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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미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 포수 제이슨 베리텍, 그의 유니폼 상의에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알파벳 대문자 C가 선명하다. C는 바로 캡틴(Captain)의 약자. 제이슨 베리텍이 보스턴의 주장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표시다.

베리텍은 지난 2004 시즌 후 FA 신분으로 팀과 재계약하면서 팀의 공식적인 주장으로 임명받았다. 100년이 넘는 구단 역사에서 베리텍 이전에 공식적인 주장으로 임명된 선수는 단 두 명. 공식 주장 임명은 86년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끈 리더십에 대한 구단의 배려였다.

우리 프로 야구에도 이에 걸맞은 닉네임을 가진 선수가 있다. 현대 유니콘스의 주장 '캡틴' 이숭용(36)이 바로 그 주인공. 1994년 전신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이숭용은 14년째 한 팀에서만 뛰며 ‘덕아웃 리더’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캡틴'이라는 닉네임은 이숭용이 주장을 맡았던 '03, '04 시즌, 팀이 한국 시리즈에서 연패를 차지하며 붙여졌다. 하지만 그가 주장이 아니었던 '05 시즌에도 팬들은 계속 그를 '캡틴'이라 칭했다. 그리고 진짜 그가 다시 '캡틴'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5 시즌 팀이 7위에 그치며 부진을 면치 못하자, 이숭용은 기꺼이 다시 주장 자리를 수락하며 팀 분위기 쇄신에 앞장섰다. 2006 시즌 개막 전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현대에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숭용의 리더십은 팀을 정규 시즌 2위로 끌어 올렸다. 우승 달성엔 실패했지만, 야구 팬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한 성적이었다.

그의 '캡틴' 이미지는 비단 선수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겨울 현대의 스토브리그는 그 어떤 팀보다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11년간 팀을 책임지던 김재박 감독이 LG로 떠난 데 이어, 구단은 매각설에 휩싸였다.

현대 팬들 사이에도 불안감이 감돌았던 게 사실. 그런 팬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한다는 듯 이숭용은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남겨 팬들을 안심시켰다. 다시 한 번 왜 그가 '캡틴'인지를 몸소 멋지게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선수에게도 팬들에게도 그는 진정한 캡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도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막을 맞이했지만 팀은 개막 시리즈에서 롯데에 보기 좋게 스윕(Sweep) 당하고 말았다. 광주에서 먼저 2승을 챙기긴 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고 LG와 두산에 연패하며 팀 분위기는 밑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그렇게 팀에 패배주의의 그늘이 드리울 무렵, 이숭용은 굳게 입술을 깨물었다.

불방망이가 시작된 건 사직 롯데戰. 이후 9 경기에서 18타수 11안타(타율 .563)를 기록하며 이숭용은 공격의 선봉에 섰다. 현재까지 이숭용은 타율 .418로 전체 1위. 이런 그의 맹활약 속에 초반 11경기에서 3승 8패에 그쳤던 팀 성적 역시 6승 3패로 좋아졌다.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팀 분위기 전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숭용은 데뷔 시절부터 홈런 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통산 259개(역대 11위)의 2루타가 말해주듯 중장거리 타자로 팀에 공헌도가 높은 선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파워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정교함 역시 무뎌졌다. 지난해 홈런은 데뷔 이후 가장 적은 7개에 그쳤고, 2001년 이후 단 한 번도 타율 3할 달성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험은 관록을 낳았다. 방망이 대신 두 눈으로 팀에 공헌하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해 이숭용은 타율(.286)보다 1할 이상 높은 .389의 출루율로 10위를 차지했다. 59개의 볼넷 또한 팀 동료 서튼과 함께 공동 9위의 기록. 올해 역시 타율도 타율이지만 출루율 또한 .530으로 1위다. 역시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수치.

수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숭용의 강점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견실한 수비는 타석에서의 이미지 그대로다. 특히 미들 인필더진의 수비가 불안하고, 3루수 정성훈이 송구 실책이 많은 선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1루수 이숭용의 가치는 더더욱 빛이 난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이숭용의 '맏형' 노릇은 계속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임수혁을 여전히 돕는 선수단은 롯데를 제외하면 현대가 유일하다. 이런 동업자 정신의 중심에 이숭용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야구 실력, 팬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동업자 정신까지. 정말 이숭용은 '캡틴' 그 자체인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이지만, 팀이 한국 시리즈 정상에 오른 네 번 모두 이숭용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처리하는 행운을 누렸다. 해당 시즌 최종 아웃카운트가 모두 그의 자살(Put Out)이었던 셈이다. 시즌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캡틴'의 소임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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