
김광현이 예상 밖으로 부진한 가운데 신인왕에 가장 근접한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두산의 임태훈이다. 하지만 조용훈 역시 신인왕 자격을 유지한 선수다. '04년 오재영 이후 다시 한번 현대표 신인왕이 배출될 수 있을까? 조용훈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면 그 대답은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조용훈은 지난 2006년 드래프트에서 2차 4번으로 현대에 지명됐다. 당시 계약금 역시 겨우 5,00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팀에서 그리 큰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플로리다 전지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현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우선 현대의 마무리 투수였던 '조용준'과 이름이 비슷한 것이 가장 큰 이슈였다. 그리고 '문어발 투구'라는 신조어를 낳은 독특함 투구 폼 역시 이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 한 명의 '현대표' 신인왕이 기대됐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조용훈은 2006 시즌 내내 1군에서 단 한 개의 공도 던지지 못했다. 1군 엔트리에 등록된 것 역시 겨우 이틀. 불펜에서 몸만 풀다 다시 2군행 보따리를 싸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조용훈의 신인왕 타이틀은 일단 유보됐다.
그리고 대망의 2007 시즌이 밝았다. 다시 한 번 조용훈의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시범 경기. 5⅔ 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이드암으로서는 빠른 축에 속하는 140 km/h의 속구와 볼 끝의 변화가 심한 투심 앞에 타자들은 제 스윙을 하지 못하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김시진 감독 역시 조용훈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 개막 엔트리에 그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그렇게 희망적으로 시작됐던 조용훈의 2007 시즌, 그러나 시련은 그리 멀리서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조용훈의 2007 시즌 첫 등판은 4월 6일 롯데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 캘러웨이에 이어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0으로 뒤진 1사 1, 3루. 1군 무대에서 공을 처음 던지는 투수에게는 엄청난 압박감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조용훈은 연거푸 볼넷 두 개를 내주며 흔들렸다. 조용훈의 이름을 연호하는 쪽은 오히려 상대팀 롯데 응원단. 밀어내기를 내준 조용훈을 조롱하는 연호였다. 데뷔전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조용훈은 그대로 물러날 만큼 나약한 선수가 아니었다. 다음날 또 다시 마운드에 오른 조용훈은 어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씩씩한 투구를 선보이며 2루 땅볼로 정보명을 잡았다. 그리고 또 다음날 마운드에 올라 통산 첫 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며 1⅔ 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조용훈 돌풍의 시작이었다.
이후 30일 현재까지 조용훈은 27 경기에 나와 방어율 1.80, 2승 1세이브 8홀드를 기록 중이다. 30 이닝 동안 20 탈삼진은 그리 대단한 성적이 못 되지만, 피안타가 16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고무적인 징조다.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야 하는 구원투수에게 피안타는 곧 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건 기록뿐이 아니다. 조용훈의 또 다른 입버릇 역시 특이하다. 조용훈이 긴장감을 푸는 원동력은 바로 '껌 씹기'. 사실상 신인과 다를 바 없는 선수의 버릇이라고 하기엔 당돌함이 느껴지는 습관이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마저 이를 개성이라고 인정해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않은 상태다. 하긴 성적이 저렇게 좋은데 '껌' 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훈은 껌을 질겅 씹으며 마운드 위에 굳건히 서 있다.
조용훈은 마무리 투수가 되겠다는 자신의 희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상대를 제압해 나가고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 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애 첫 세이브는 사직 구장에서 나왔다. 데뷔 전에서 자신에게 수모를 안긴 팀에 너무도 멋지게 설욕한 것이다. 그렇게 조용훈은 계속해서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택했다. 역경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 방법 말이다.
김광현이 예상 밖으로 부진한 가운데 신인왕에 가장 근접한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두산의 임태훈이다. 하지만 조용훈 역시 신인왕 자격을 유지한 선수다. '04년 오재영 이후 다시 한번 현대표 신인왕이 배출될 수 있을까? 조용훈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면 그 대답은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